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래 똥땅한 배를 누르믄 껍디가 툭 터지재? 그 안에 든 콩은 요 바가지에 담고 알이 생기다 만거나 벌개이 문거 있음 느지 말그래이"
콩 까는 일이야 막내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에다 누가 집은 꼬투리에 콩이 더 들었는지 놀이도할 수 있는 일이라 기꺼이 달려들어콩 꼬투리를 여니 알록달록 동그랗고 예쁜 호랑이 콩이 줄 맞춰 들어있었다.
"할머이 이래 마이 까서 뭐할라고?"
"뭐 하긴 밥에도 느코 떡도 해 묵고 강네이죽에도 느지"
"그라믄 나 안 해. 난 콩밥도 콩떡도 싫어"
"이잉역전 장터 김 씨 새닥이 호래이 콩 한 바가지 갖다 달라했응께 한 바가지만 까다오"
나는할머니에게 내일 아침밥엔 콩을 넣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딱 한 바가지만 까겠다 유세를 부리며 바가지를 채워갔다.
호랑이 콩밥
"아 엄마 왜 자꾸 콩밥이야콩자반도 있는데"
작은 아이가 식탁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먹어봐 먹어보고 말해. 얼마나 맛있는지. 수험생 머리가 팍팍 돌려면 단백질 단백질 몰라? 할머니가 특별히 챙겨주신 콩이니 좀 먹어봐"
"응 몰라. 그리고 단백질은 엄마가 부족이잖아. 나는 정상범위니깐 엄마가 다 먹어"
아이는 숟가락으로 콩을 죄다퍼서 내 밥그릇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잽싸게 밥그릇을 손으로 덮자 아이는 콩 무더기를 아빠 밥그릇으로 덥석 옮겨 놓았다.
"아니 콩을 왜 날 다 줘"
"아빠 아빠도 단백질 필요하잖아. 이것도 먹고 콩자반도 먹고 그래서 머리카락 많이 나 알았지? 내가 아빠니깐 특별히 주는 거야"
평생 음식이 맛있다 맛없다 평가하지 않고 그저 주는 대로 드시는 저렴한(?) 입맛을 가진 남편이 지만 모녀의 콩싸움의 최종 피해자는 본인이라며, 이런 지나친 친절은 사양하겠다며 구시렁거렸고 우리 모녀는 그 모습이 우스워 키득대며 밥을 먹었다.
호랑이 콩밥을 먹으니 고소한 맛이 참 좋다. 그리고 밥상에서 투정 부리던 나에게 할머니가 하시던 그 멘트를 지금 내가 다시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웃기다.
"OO아 너 그거 알아? 호랑이 콩밥이 심신 안정에 도움 되는 거. 수능날 아침에도 내가 해줄게"
"응 엄마. 나 아침 안 먹고 갈 거야. 우리 엄마 많이 먹어"
농담 같으나 절대 농담이 아닌 작은 아이의 대답에 나는 잠깐 갈등이 됐다 하아... 나는 결국 흰밥을 해야 하는 것인가...
호랑이 콩밥을 먹으며 생각한다. 그 시절 할머니도 밥투정하는 손녀가 안타까우셨겠지? 그리고 먼 훗날 내가 할머니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후회하는 것처럼 작은 아이도 호랑이콩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오늘을, 나를 떠올리게 될까? 그 기억을 소환하며 그저 웃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