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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Oct 06. 2024

#34 가능성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갑진년 계유월 계묘일 음력 9월 4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막연한 삶 속에서 우린 어떤 가능성을 따라갈 수 있을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저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많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 쉽게 퇴사를 하는지. 내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것도 결석할 용기나 자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쉽게 도전하는 사람만큼이나 쉽게 그만두는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부러움이 있다. 그런 결정을 해내는 것은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일상이 되고 내 삶의 일부가 된 것일수록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3년의 시간을 놓아주는 데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내 삶의 20%를 함께 한 대상을 끊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그 과정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곳에서 벗어나 홀로 선 나는 어디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뿐이다.


나아갈 수 있을 만한 길이 안 보여서 막연하다기보다는, 두루뭉술한 가능성으로만 보이는 것들이 산발적으로 존재해서 막연하다. 몇 가지 분야의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지만, 제각각의 분야로 정말 접점이 없는 것들이다. 전체적인 느낌을 따라가다가 한쪽 길로 틀 수 있는 게 아니라, 완전히 시작부터 다른 길이라,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어느 쪽으로 발을 디뎌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나의 선택이기야 하겠지만, 그 선택이라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라도 교원자격증을 살려 교사가 되는 것은, 교사의 교육 외적인 업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인성적인 부분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까. 이제라도 학위를 살려 개발자가 되는 것도 그 업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실무에서 만나는 문제들은 대학 과제만큼 가이드라인이 잘 되어 있지 않다. 강사를 목표로 한다면 대충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할지는 알겠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분들도 있긴 하다. 디자인 분야도 나를 도와줄 의향이 있는 분이 있지만,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경험 프로그램 참여하는 것을 살려 영상 편집? 아니면 언젠가 언급되었던 한국어 교육? 아니면 역시 1인 출판사 창업? 그게 아니라면... 츨판과 영상이 나의 삶에 어느 순간 훅 들어왔듯이, 또다시 내 삶에 훅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을까.


이번 겨울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일경험 프로그램을 마치고, 하던 것들을 정리한 뒤, 센터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치며 며칠 보내다가 서울을 떠나 춥지 않은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 방황의 시간 속에서 어떤 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일말의 가능성을 쫒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딘가로는 나아가야지. 언제까지나 고립 청년으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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