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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장난

2025년 3월 17일 월요일 을사년 기묘월 을유일 음력 2월 18일

by 단휘

장난인지 진심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장난을 치는 사람들은 상대가 그것을 진심이라고 믿고 자신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기를 기대하는 걸까. 얼마 전에는 "자신과 타인에 대해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으로 취급받던 이를 만났다. 과거형인 이유는 요즘도 그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 집단에 속해 있던 적이 없었으며 단지 그들 중 부분집합하고만 상호작용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도 이제는 그 집단에 속해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거짓과 왜곡을 일삼고 있는지, 혹은 이제는 그러지 않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장난으로 던진 농담에 대해 정정할 타이밍을 놓쳐서 그렇게 된 것 아닐까" 하는 우호적인 입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부정적인 입장도 있었다. 어쩌면 그냥 관심을 끌고 싶은데 적절한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 이제 와서는 사랑을 쫓아 고립을 택한 그 사람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상호작용보다는 멀리서 응원한다고 주장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주장한다는 건, 내 앞에서 누군가 그렇게 반쯤 죽어나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내가 진심으로 그 사람을 응원하는지는 모르겠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사람과의 상호작용은 대체로 언젠가의, "미미와 코코의 동거인"에 대한 부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지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주 오래전, "내 의식이 닿는 범위 내에서 저렇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거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느꼈던 어느 두 사람에 대한 감정보다는 좀 더 응원에 가까운 마음인 것 같기는 하다.


살다 보면 장난과 진심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을 가끔 마주친다. 그런 사람에게 장난을 칠 경우에는 상대가 진심으로 받아들여 대화의 진행이 애매해지기도 한다. 그런 애매함이 너무 어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런 상황을 원천 차단하고자 언제부터인가 장난을 칠 땐 장난이라는 뉘앙스를 엄청 풍기면서 치는 습관이 생겼다. 가벼운 장난은 수상하리만치 실실대면서 던지고, 진지한 척으로 하다가도 마냥 그러고만 있지 않고 바로 웃어버린다. "지금 나는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니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해 주세요" 하는 티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가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데 장난으로 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으면 거기에 맞장구치며 "저거 장난이에요" 하는 티를 내주기도 하고 말이다. 때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장난이 장난인 줄 모르는 사람도 있더라.


난 기본적으로 장난기가 많은 녀석이다. 어느 정도 가까운 지인부터는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그게 가까운 지인과 보통의 지인 사이의 경계선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듣자 하니 보통의 경우 이 정도 수준부터를 "친구"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확실히 내가 "친구"로 칭하는 범위는 보통의 "친구" 그 이상의 무언가다. 그 범위를 그만치 좁혀야 했을 정도의 모종의 심리적 이슈가 있었겠지. 18살이 끝나갈 무렵 차주성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친구 같은 건 사귀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던 게 그 시작이었을까. 그러고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10대 후반부터 급감했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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