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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할머니와 잭뚜

잭두는 작두

by 별바라기

"야나 여 갑빠 깔고 잭뚜 좀 논나"


"할머이 약 짜를라고?"


"오이야"


오늘 유난히 다리가 아픈 할머닌 깔아드린 갑바 위에 다리를 펴고 앉아 작두질을 시작하셨다.


사각사각


일정한 소리와 일정한 모양으로 잘려 나오는 약초들의 정갈한 모습에 나도 작두질을 해 보고 싶어졌다.


"할머이 나도 해 보믄 안 돼?"


"아서 손꾸락 달아나"


"나 잘할 수 있다니깐. 나 딱 한 번만 할게 할머이. 하는 거 보고 그만하라믄 그만할게"


할머니를 따라 해 보고 싶어 졸라봤지만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니 그 얘기 들어봤나?"


"무슨?"


"저 신데이 재 너머에 꽃분이라는 이쁜 샥시가 살았는데 잭뚜질 거들다 손꾸락이 짤린기여"


"그래서? 피가 마이 나 죽었어?"


"피가 나기만 해. 피가 콸콸 쏟아져 사람이 픽하고 쓰러졌대잖나. 쑹떵 짤리니 허연 삐가 다 비고 손꾸락 빙신됐지. 그래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하다 낭중엔 농약 묵고 죽었대지"


"엥? 뭐 손가락이 없다고 약을 먹고 죽어. 바보같이"


"이잉 바보는. 누가 손꾸락 빙신을 샥시로 델꼬 가기나한대. 그라니 죽었지"


"그니까 내 말이. 시집 안 가고 혼자 살면 되지 죽긴 왜 죽냐고"


그날 할머니와 나는 꽃분처녀의 사고와 죽음, 결혼 얘기로 한참을 마당서 시끄럽게 있었지만 할머니는 절대 내게 작두를 넘기지 않으셨다.




"야야 니 내 대신 잭뚜질 좀 해 다오"


"잉? 할머이 언제는 꽃분이 운운하믄서 겁을 싱가지껀 주더니 나한테 작두질을 다 맡기고?"


"약빵에 약 맞춰 논거 갖다 줘야는디 손이 붓고 꼽아 잭뚜질이 안되네. 손꾸락 바짝 붙이지 말고 요래 멀찌감치 떨어져 들이 밀고 짤르래이"


할머니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무릎 관절염이 이제는 손에도 쳐들어와 할머니의 손가락은 붓고 휘고 제 모양을 잃었다. 할머니 손은 작기도 작았지만 손톱이 얼마나 예쁜지. 그런데 그 예쁜 손이 퉁퉁 부어 바늘만 살짝 갖다 대면 펑하고 터질 것 같은 찐빵손이 되어 있었다.


이제 중학생인 내가 여전히 못 미더운 할머니는 작두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나의 오른손이 위아래로 움직여 사각사각 소리를 낼 때마다 몸을 움찔움찔하셨는데 나이가 들어도 너~무 많이 들은 작두는 생각보다 다루는 게 쉽지 않아 사실 나도 엄청 겁을 먹고 경계하며 조심조심 자르고 있었다. 한석봉 어머니가 할머니였다면 둘쑥날쑥 약초 크기와 굵기를 자유자재로 자르는 나는 한석봉이라 하면 맞았을까?




사무실에 절단기를 새로 샀다.


기존에 쓰던 것이 날이 무뎌지면서 종이를 자르지 못하고 자꾸 물고 늘어져 사용자들의 원성이 생겨 장만했는데 그 성능이 어찌나 강력한지 사각사각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새 작두가 도착해 있으니 사용하세요. 대신 탈 순 없습니다."라고 메신저를 보냈더니 웃음 가득한 이모티콘을 담은 답장들이 날아왔다.


새로 들어온 절단기에 신이 난 한 부장님이 연신 자르고 계신 사각사각 종이 잘리는 소리에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손녀 손가락이 달아날까 걱정에 걱정을 하시던 할머니 마음. 그리고 꽃분이 얘기는 할머니가 겁을 주려하신 거짓부렁인 줄 알았는데 자라면서 알게 된 것은 실화였고 나보다 한 살 많은 동네 오빠도 작두로 장난치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다쳐 한동안 학교에 못 갔는데 어른들이 오빠는 나중에 군대에 못 간다고 하셨다.


열 개 다 있는 손가락에 대한 감사를 이렇게 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었나... 나는 두 아이 출산 때나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운운했고 나의 손가락 개수엔 크게 감사한 적이 없던 것을 떠올리며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그 감사는 엄마 아빠의 몫이었겠지? 그리고 손과 관련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어 적어보자면 나의 결혼 예물을 타지서 맞추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며칠 뒤 다시 들러주십사 연락이 왔다. 이유인 즉 신랑 신부 반지 치수가 바뀐 것 같다는 것이었고 나는 부끄러움을 감수하며 측정하고 온 게 맞다고 조심스레 우겼지만 업체서 부득부득 다시 나와 줄 것을 요청해 출두했더니 제작하시는 분이 엄청 당황해하셨다. 왜냐하면 측정하고 온 게 맞았기 때문이다. 하필 측정과 제작자가 달랐던 업체 현실에 신랑보다 반지가 큰 신부를 감히 상상이나 했겠나.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며 민망함과 부끄러움 대신 할머니 덕분에 잘 보존된 손가락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대신 손이 예쁜 남편, 아이들을 보며 오늘도 위로를 받는다.


"엄마 변태지?"


작은 아이가 눈을 개슴츠레 뜨고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왜~에?"


"아까부터 자꾸 내손을 만지작만지작 하잖아"


"눈치챈겨?"


여느날과 다른 나의 빠른 수긍에 작은 아이가 배를 잡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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