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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May 07. 2024

야나할머니와 쑥, 쑥 이야기

쑥 먹고 쑥쑥 클 것을

남편은 쑥국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나라를 구하러 다니는 것도 아닌데 희한 케도 쑥이 나는 시기에 맞춰 일부러 쑥을 뜯으러 시골을 갈 여유는 허락되지 않아 마트나 동네 야채가게의 힘을 빌어 쑥국을 끓여주고선 엄청 생색을 는데, 시어머니 생신으로 내려간 어느 주말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어마무시하게 뜯어 놓으신 쑥을 발견했다. 쑥절편 두말을 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쑥이었다.




양쪽 무릎수술로 움직임도 자유롭지 않으신 분이 이만큼의 쑥을 뜯으시려면 대체 몇 시간을 들에 계셨던 걸까? 감사함과 비례하게 올라온 죄송함,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아들에게 집착하시는 것 같은 불편함의 감정까지 버무려져 들녘의 겨울이야기와 맛을 전해 줄 반가운 쑥향부담스럼까지 보태 코로 들어왔다.


"당신 어머니 덕분에 올봄 쑥국은 원 없이 먹겠다. 근데 단군시대 곰도 이만큼은 먹지 않았을겨"


나는 쑥을 최대한 오래 보관하기 위해 포장을 하면서 끝내 마음의 소리를 농담으로 둔갑시켜 내질렀스스로 맘이 불편해 있었다. 남편이 이걸 눈치챘는지 못 챘는진 아직까지모르고 있고.




"야야 내하고 쑥 뜯으러 안 갈래?"


"할머이 어데로 갈낀데?"


"어데로 가서 쑥을 뜯나?"


가뜩이나 음치인 할머니가 이상한 곡조를 붙여 대답하셔서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할머이 엄청 웃기"


"마한 것 우숩긴"


할머니가 기분 좋을 때나 웃길 때 하시는 행동, 손등으로 콧볼을 훔치셨다.




내가 할머니를 따라 쑥을 뜯으러 가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두 동생을 떼어내고 맘껏 돌아다니고 싶은 이유 하나와 열심히 할머니를 도와 뜯은 쑥이 장터에서 돈으로 바꿔지면 장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내 손바닥 위에 동전올려주시는 쏠쏠한 재미가 둘이었다. 


나는 그 무렵 굉장한 삐딱선을 탄 소녀였다.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던 막냇동생까지 모질게 떼어버리고 할머니를 따라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동네에 도로포장 때문에 설치해 둔 공사현장 사무실에서 우리를 따라 놀던 막냇동생이 동네 짓궂은 녀석이 흔든 창틀서 떨어지면서 울퉁불퉁하게 부어 놓은 콘크리트 바닥에 이마를 찧었고, 도려내듯 떨어져 나간 살점 사이로 피가 분수처럼 뿜어 올랐다. 그 작은 이마에서 어찌 그리 많은 피가 나는지 여름 장맛비처럼 흘러 윗도리가 금방  물들었다.

나는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동생 이마를 짚은 채 집으로 갔고 엄마는 급한 대로 엄마가 외출할 때 신는 스타킹으로 동생 머리를 고정시킨 뒤 자전거에 동생을 태우학교 동네에 있는 보건지소로 출발하셨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에 보인 것은 엄마 허리춤을 잡고 있는 파리해진 작은 동생과 엄마가 어찌나 빨리 페달을 굴렀는지 앞으로 굴러가는 자전거가 아니라 통통 튀어가는 자전거였다. 




보건지소에서 지혈을 하고 온 동생. 깊게 파인 상처는 꿰맬 수도 없고 그저 날이 지나 덧나지 않고 살이 차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희한 케도 다친 곳은 이마였는데 눈까지 시커먼 멍이 내려왔고, 여지없이 그날 저녁 나는 가지 말라 신신당부한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는 이유 더하기 동생이 흘린 피값만큼 엄마한테 맞았다. 엄마한테 맞으면서 억울하기 그지없고 동생을 다치게 한 그놈을 낼 뒤지게 패줄 각오로 매를 견뎠는데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엄마에게 발동된 반항심에 다시는 동생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 득이 있음 실도 있기 마련. 자유의 득이 생겼다면 가장 큰 실은 엄마의 눈 밖에 나서 매를 있는 대로 번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이마가 터져 있는 막내를 나 몰라라 떼어 놓고 다니니 일하랴 애보랴 엄마의 예민지수는 높아졌고, 가뜩이나 새까만 피부에 허구한 날 봄볕을 쬐며 할머니 그림자가 된 나는 씻어도 새카맸고 안 씻어도 새카만 아인데 엄마는 새카맣다는 이유로 나를 또 혼냈다. 그래서 나는 보란 듯이 더 동생을 떼놓고 쏘다녔다.


결국 숙제도 하지 않고 또 쑥을 뜯다 온 그날. 할머니와 엄마의 전쟁은 발발했고 엄마의 불만은 할머니가 나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것, 할머니의 불만은 툭하면 나를 때리는 엄마의 양육방식이었다.

고부간의 오가는 고성을 들으며 처음엔 내편이 되어준 할머니가 고마웠지만 점점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에 시작됐다는 후회와 앞날에 대한 걱정이 백두산만큼 내 맘에 쳐들어왔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늘 그랬듯이 막냇동생 그림자를 달고 다녔고, 할머니의 외로운 쑥 채취는 쭉 이어졌는데 나는 엄마가 먼 밭을 가는 것을 확인하곤 막냇동생을 업고 할머니를 따라나섰고 동생에게 비밀과 약속이라는 조기교육을 했다. 다행히도 엄마에게 들키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인 것은 쑥을 뜯는 것은 더딘 일이었으나 봄은 너무도 후딱 달아난 것인데

봄이 더 길었다면 나는 분명 엄마에게 꼬리가 밟혔으리라.




쑥국을 끓였다.

남편은 콩가루가 과하게 들어갔다며 한 소리했고 나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은혜로 묵어 은혜로"


쑥은 열심히 뜯기만 했지 국은 입에 맞지 않아서 즐기지 않았던 나는 식탁에 앉아 쑥떡 먹는 상상을 하고 있고, 혹시 그래서 몸도 맘도 쑥쑥 크지 못했나? 하는 생각쑥국을 왕창 먹고 남편이 뭐로 변할지 상상하다가 사래가 걸리도록 웃었다. 올해 들어 한 상상중에 가장 웃긴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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