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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Dec 15. 2024

#98 방

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갑진년 병자월 계축일 음력 11월 15일

내 방은 그다지 깨끗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다 날 잡아서 방을 치우게 되면 가족들이 신기해하다가도 그 상태가 일주일도 가지 못할 것임을 그들도 알고 있더라.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들은 쓰레기봉투에 담아 방 밖으로 사라졌지만, 다른 잡동사니들은 자기 자리를 명확히 갖지 못한 채 어딘가에 적당히 끼어 들어간 상태이기에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것들을 꺼내며 다시 지저분해지는 것 같다.


사실 쓰레기만 쓰레기통에 제대로 버려도 훨씬 나을 텐데 그게 쉽지 않다. 남들은 다 하고 지내는 기본적인 것일 텐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할까, 싶기도 하고. 어떠한 이유로든 청소 및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이것저것이 쌓여만 간다. 그리고 한 번 마음먹었을 때 바닥에서 주운 쓰레기만으로 10L 쓰레기봉투가 반 이상 차곤 한다. 지금 내 옆에도 어제 방을 좀 치우다 만 흔적으로, 거의 다 찬 쓰레기봉투가 하나 있다.


내가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공간을 차지하는 녀석들을 처분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분명 수납공간이 많은 방인데 물건이 더 넘쳐 나는 것 같다. 애초에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피아노가 방 한 구석에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니. 청년기지개센터 동행팀에서 Zoom으로 하는 홈트를 하면서도 누워서 팔다리를 위아래로 쭉 뻗어야 하는 동작이나 테이블탑 자세에서 대각선 팔다리를 쭉 뻗어야 하는 동작을 할 때면 한쪽은 피아노에, 다른 한쪽은 책장에 닿아 원활하게 뻗어내지 못한다. 피아노란 결국 사용하지는 않으면서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녀석이 되어 버린 걸까. 수십 개의 CD들을 나열해 놓은 음반 거치대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미디어 속의 방처럼 깔끔한 방에 대한 소소한 갈망이 늘 있어 왔지만 몇 년이 지나도 내 방은 어떻게 되지 않더라. 내가 구현할 수 있는 미디어 속의 방은 카츠라기 마코토의 방 정도일까. 하여간 요즘 같은 방 정리의 과도기에는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것들을 끄집어 내 바닥 공간이 평소보다 더 엉망이다. 때로는 이불을 제대로 깔고 잘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정리 도중이 아니라 방 상태가 심할 때도 그런 경우가 있긴 한데, 때로는 이불을 개면 다시 펼 자리가 안 나와서 개지 않고 지내기도 한다.)


이걸 다 치우고 정리하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다. 학생 때 날 잡아서 정리할 때도 이틀에서 사흘 정도는 걸렸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하면서 하고 있으니... 온전히 정리가 된 방으로 새해를 맞이하기는 힘들 수도 있겠다. 너무 질질 끄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싶은 부분이 좀 많다. 모르겠으면 일단 다 끄집어내고 정리를 해볼까 싶기도 하고. 하여간 쉽지 않다. 버릴 것들도 많이 버려야지―라는 생각은 매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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