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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Jul 27. 2024

야나할머니와 돌개바람

영혼의 나들이

"야 니들도 들었나? 우리 이사 간대."


앞집 사는 복자언니가 마당에 놀러 와 별안간 말했다.


"진짜? 언니네 이사 간다고? 오디로 가눈댕?"


"우리 바다 있는 부산으로 간다."


"우와 부산? 거기 엄청 멀자네. 인자 언니는  바다도 보고 좋겠다. 그럼 우리 이제 못 나?"


"못 긴. 니가 우리 집에 놀러오믄 되잖아. 내가 여기 다시 와도 되고"


"부산이면 여기서 끝과 끝인데 찾아올 수나 있겠나?"


복자언니 친구인 우리 언니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에이 슬마 내가 니 보러 여까지 못 오겠나?"


"그럼 언니네 싹 다 이사 가삐리믄 언니네 집은 우뜨케 해?"


"글쎄 아빠가 판다고 했던 거 같기도 하고"


"그럼 언니네 살구나무랑 꼬야 나무는 우뜨케 하고?"


"그건 내가 니 주고 갈게"


"진짜? 나무만 나 주고 갈 수 있어"


"야 니는 내 친군데 나한테 안 주고 왜 내 동생한테 주는데?"


"니한테 주나 니 동생한테 주나 니들은 한 집에 사니깐 같이 먹음 돼지"


복자언니는 언니 한 번 나 한 번 쳐다보며 태연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말이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복자 언니네 세간살이는 파란 트럭에 실려 떠났고, 앙상한 닭뼈 같은 기둥을 한 낡은 집과 열매도 잎도 다 떨어진 나이 든 과실수 몇 그루만 남아있었다.




"야야 니 저 마당 좀 가매이 봐 보래이"


"할머이 왜? 마당에 뭐 있어?"


우리들의 발바닥으로 딴딴하게 다져져 반질반질한 흙 마당에 작은 돌개바람이 돌고 있었다.


"우와 할머이 저기 돌개바람이 돌아"


"조용히 하고 가매이 보래이. 돌개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주 은밀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할머니가 수상했지만 우선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아무 소리하지 않고 마당에서 뱅뱅 돌고 있는 돌개바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개바람은 담벼락 앞에서 조용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할머니는 그제야 다시 또렷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지 살던 데가 그리워 왔다 갔네"


"할머이 무슨 얘기여? 누가 왔다 갔다고?"


"니 못 봤나? 복자가 곰방 왔다 갔자네"


할머니는 돌개바람이 사라진 곳을 한 참을 바라보고 계셨다.




내가 열 살이었으니 복자언니는 열세 살이었겠다.

부산으로 이사를 간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복자 언니는 인어공주가 되었다.

우리 동네에 살던 집안 되던 식구들이 집들이 겸 피서를 즐긴다고 부산을 방문했고 매일 바다서 살다시피 한다고, 모여 노는 애들 중에 팔뚝이 벗겨지도록 젤 새까만게 복자라는 소문을 증명하 듯 언니는 그날도 바다에 들어갔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인어공주들의 왕국으로 다. 큰맘 먹고 피서를 갔던 동네 어른들은 찾지도 못하는 어린 조카를 뒤로하고 돌아왔고, 그 소문은 동네에 삽시간에 퍼져 결국 언니와 나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언니야 복자 언니는 찾을 수 있겠나?"


"그래 넓은 바다서 어떻게 찾어. 못 찾지"


"언니야 바다가 그래 깊나?"


"니가 아직 바다를 한 번도 못 봐서 그래. 바다는 깊기도 깊지만 파도가 엄청 무서워. 그 높이가 지붕보다도 높고 또 그게 그냥 철썩거리고 치는 게 아니라 그 물속에서 물이 뱅뱅 돌면서 들락거리고, 그래서 복자도 빨려 들어가서 못 나온거여"


"언니야 며칠 전에 우리 집 마당에 돌개바람이 왔었거든. 할머이는 복자 언니가 왔다 간 거래"


"무슨 그런 소릴..."


천정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하던 언니는 등을 돌리며 돌아누웠다.




점점 쓰러져 가는 볼품없는 집 때문이었을까? 복자언니의 죽음 때문이었을까? 이사를 오겠다던 사람이 이사를 포기했다 했고 집은 한참을 내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나는 새로 이사를 오는 사람에게 살구나무와 꼬야 나무는 내 몫이라고 말해야 했기에 누군가가 얼른 이사를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첩첩산중 시골 마을에 이사를 오겠다는 사람은 절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학교에 다녀온 어느 날 나는 온 동네 아저씨들이 복자 언니네 집에 매달려 집을 부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언니야 복자 언니네 집은 왜 뿌수나?"


"이사도 안 오고 빈집이니 쥐만 들끓고 흉물스러우니 뿌수지"


"그라믄 저 집은 인자 우뜨케 되는데?"


"뭘 우뜨케 나무는 장작으로 쓰고 터는 뭐로라도 쓰겠지"


언니는 복자언니네 대청마루가 푹 하고 내려앉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 셋이 배를 깔고 엎드려 깔깔거리며 놀던, 때론 시원하기도 했고 때론 따듯하기도 했던 그 시커멓고도 널따란 대청마루가 마당에 던져지자 이상케도 포대자루 마냥 작아 보였다.




"언니야 생각나나? 우리 여기 터에 언니 친구 집이 있었었잖아. 부산으로 이사 간"


"니는 기억력도 좋다. 나도 잊고 있었는데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김장 배추를 심어 놓은 밭에서 배추를 뜯으며 내가 언니에게 물었다.


"왜 나는 아직 그 집 모습, 뒤꼍에 살구나무랑 손톱맨치 작게 달리던 꼬야 나무 다 기억나는데. 그때 아빠가 그 터를 사서 이렇게 밭을 맹글지 누가 알았나. 내가 나무를 지키려고 을매나 떼를 썼는데"


"니는 일부는 기억하고 일부는 기억을 못 하네. 니가 하도 떼써서 아빠가 그 나무 처음엔 내버려 뒀는데 열매도 달리지 않고 하도 볼품없어 두고 보다가 결국 태풍에 가지가 찢어져서 베어 버렸잖아. 그리고 니가 회오리바람이 불 때마다 누구의 영혼이 찾아온 거라며 그 근방에 죽은 모든 사람들 다 소환하고, 복자도 아마 한 골백번은 소환됐을걸. 그리고 당숙 아저씨가 갖다 주신 동화책중에 오즈의 마법사가 있었는데 그거 읽고 엄청 심취해서 몇 번이고 읽고 또 읽고 그랬잖아. 여행 가고 싶다고"


"언니야 말로 나의 흑역사를 너무 많이 기억하는 거 아녀? 내가 지금 생각해도 엉뚱하고 웃기긴 하는데 할머이가 원체 강렬하게 돌개바람을 인식시켜놔서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증폭된 거지. 그때 회오리바람 타고 도로시처럼 구석구석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지금은 토네이도가 무서워. 왜 중국 난리 난 거 봤지? 요새 비 오는 것도 무슨 열대아 지역에 비처럼 심상치 않고 대한민국엔 토네이도가 읍어야는디"




공원 의자앉자 처음엔 두 마리였던 비둘기가  내 주변으로 점점 늘어나 보고 있는데 그 뒤로 작은 돌개바람이 불고 있어 반가운 맘에 어디로 가는지 조용지켜보고 있었다. 돌개바람은 공원 바닥서 뒹굴던 낙엽 몇 잎을 간지럽히더니 운동기구 앞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놀랍다.

이 작은 돌개바람 하나에도 이렇게 추억과 그리움이 우수수 끌어올려지다니.

그리고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인어공주 왕국으로 간 언니 얼굴.


그리고 감사한 마음도 끌어올려졌다.

어린 시절 나에게 책 읽는 습관과 산골마을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오실 때마다 책을 선물해 주신 당숙부와 막내 외삼촌.

이 여름 부디 당숙부항암치료와 삼촌의 디스크 회복을 기도해 본다.


*고야(꼬야) 나무 : 토종 자두나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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