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바라기 Nov 09. 2024

야나할머니와 호래이콩

호랑이콩밥이 맘의 안정을 주기를

"아 왜 맨날 밥에 이 있어. 또 할머이가 느찌?"


밥상에 앉기도 전에 밥공기를 들여다본 나는 잔뜩 골이난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무봐 무보고 말해. 호래이 콩이 을매나 맛이 좋은지. 묵고 더 달라고나 하지 마래이"


나는 우거지상을 하고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야야 누가 있나?"


마루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할머니가 찾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이 왜에? 나 여깄어"


"늬들 마큼 와가꼬 여 호래이 좀 까다오"


할머니가 다래끼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콩 꼬투리를 다라 안에 쏟아 부우셨다.


"요래 똥땅한 배를 누르믄 껍디가 툭 터지재? 그 안에 든 콩은 요 바가지에 담고 알이 생기다 만거나 벌개이 문거 있음 느지 말그래이"


콩 까는 일이야 막내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에다 누가 집은 꼬투리에 콩이 들었는지 놀이도 할 수 있는 일이라 기꺼이 달려들어 콩 꼬투리를 여니 알록달록 동그랗고 예쁜 호랑이 콩이 줄 맞춰 들어있었다.


"할머이 이래 마이 까서 뭐 할라고?"


"뭐 하긴 밥에도 느코 떡도 해 묵고 강네이죽에도 느지"


"그라믄 나 안 해. 난 콩밥도 콩떡도 싫어"


"이잉 역전 장터 김 씨 새닥이 호래이 콩 한 바가지 갖다 달라했응께 한 바가지만 까다오"


나는 할머니에게 내일 아침밥엔 콩을 넣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딱 한 바가지만 까겠다 유세를 부리며 바가지를 채워갔다.




호랑이 콩밥

"아 엄마 왜 자꾸 콩밥이야 콩자반도 "


작은 아이가 식탁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먹어봐 먹어보고 말해. 얼마나 맛있는지. 수험생 머리가 팍팍 돌려면 단백질 단백질 몰라? 할머니가 특별히 챙겨주신 콩이니 좀 먹어봐"


"응 몰라. 그리고 단백질은 엄마가 부족이잖아. 나는 정상범위니깐 엄마가 다 먹어"


아이는 숟가락으로 콩을 죄다 퍼서 내 밥그릇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잽싸게 밥그릇을 손으로 덮자  아이는 콩 무더기를 아빠 밥그릇으로 덥석 옮겨 놓았다.


"아니 콩을 왜 날 다 줘"


"아빠 아빠도 단백질 필요하잖아. 이것도 먹고 콩자반도 먹고 그래서 머리카락 많이 나 알았지? 내가 아빠니깐 특별히 주는 거야"


평생 음식이 맛있다 맛없다 평가하지 않고 주는 대로 드시는 저렴한(?) 입맛을 가진 남편이 만 모녀의 콩싸움의 최종 피해자는 본인이라며, 이런 지나친 친절은 사양하겠다며 구시렁거렸고 우리 모녀는 그 모습이 우스워 키득대며 밥을 먹었다.




호랑이 콩밥을 먹으니 고소한 맛이 참 좋다. 그리고 밥상에서 투정 부리던 나에게 할머니가 하시던 그 멘트를 지금 내가 다시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웃기다.


"OO아 너 그거 알아? 호랑이 콩밥심신 안정에 도움 되는 거. 수능날 아침에도 내가 해줄게"


"응 엄마. 나 아침 안 먹고 갈 거야. 우리 엄마 많이 먹어"


농담 같으나 절대 농담이 아닌 작은 아이의 대답에 나는 잠깐 갈등이 됐다 하아... 나는 결국 흰밥을 해야  것인가...


호랑이 콩밥을 먹으며 생각한다. 그 시절 할머니도 밥투정하는 손녀가 안타까우셨겠지? 그리고 먼 훗날 내가 할머니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후회하는 것처럼 작은 아이도 호랑이콩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오늘을, 나를 리게 될까? 그 기억을 소환하며 그저 웃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야나할머니와 염소똥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