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 난 뭔지 알았음. 엄마 시장 다녀오셨어요? 작년에도 남문시장서 굴비처럼 엮어 있는 거 사 오셨잖아요."
"그니까 그게 뭐냐고?"
"바다 미꾸라지 같은 게 있어"
남편이 작은 아이에게 힌트를 주었다.
"에? 바다에도 미꾸라지가 있다고?"
"바다에 미꾸라지가 사는 게 아니고 바다 미꾸라지라고도 한다고 "
"아 몰라 그냥 먹을래. 우와 엄청 부드럽네. 열빙어인가?"
"잘 봐봐 비슷하지만 색이 다르고 알 식감이 다르잖아"
역시나 눈썰미와 미각이 남다른 큰 아이다.
"니 내 먹자 할 때꺼정 여 손대지 말래이"
"할머이 그게 뭔데?"
"이거 앵미리여"
"엥? 앵미리? 이름이 뭐 이래 웃끼? 그리고 왜 지푸라기다 끼 놨어?"
"웃기긴. 이게 삐에 을매나 좋은데. 요래 새끼에 꼬 놔야 꾸덕꾸덕 잘 마르지"
"언제 먹을 수 있는데?"
"못 본칙하고 지달리고 있음 먹을 끼여"
할머니가 장에서 사 오신 앵미리 다발은 며칠 동안 할머니방 앞 빨랫줄에 걸려 있었다.
해가 지기도 전에 부지런히 집집마다 쇠죽불과 군불 때는 냄새와 연기로 채색된 동네가 마치 구름 속에 묻혀 있는 무릉도원 같았다. 엄마소가 목에 단 종소리를 연신 울리며 김이 나는 쇠죽을 우적우적 씹고 있을 때 버강지 안에 시뻘갛고 반짝이는 숯불들이 거뭇거뭇 힘을 잃어가려 하자 할머니가 힘껏 부르셨다.
"빅에 적씨랑 앵미리 삐끼온나"
"할머이 오늘 앵미리 먹어?"
할머니가 나의 커진 눈을 보며 웃고 계셨다.
할머닌 아궁이 속에 있던 빨간 숯불들을 화로에 담지 않고 아궁이 앞으로 끌어내 석쇠를 펼치고 새끼줄에 꿰여 잔뜩 꼬부라져 있던 앵미리를 쭉쭉 펴 숯불에 굽기 시작하셨는데 작은 생선이 구워지는 냄새는 구름 속 마을까지 들뜨게 해 아까부터 옆집 할아버지네 고양이 순이까지 외계인 눈을 하고 마당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자 니 무 봐라. 잘 익었능가"
"할머이 이건 걍 이래 무?"
"요래도 무꼬 무꾸 넣고 뻘겋게 쪼리도 묵고"
"나는 빨간 거보다 이게 좋아"
할머니가 새까맣게 그을린 앵미리 껍질을 손으로 쓱쓱 털어 반으로 뚝 자르자 김이 폴폴 나는 흰 속살을 우선 앞니로 아주 조금만 떼먹어 보았다. 아주 조금만 먹었는데도 도랑에서 잡아먹던 피리나 버들치 맛 하고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고소한 맛이 났는데 무엇보다 배를 채우고 있는 포슬포슬하고 고소한 알맛이 일품이었다.
"할머이 진짜 맛있다. 내가 태어나서 먹은 것 중에 일 등이야"
"마한 것. 그래 맛나나?"
"근데 할머이 왜 화로서 안 꾸고 여서 꾸?"
"연기가 마이 나니 그라지. 방에서 너구리 나와"
나는 입가에 검댕이를 묻혀가며 순이도 외면한 채 머리까지 알뜰히 먹어치웠다.
꽤나 오랫동안 이 생선의 이름을 앵미리로 알고 컸는데 진짜 이름은 양미리였다. 그리고 희한 케도 남편도 양미리를 좋아해 매해 겨울이 되면 일부러 챙겨 먹는데 그 영향인지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잘 먹는다. 올해 생물 양미리를 첨 사봤는데 왜 반건조를 해서 먹는지 이해가 된 것이 연해도 느므 연해서 젓가락으로 간신히 집어 입에 넣자마자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았다.
"오~ 내가 딱 기대했던 맛이야"
"진짜? 생전 안 하는 음식 칭찬을 다하고 맛있어?"
"응 무가 딱 내가 기대했던 맛이네"
여느 때 같았으면 접시를 치웠겠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들이 양미리 조림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신 시모 미소에 나는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얌전히 밥을 먹었다. 그리고 혼자 머리를 굴려봤다. 양미리를 굽자고 갑자기 캠핑을 갈 순 없고, 화재경보기와 후드레인지만 협조를 한다면 김 굽는 석쇠에 한 번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뼛속까지 푹 익히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고 집안 구석구석에 숨어 숨바꼭질을 할 냄새들을 잡아낼 자신도 없었다.
나는 무를 깔고 빨갛게 조린 조림을 먹고 있는데 머릿속에선 빨간 숯불 위에서 자글자글 기름 소리를 내며 석쇠 위에서 까맣게 구워지던 양미리가 맴맴 돈다. 인내심이라곤 개미 똥구녕만큼도 없던 내가 양미리가 구워지던 그 시간 동안 궁둥이 한 번 들썩하지 않고 할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그 인내의 시간들. 인내는 쓰고 앵미리는 달다고 드디어 할머니가 손으로 툭툭 재를 털고 김이 폴폴 나는 양미리를 반으로 뚝 잘라 손에 건넸을 때 느껴지던 그 뜨거움과 고소함이 아직도 손에 느껴지는 것만 같다.
양미리가 골다공증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양미리 철에 나도 남편 따라 부지런히 먹어둬야겠다. 그러려면 역시 맛있게 구워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항상 나의 모든 질문에 또 나온 똑같은 답. 얼른 귀촌을 해야 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