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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Oct 19. 2024

야나할머니와 까마구

까마구는 까마귀

주말 아침.

늦잠을 자도 충분히 될 만한 상황이었지만 베란다 창가서 머무는 듯 한 까마귀 소리에 나가보니 얇은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고양이와 엄청나게 크고 시커먼 까마귀가 대치중이었다. 마치 집사처럼 호기심도 많지만 겁도 많은 고양이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까마귀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유연한 척추를 꿀렁거리며 당장이라도 공중으로 날아갈 태세였고 나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도 훨씬 시커멓고 커다란 까마귀의 실체에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얼른 유리창을 닫고 고양이를 안았다.


"너 이러다 클나. 방충망 이게 튼튼한 게 아녀"


전엔 까치가 앞베란다 뒷베란다를 날아다니며 고양이를 뛰게 만들어 창틀 붙박이를 만들더니 오늘은 까마귀까지 친히 납시고, 이러다 조만간 고양이가 방충망에 매달려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맘이 들었다.


"한 동안 까마귀가 안 비두만 까치를 다 몰아냈나 까마귀가 많이 우네"


격하게 거부하며 바둥대는 고양이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도 그렇지만 새장 때문에 오는지도 몰라. 저러다 방충망 뚫고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근데 그거 알아?  클 때 우리 동네선 아침에 까마귀 소리 들으면 재수 없다고 퉤 퉤 퉤 침 세 번 뱉고 그랬는데"


"그 동네는 침을 뱉었어? 우린 누가 죽는다고 하루 종일 겁먹었는데"


"에? 그건 또 무슨 얘기야? 암튼 당신 얘기 들어보면 OO동네는 비과학적인 일들이 많아"


"나도 믿고 싶진 않았지만 희한하게 맞아떨어졌대니. 근데 이 불안은 어찌 보면 할머니가 심어줬는지도"


"아 맞네. 우리 동네가 옛날부터 축사가 많았잖아. 유독 독수리가 크게 돌며 나는 날은 송아지나 사람이 죽는다고 하긴 했었어. 죽음 냄새 맡고 나는 거라고"


"그게 참 신기해. 왜 자연재해 일어날 때 동물들이 먼저 알고 이동하고 하잖아. 그나저나 우리 동네 까치들은 다 어디 간 거래? 진짜 까마귀가 몰아냈나? 하기사 사이즈로 보면 둘이 쨉이 안되긴 하지"


까마귀 울음소리와 우리 부부의 대화소리에 덩달아 잠을 깬 작은 아이가 거실로 나오며 고양이를 안았다.


"너 이 눔의 시키. 언니가 새하고 대치하지 말라고 얘기했어 안 했어? 엄마 얘 요즘 이상해. TV를 보는 게 아니고(고양이가 창 밖을 보며 감상하는 것을 아이는 TV를 본다고 함) 사냥 본능이 살아나나 봐. 엄마 진짜 탁인데 지난번처럼 청소한다고 방충망까지 열면 안 돼. 가급적이면 유리창도 열지 마"


"유리창도 안 열면 어쩌. 쪄 죽을라고?"


"에이 엄마는, 에어컨을 켜면 되잖아"


체념한 듯 언니 품에 안긴 고양이는 동그란 눈을 꿈뻑 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평상시엔 잘  들리지 않던 까마귀 울음소리가 아침부터 유난히 동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는 학교 갈 채비로 수돗가서 세수를 하고 있었고 마당서 나물을 다듬던 할머니가 앞산을 올려다보시며


"오늘 누가 밍줄이 끊길란갑다. 까마구가 저래 우는 거 보이"


"에이 할머이도 참 까마귀가 운다고 어떻게 사람이 죽어"


"이잉 내 말이 참말이래도. 저래 까마구가 우는 날엔 꼭 뭔 일이 난대니. 그라니 니도 신작로에 차 오는데 딴전 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핵교 댕기 온네이"


나는 할머니 말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귀에서 맴맴도는 까마귀 울음소리에 맘이 찜찜한 채로, 앞 뒤에서 차가 올 때마다 여느 날 보다 훨씬 더 몸을 사리며 학교에 갔다.


"야 OOO 니 들었나?"


"뭘?"


"오늘 아침에 진등서 사람 죽었자네"


"왜? 왜 죽어?"


"오도바이를 차가 들이받았는데 하이바를 안 써서 도랑에 떨어진 아저씨가 피가 마이나  죽었대. 진등 분교 누구 아빠라 하던데"


"우리 할머이가 맞췄어. 아침에 까마귀가 엄청 울어서 초상 날 거라고 했거든"


 "간나 뭐래"'


순간 나는 내가 말하고도 아차 싶었다. 누군지 아빠를 잃었는데 까마귀 타령이라니...




"할머이 할머이 들었어? 오늘 진등서 오도바이 사고나 사람이 죽었대"


"그래 아까 부고장 돌리러 왔드라"


"근데 할머이 우뜨케 까마귀 울음소리 듣고 오늘 일 날줄 알았어?"


"우찌 알긴. 까마구가 갈촤주이 알지. 낭중에 보래이. 내 죽을 때 되믄 또 까마구가 저래 울팅께. 니 잘 듣고 있다가 내 장사 지내러 온네이"


"죽긴 왜 죽어. 백 살까지 산다매. 할머이 백 살까지 살어"


"내 니 시집가고 아 낳고 그러는 거 까지 보고 죽을 수 있을까?"


"당연하지. 할머이는 몸에 좋은 거 엄청 마이 먹으니깐 분명 오래오래 살 거야"


"오이야 그라믄 내 백 살까지 사마"


할머니가 나를 보고 웃고 계셨다.




할머니는 내가 시집가는 것도 보셨고 두 번의 출산과 산후조리의 산증인이시고 도우미셨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시댁에 가다 엄마 전화를 받고 차를 돌려 집으로 짐을 챙러러 가던 울던 아침이 떠오르고, 아들의 품에서 스르륵 잠을 주무시 듯 긴 잠에 드신 할머니 얘기를 아부지를 통해 들었다.




어느새 베란다로 나가 까마귀가 푸드덕거리다 사라진 휑한 하늘 TV를 보고 있는 고양이와 그 고양이의 처량해 보이는 뒤태를 보고 있는 나.

까마귀 울음소리에 어린 날의 한 페이지가 지나간다. 아울러 남편을 잃은 젊은 엄마가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사건까지. 나는 그때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들을 얼마나 불쌍케 생각했었는지...


씁쓸한 웃음이 나는 것은 그 시절 참 바보스러울 만큼 순박하고 정 많던 꼬꼬마 소녀는 어디 가고 이렇게 우왁시러분 아줌마만 남아 있는 건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녀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까마귀 울음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까마귀가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그래서 그 억울함에 진정한 흉조인 까치를 몰아내고 이 동네를 점령한 걸까?


근데 궁금한 것이 있긴하다.

진짜 어린 날의 그때처럼, 그날 아침도 할머니와의 이별을 알려주 듯 동네를 지키고 있던 까마귀들이 요란스럽게 날갯짓하며 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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