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쑥떡쑥떡
작은아이 친구 엄마이자 나의 친구이기도 한 이웃 엄마가 폭설을 헤치고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선물을 주고 갔다.
"자기 이 떡 좋아한댔지? 맛이나 보라고"
긴긴 겨울밤 뭔가 먹고는 싶은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입이 심심한 것인지 맘이 허한 것인지 모를 절묘한 타임에 뚝 하고 떨어진 쑥 찰떡. 쫜득쫜득 쫄깃한 떡을 잘라 콩가루에 버무리니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근데 우리 밤에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야?"
순식간에 떡을 두덩이나 없앤 나에게 작은 아이가 괜찮다는 말투로
"엄마 이거 다 먹고 나랑 운동하고 자자"
할머니가 왕 외할머니(아빠의 외할머니) 첫 기일로 봉화 친정에 가셨다. 할머니가 없어서인지 쇠죽만 끓을 정도로 장작을 태워서인지 물건을 찾으러 들어간 할머니 방이 괜히 낯설고 썰렁하게 느껴졌다. 하루, 이틀, 사흘. 여러 날이 지났지만, 할머니는 오시지 않고 이젠 지나가는 버스도 관심 없이 혼 빠지게 회관 마당서 놀고 있는 나에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승호가 소리쳤다.
"야 OOO 니네 할머이 뻐스서 내리시드라"
다마치기(유리 구슬치기)를 하던 나는 바닥에 쌓아둔 다마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스멀스멀 흘러내리려는 바지허리춤을 잡은 채 헐레벌떡 집으로 갔다.
"할머이 왜 이르케 늦게 왔어? 거가 그래 좋아?"
"그럼, 좋다마다. 내 니가 하도 말을 안 들어 고매 안 올라다 왔다."
"피이. 할머이 나빠"
"야나 이거 정지에 갖다 논나"
할머니는 보자기 안에 있던 묵직한 봉다리 하나를 건네셨다.
할머니가 내어준 봉다리 안에 든 것은 초록색 떡과 하얀 분으로 화장한 시커먼 곶감이었다. 초록색 떡은 딱딱하게 굳어 마치 네모난 벽돌 같았는데 진짜 벽에 튀어나온 못을 치면 박힐 판이었다. 엄마는 떡을 스댕 사발에 담아 전기밥솥 안에 넣어 두었고, 저녁 밥상엔 말캉말캉한 초록색 떡이 올라왔다.
"야나 무 봐라. 할미 첫 지사 지낸다고 봄에 쑥 뜯어놨다 맹근 떡이랴. 맛이 을매나 좋게"
"할머이는 쑥떡이 거서 거지"
"이잉. 멥쌀 아이고 찹쌀 이래니"
나는 고집을 부리고 먹지 않았다.
다음날 밖에서 고드름을 따 쭐쭐 빨며 놀던 나는 손이 시려 할머니 방으로 갔는데 고소한 냄새가 방문 밖까지 솔솔 흘러나왔다.
"나 빼놓고 다들 뭐 먹지?"
소리치며 벌컥 방문을 열자, 화로 주변으로 할머니, 작은집 동생들과 내 동생들이 모여 있었다.
"언니야 할머이가 우리 떡 꼬 준대. 쪼끔 띠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어"
석쇠 위엔 어제저녁에 먹고 남은 초록색 벽돌 덩어리가 올려져 있는데 떡은 너무 더디게 익었다.
"할머이 떡 꼬질 때 기다리다 숨넘어가겠다. 걍 후라이팬에 꼬 먹음 안돼?"
"승질머리도 이럴 때만 급해가꼬. 거 정지 가서 후라이하고 지름 갖고 온나"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떡을 올리자 타닥 소리를 내며 떡이 흐믈흐믈 익어갔다.
그때 프라이팬에 구워 먹었던 쑥 찰떡의 고소함과 쫄깃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친구 덕에 다시 맛본 쑥 찰떡. 언제 먹어도 일품이고 콩가루를 찍어 먹어도 참 맛나다. 문제는 손을 대면 멈출 수 없다는 것(후덜덜)
희한케도 떡을 마주하면 친정 추억이 유별나게 짙어진다. 아마도 떡을 함께 먹던 가족들과의 추억이 콩가루로 조청으로 꿀로 버무려져 그렇겠지? 우적우적 쑥 찰떡을 먹으며 새삼 모든 것들이 아련히, 소중함이 느껴지는 날이다. 아울러 행복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