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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Oct 18. 2024

#46 가방

2024년 10월 18일 갑진년 갑술월 을묘일 음력 9월 16일

몇 년 전까지는 핸드폰과 컴퓨터를 많이 하는 요즘 청년치고는 자세도 괜찮은 편이고 뭉친 곳도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몇 년 사이에 어깨가 많이 뭉쳐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된 건 아무래도 가방의 무게 때문일까. 아무래도 대학 다닐 때는 어차피 집 가면 과제고 뭐고 안 한다며 노트북도 학교에 두고 다니고 웬만한 건 동아리방 사물함에 넣어놓고 살아서 가방에 많은 것을 넣어 다닐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요즘은 어딜 가든 나를 위한 공간이 없다. 아무것도 두고 다닐 수 없고,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챙겨 다녀야만 한다. 그런 상황에서 나 같은 맥시멀리스트의 가방은 점점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아도 될 곳에도 이것저것 한가득 챙겨 다니기도 한다. 출근할 때도 사실 이어폰 하나만 주머니에 넣어가도 무리가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늘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닌다. 배낭에 뭐가 있냐고? 별 거 없다. 그런데 왜 가방이 무겁냐고? 글쎄, 태산이 되어버린 티끌과 가방 그 자체의 무게일까.


충분히 튼튼한 가방은 가방 그 자체의 무게가 있다. 가벼운 가방은 수납공간이 모자라거나 나약하다. 무게와 수납공간과 내구도를 모두 챙기려면 가격이 오른다. 이러저러한 조건들을 따져 가며 적절한 가방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와서는 새로운 가방을 탐색하는 걸 포기한 채 그냥 있는 가방 중 그나마의 것을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에게 있는 가방 중에도 온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매가리가 없는 가방이라거나, 수납공간이 애매한 가방이라거나,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가방 자체의 무게가 꽤 나가는 가방이라거나.


사실 노트북과 태블릿이 들어있지 않은 상태의 나의 가방은 그럭저럭 괜찮은 무게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의 반응을 보면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 정도 무게로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가는 데 별 지장이 없다고 주장해 본다. 하지만 뭐, 내 가방이 무겁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면 무거운 편이긴 한 거겠지. 컨디션이 안 좋을 땐 무겁게 느껴지기는 하더라. 평소에는 그냥 피지컬로 버티고 있었을 뿐 무겁긴 한가보다.


일단 가방에서 진짜 필요한 것과 관성적으로 들고 다니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현재 나의 가방에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으니 말이다. 가방에서 거의 꺼내지 않는 것들. 솔직히 가방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나도 명확히 알지 못한다. 뭔가 이것저것 들어있긴 한데... 내가 뭘 가지고 다니는 거지? 매일을 나의 가방 속에서 함께 하는 녀석들인데 모른다는 건,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무방한 녀석들이라는 소리인데... 저것들을 챙겨 다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만 없애도 가방의 무게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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