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바라기 Dec 06. 2024

야나할머니네 소낭구 이야기

소낭구는 소나무

눈의 맴매에 아야 한 나무들

톱질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꽁꽁 감춘 나무의 나이테를 보는 일이 얼마나 대근한 일인지를.

장작을 패 본 사람은 안다. 작은 틈도 없이 빼곡하게 품고 있는 나무의 사연들을 쪼개어 듣는 일이 얼마나 감 푼 일인지를.


그 어마 무시한 일을 소리 없는 눈이 해냈다.

처음에 눈이 내릴 땐 이쁘기만 했는데 한 시간 두 시간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눈을 보며 슬슬 불안해질 무렵 뉴스에서 눈의 무게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눈의 무게는 눈을 치워보지 않은 사람은 체감할 수 없기에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구나, 내일 출근은 어찌하나 온통 그 걱정뿐이었다.




뉴스에서 괜한 소릴 한 게 아니었다. 눈은 정말 예상 적설량 대로 내렸고 무거웠다.

아직 단풍도 채 들지 못한 파란 나뭇잎들과 시들지 않은 국화꽃이 눈에 묻혀 허부적 거리고 있었지만 구해줄 수도 구할 방법도 없었다. 버스도 오지 않고, 지하철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길에 나섰는데 얼마 가지 못해 몇 번이나 넘어졌고 그나마 진탕에 넘어지지 않고 눈 밭에 넘어진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푹푹 빠지는 눈길을 조심조심 앞서 걸어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다행히 고맙게도 눈이 빠른 속도로 녹았고 빙판길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눈이 녹고 나서야 알았다. 생각보다 많은 나뭇가지들이 부러지고 주변의 건물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여름 장마처럼 흐르는 흙탕물에 운동화만 젖지 않으면 좋겠다고 폴짝 거리며 걷다가 결국은 발목까지 퐁당 빠져 발이 시린 것인지 운동화가 시린 것인지 감각도 없는 발로 열심히 집으로 걸었고 그 길에 해마다 나에게 봄이 옴을 가장 먼저 알려주던 징검다리 버드나무도, 사시사철 나에게 푸른 손짓을 건네주던 소나무들이 마른오징어 같이 죽죽 찢어진 모습에 내 마음도 죽죽 찢어졌다.




나는 소나무가 참 좋다. 좋아한다.

자랄 때 흔하게 보고 자란 나무기도 하지만 소나무를 태울 때 나는 특유의 향이 있는데 그 솔가지를 태워 솥밥을 해 먹으면 그 밥맛은 정말 기가 막힌 맛이 나 혹여나 나중에 귀촌을 하게 된다면 매일매일 솥밥을 해 먹고살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나의 노후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이번 폭설유독 많이 부러진 소나무 가지들. 고향집 뒷산 같다면 전부 긁어 모아다 아궁이에 불이라도 지피겠지만 도회지선 부러진 소나무 가지는 그냥 쓰레기일  정말 너무 아깝고 안타깝다. 나무가 정도로 자라려면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되는 것인지, 사실 나무를 심은 사람과 나무만이 아는 비밀 일 텐데...




"할머이 나 낭구 하러 갈 건데 어느 산에 가서 비야 안 혼나?"


"낭구는 해서 뭐 할라고?"


"크리스마스트리 맹글라고"


"마당에 저 향나무한테다 하지 뭘 산까정 갈라고"


"아니 저런 나무 말고 요래 세모처럼 생긴 나무 비다가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거여"


"생낭구가 을매나 무거운 줄 아나? 나무 비다가 잘못 자빠지믄 깔리 죽어"


"에이 할머이도 누가 그래 큰 나무를 빈대. 쪼맨한거 비서 올거여"


"남의 산에 가서 애써 키워 논거 비지 말고 저 뒷동산 넘어 신데이 가는데 짝은 소낭구들 마이 컸드라 거 가서 비온나"


나는 의기양양한 몸과 마음으로 달랑달랑 아빠의 톱을 들고 뒷동산에 올랐다.




마당에서 올려다보았을 땐 작았던 나무들이 숲에 들어서니 키가 굉장히 컸다. 나는 어떤 나무를 자를까 고민하다 중간 크기의 나무를 자르기로 하고 톱질을 시작했는데 아무리 톱질을 해도 나무는 도통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팔에 점점 기운은 빠지고 잠시 쉬는 사이 주변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라도 나면 혹시 멧돼지가 나를 지켜보다 쾅하고 송곳니로 들이받는 것은 아닌가? 겁도 났지만 그림책에서 봤던 것처럼 멋진 나무를 해 가 마당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것을 생각하니 다시 힘이 솟았고 지금 기억으론 한 3미터짜리 소나무를 베었던 것 같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 드디어 소나무가 큰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하지만 가파른 산에 넘어진 생 소나무를 오솔길까지 끌고 오는 일이 추가된 고비였고 장갑도 끼지 않고 작은 톱 한 자루 달랑달랑 들고 간 그 용기는 금세 쪼그라들어 나무를 버리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둑어둑 해가 지려고 하고 있고 등에 땀이 식어 점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끄집어내 오솔길까지 소나무를 끌어냈고 잔디 썰매를 타던 뒷동산에선 손쉽게 끌고 내려왔다.


문제는 동네 입구에서였다. 울퉁불퉁 돌멩이가 튀어나와 있는 비포장 길에 무거운 소나무를 끌고 가려니 잔디밭에서 끌던 것보다 곱곱절의 기운이 들어 점점 발걸음은 더뎌지고 있었고 소나무에서 나온 송진이 잠바며 바지에 머리카락에 묻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가까워지는 우리 집 지붕을 쳐다보며 불끈 힘이 솟았고 거름터미에 재를 버리러 나오셨던 할머니가 달려오셔서 나무를 끌어주시며


"빌나기도 빌나기도. 누굴 닮아 기운이 이래 억센지" 하며 웃으셨다.




그런데 나무를 벨 때 보다 더 큰 문제는 나무를 세우는 일이었다. 무겁고 키가 큰 나무를 세울 마땅한 도구가 시골집엔 없었다. 나의 계획은 세모 같이 잘 생긴 나무를 마당 가운데에 세우고 형형색색 장식품을 달아 새벽송을 오는 교회식구들과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나무를 세우는 일에서 막혔고 이미 해가 지고 어둑해져 어쩔 수 없이 소나무를 향나무 옆에 세워두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깜짝 놀랐다.

분명히 세모로 서 있어야 할 소나무가 축 늘어지고 하얗게 서리가 붙어 내가 베어 온 나무인가 의심부터 들었고 어제 그렇게도 씻었지만 아직도 내 손은 찐득거렸고 계속해서 송진 냄새가 났다. 결국 나의 크리스마스트리는 향나무에 기대어 말라갔고 아빠의 톱질을 당한 쇠죽불 장작이 되어 그렇게 사라졌다. 내가 나무를 산에서부터 끌고 오던 것을 보신 동네 어른들은 내가 나무까지 해다 나르는 부지런한(?) 소녀로 아셨고 할머니는 두고두고 나를 장시 소녀(장사 소녀)라고 놀렸다. 아! 그리고 가장 변화라면 엄마가 시내에 가셔서 진짜 크리스마스트리 세트를 사 오셨고 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에만 엄청나게 크리스마스트리가 마루에 하니 있어 동네 사람들도 친구들도 구경하러 왔었다.




부러진 소나무 가지를 보다가 어릴 적 엉뚱하기 그지없었던 추억을 떠올려 보며 웃었다.

아직도 저렇게 파란 소나무 가지를 보면 심장이 꿀렁거리고 뛰는 것은 나는 천상 시골 사람이 맞나 보다. 이제 나무를 베서 트리를 만들 일은 없겠지만 솔가지를 주워다 냄비밥은 먹을 있을 거란 생각은 내내 나를 설레게 함은 분명하고 아직까지 시에선 나무를 거두는 일을 하지 않고 있지만 저 나무들도 곧 푸른빛을 잃고 자연으로 돌아가겠지? 올 겨울엔 더 이상 눈 피해로 나무가 다치는 일이 없길 바라며 캣맘이 주고 가던 사료는 까치떼만 와서 먹고 간다. 냥이들은 이 눈 속에 다들 어디로 간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