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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Nov 30. 2024

야나할머니와 까매주이

까매주이는 까마중

아직은 파란 까마중

"엄마 엄마 있잖아 왜 이파리는 춧잎 같이 생기고 열매는 머루 같이 생겼는데 익으면 까매지고 달달한 맛 나던, 밭가에 엄청 있던 그 까만 열매 이름이 뭐였었지?"


갑자기 한 나의 질문에 엄마가 골똘히 생각하시더니


"까마중 말하는 거 같은데"


"어 맞네 맞어. 까마중. 나는 마중이라 불렀고 할머이가 까매주이라 르던 거"


"닌 뭔 아가 여태 그런 거까지 다 기억하고 그러나? 싱겁기도"


"그니까 엄마. 내가 이 머리로 공부를 했으면 진짜 잘했을 텐데"


나의 농에 엄마가 웃으시며


"아매 저 뒤안 탱자나무 밑에 까마중이 몇 포기 있는 거 같던데"


나는 엄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탱자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나보다 더 나이 많으신 탱자 영감님

"엄마 진짜야 마중이가 있어. 근데 아직 파란데 먹으면 탈 날까?"


"그래 궁금하믄 한 번 먹어봐라 탈이 나나 안 나나"


"흠, 죽는단 소린 아닌갑네. 먹어 보라고 말하는 거 보이"


나의 농에 엄마가 또 웃으셨다.


"엄마 요즘도 이거 이파리 뜯어서 나물해 먹고 그래?"


"요새 누가 그걸 먹어. 먹을게 지천인데. 예전에야 기침에 좋다고 노인들 나물해 먹고 달여 먹고 그랬는데 먹는 것도 조심해야지 잘 못 먹으면 간수치 높아져 클나. 까마중은 독성도 있고 인젠 농약도 많이 쳐서 몸에 좋다고 막 먹다간 119나 장례식장 밖에 갈 데가 없어"


"엥? 근데 그 위험한 걸 나보고 왜 먹어보라 했어"


"니 진짜 먹을라 했나? 맹물도 맹물도. 누가 지 아빠 딸 아니랄까 봐 귀 얇은 거 까지 어쩜 저리 똑같은지"


오늘도 엄마와 나의 대화는 내가 아빠를 닮았다는 얘기로 종결이 났다.




"니 이거 무 볼래?"


할머니가 뿌리째 뽑아 들고 오신 파란 풀포기에 종알종알 달려 있는 까만 열매 세알을  내 손에 건네셨다.


"할머이 이거 뭔데? 맛있어?"


"맛있고 말고. 이게 까매주이라는 기여"


"머루 같은거여?"


"머루보다 맛이 더 좋지. 이래 싹 말리 놨다가 작두로 썩썩 썰어 한 주전자 끓이 무믄 지침도 멎고 가래도 들끓지"


"할머이는 뭐 맨날 천날 기침에 좋고 가래에 좋대"


"이잉. 느 할애비도 이거 달이 묵고 지침 들하잖나"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문지방을 세다 못해 불안하게 넘어오던 할아버지 기침 소리와 가래 뱉는 소리가 줄어든 것 같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가 처마 밑에 달아둔 주머니에서 대추 한 움큼, 둥굴레 한 주먹, 삽주뿌리와 마중이를 꺼내 오라 하실 때면 마치 약재상 직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 시절 가장 신기했던 것은 일정한 속도와 소리, 결과물을 보여주던 할머니의 작두질이었는데 손꾸락 짤리믄 클 난다고 하도 겁을 주셔서 멀찌감치 떨어져 작업을 돕다 키도 크고 손도 커지면서, 어쩌면 할머니의 기운이 쇠하면서 자연스레 내 몫이 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쪼맨할 때는 모르고 용감하게 먹었던 까마중을 이렇게나 몸집이 커졌음에도 독성이 있다는 엄마 말에 쫄아 파란 까마중을 차마 따먹진 못하고 다음에 집에 들를 때 까맣게 익어 익기를 바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엄마와 대화하던 도중 정말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기가 막힌 나의 어릴 적 별명을 하나 찾아냈다.


"맹물"


나의 어릴 적 별명은 "맹물"이었다.

그땐 왜 맹물인지 몰랐지만 식구들이 모두 나에게 맹물이라 불렀다.

그러면 나는 그 맹물이란 소리가 듣기 싫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고 그러면 또 어른들은 그게 웃겨서 또 맹물이라고 놀리고. 나는 삐져서 다시는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겠다고 선포를 해 놓고서도 마당 어디선가 할머니가, 바깥 마당서 아빠가, 부엌에서 엄마가 부르면 금세 잊고 또 쪼르르 달려갔다. 속도 없이 해맑게 웃으며.




내가 까마중을 좋아했던 이유.

어린 나에게 까마귀와 까마중은 한 글자 차이였는데 느낌은 정말 천지차이였다. 특히나 나는 약초 이름에 들어가 있는 '마중'이란 말이 참 좋았다. 그래서 좋아했다.


어둠 속에 까만 점처럼 작던 할머니를 마중 가던 길,

어둠을 뚫고 묵직하게 굴러오던 아빠의 경운기 소리를 듣고 뛰어나가던 마당,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대문을 들어서던 동생들 손을 잡아채 씻기던 수돗가에서 내 손과 동생 손으로 미끌매끌 옮겨지던 비누의 촉감과 손으로 만들던 비눗방울들 까르르 웃던 동생들 웃음소리,

 달에 한 번 야간자율학습이 없던 날 알뜰히 모은 용돈으로 동생간식과 문구류를 사서 집에 돌아오던 언니를 한 시간 전부터 마중 나가 길가에 있던 까마중을 따 먹으며 서성이던 버스 정류장이 어제 본 영화처럼 선명하게 지나간다.


시간은 흘러 이제는 나의 퇴근길 마중을 와주는 남편이 고맙고,

딸네미가 학원서 돌아오는 길 마중을 갈 수 있어 신나고,

친구가 온다는 동네 지하철역이 정겹고,

엄마가 오시는 고속터미널이 설레고,

올해도 나에게 감말랭이를 준다며 찾아오는 이웃언니를 마중 나가 서성이던 신호등이 얼마나 행복한 발걸음이었는지 떠올리며 마중을 받을 수 있어서, 마중을 나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마음이 울컥해졌다.


그리고 불변진리일까? 여전히 나는 식구들에게 "맹물"로 불리고 있다.

그래도 이젠 울지 않고 웃는다. 예전엔 서러워서 울었다면 요새는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지는 단풍도 이쁘고 노을도 이쁘고 나는 그저 걷고 있을 뿐인데 나에게 죽어라 짖는 강아지도 귀여워 눈물이 난다. 여전히 엉성하고 어설픈 나지만 나는 웃음을 주고 웃고 살 수 있어서 좋다.




까마중을 만나 내가 부르던 "마중"이란 이름을 추억하다 떠올려진 수많은 기억들. 정말 나의 기억력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그저께 아침에 뭘 먹었는지도 기억도 못하면서. ^^


이 글을 쓰는 지금 굳이 욕심을 부려본다면, 그저 소박한 작은 바람이 있다면, 다음번 집에 때는 까맣게 익은 까마중을 들여다보는 것을 잊지 않고 몇 알 따 먹고 왔으면 좋겠다. 뭐 새떼들이 이미 먹었다면 어쩔 수 엄꼬. 그런데 어떻게 기억할까? 탱자나무 밑에 있었으니 탱자탱자를 외워야 하나? 각인되게 손뼉 한 번 쳐 볼까?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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