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추측
2024년 12월 5일 목요일 갑진년 을해월 계묘일 음력 11월 5일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추측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새삼 인지했다. 추리 게임이나 마피아 게임류를 싫어한다는 데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말이다. 학생 때 국어 성적이 낮았던 데에도 작가(사실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문제를 많이 말아먹었던 것 같다. '눈치가 빠르다면 인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멋대로 추측해서 오해하기보다는 무지한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충분한 단서가 있어도 나의 무의식이 추론하고 판단하기를 거부한다. 이 무의식이라는 녀석은 확실히 나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명확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말을 조금 꼬아서 추측하게 만드는 화법은 상대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게 하면서도, 왠지 나도 평소에 자주 사용하여 이중잣대 같은 영역이다. 남이 하면 어려워하지만 나는 한다?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자신의 친구를 '친구'라고 표현하지 않고 '나를 진정한 친구라 여기고 있는, 또한 내가 홀딱 반해버린 여인의 남편'이라고 표현하는 어느 소설만큼이나 꼬여 있는 화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상대의 말이 잘 들리지 않을 때에도 대화의 많은 부분을 추측하며 들어야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향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더불어 그 대화를 이어가려면 그것을 어떻게든 추측해야 하니 쉽지 않다. 상대와 그다지 깊은 관계가 아니거나 여력이 없을 땐 적당히 이해한 척하며 끄덕이고 넘기기도 한다. 유의미한 대화를 이어갈 의지가 있는 경우에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며 다시 말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대화를 쫓아가지 못할 때도 있다.
청각 장애를 가진 분들도 자주 사용하는 보조 수단이라고 하는데, 상대의 말을 더 잘 알아듣기 위해 입모양을 확인하는 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쓰지는 않는 방식이다. 대학생 때 상대의 입술을 쳐다보는 것이 키스하고 싶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받았던 게 큰 것 같다. 그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찌 되었건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은 자제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쯤부터 상대의 말에 대한 이해도가 더 떨어진 것 같긴 하다.
그 어떤 추측도 필요하지 않은 명확한 대화가 이어지면 좋을 텐데, 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나부터가 그러지를 못 하고 있으니. 화법에 문제가 없더라도 발음이나 통화 품질 등의 이슈로 추측이 필요한 순간도 많다. 그건 대체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특히 통화 품질 이슈는 전화 통화를 오래 하면 기력이 많이 떨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이왕이면 통화보다는 채팅을 더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는 뉘앙스 전달 측면에서 전화가 더 좋다고 하지만, 뉘앙스고 뭐고 무슨 말을 했는지 자체를 못 알아듣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난 텍스트라도 명확하게 알아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