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방 화로 위에는 항상 주전자가 얹어져 있었는데 할머닌 우리가 떼 지어 뛰어다니면 화로가 넘어질 수도 있고 재가 날린다고 질색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할머니 방 화로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할아버지가 드실 가래떡도 반가웠고 겨울철엔 할머니가 장에서 사 오신 양미리가 구워지는 냄새도 참 좋았다. 그리고 쇠죽을 끓이고 군불 지핀 아궁이에 고구마나 감자를 가끔 묻어 놓기도 했는데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먹지 못하고 아침까지 쭉 잤던 날도 수없이 있었다.
"야야 이거 무봐라 이거 무믄 기침이 끄친다"
"할머이 이게 뭔데?"
"이거 머우물 머우물이여"
할머니는 기침하는 내게 머위 꽃 끓인 물을 마시라고 주셨다. 나는 그릇 안에 자잘 자잘한 나뭇잎 조각들이 보이는 것이 마치 진딧물 흔적 같아 마시기도 전에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은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면 할머니는
"마한년" 이라며 당신이 호로록 소리 내며 드셨다.
할머니는 봄이 되어도 머위를 드셨다. 파란 입이 돋아나면 그것들을 뜯어다가 삶아서 무쳐 드셨고 가끔 어른들의 밥상에 쌈으로 올라와 쌈을 싸서 드시기도 하셨는데, 나는 그 쓴맛이 입에 맞을 리 없었다. 절기를 따라 해가 길어질수록 머위 싹들은 쑥쑥 자라서 긴 줄기를 자랑하면 할머니는 가마니 가득 머위를 뜯어오셔서 나에게 윗동에 붙어 있는 이파리들을 뜯어내라 하시고 당신은 당신이 나물을 다듬고 약초를 다듬는 지정석에 자리를 펴시곤 긴긴 시간을 머위대 껍질을 까셨다. 그리고 머위대는 일부는 우리의 밥상으로 그리고 일부는 장에 장사꾼들에게 전달되었다.
"딸 너 비타민 안 먹었어"
밥을 먹고 일어난 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비타민 봉투를 본 나는 아이 방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 참 엄마. 먹는다고 왜 아침부터 소리를 질러"
"누가 소리를 질렀다고 그래. 걍 큰 소리로 말한 거야"
비타민을 입에 털어 넣으면서 아이가 이어 하는 말
"엄마 근데 혹시 건강 염려증 있어? 왜 이렇게 비타민에 집착해?"
"집착이 아니라 겨우 비타민만 먹는데 이거라도 잘 먹으라고"
출근길 아이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게 내가 건강 염려증이 있었나?’
그러다 내내 나의 마음속에 미안함으로 남아 있던 할머니의 인삼 사건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친정은 장수 집안이었다. 그 윗대 할머니도 그 시대에 90대까지 사셨고 친정어머니는 100 수하셨으며 할머니의 언니도 98살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당신도 100살은 넘게 살다 돌아가실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고 나는 정말 그럴 그거로 생각했다. 허나 남들은 오래 사신 거라 했지만 87살에 영면하신 할머니가 그리 장수하셨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평생을 산을 출근지로, 진통제의 효과도 먹통이 되어 더는 산에 오르실 수 없게 되자 할머니는 장터에 나가셔서 머무시는 시간이 길어지셨다. 장에 가셔서 하시는 일은 채소 파는 아줌마네 고구마 줄기도 까주시고 마늘도 까주시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오시는 것이었는데 할머니는 꽤나 즐거워하셨다.
할머니는 항상 내가 퇴근 후 타는 막차 버스 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셨는데, 어쩌다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도 있었다.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시는 승강장 앞을 지날 때면 으레 할머니부터 찾는 습관이 생겼고, 그날도 혹시나 할머니가 보일까 살피려는 찰나 몸채만 한 보따리를 드시고 버스에 오르시려는 게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일어나 버스 앞문으로 가 할머니의 보따리를 받고 할머니를 끌어올렸다. 퇴근 시간과 막차 출발시각까지 시간이 넉넉했던 나는 항상 버스 종점까지 걸어가 출발하는 버스에 앉아 집에까지 앉아 갈 자리를 확보했기에 그 자리에 할머니를 앉게 해 드리자 할머니는 한시름 놓았다는 큰 숨을 쉬시곤, 잇몸에 딱 맞지 않는 틀니를 진정시키며 당신이 뭔가 신이 나셨을 때 지으시는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니 이게 뭔지 아나? 이거 아주 좋은기다"
나는 막차에 탄 수많은 사람의 눈과 귀를 의식하여 할머니한테 알았다고 눈짓을 하고 어두워진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대문간에 들어선 할머니와 나를 보고 부모님은 내가 장을 봐온 줄 아셨다. 나는 그 짐들을 할머니 방에 갖다 드리고 부랴부랴 밥상을 차렸고 식사를 마치신 할머니는 당신이 얻으셨다면서 두루마리 휴지와 밀가루, 수세미, 때 타월, 섬유유연제, 트리오 등 생필품들을 한가득 꺼내 보이셨다. 나는 그제야 할머니의 짐이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난리가 났다.
할머니 이름으로 배송된 생산자 불명의 인삼 추출물과 오만 구천 원이 찍힌 열두 장짜리의 지로용지가 택배로 도착했는데, 정말 눈 씻고 찾아봐도 검증된 업체도 아니었고 이깟게 칠십만 원이 넘는다니. 동봉된 안내문엔 연체 시 어쩌고 저쩌고 하고 험악한 말들이 적혀 있는데 할머니는 그나마 당신이 부추도 뜯어다 주고 머우도 갖다 줘서 싸게 산 거라며 오히려 그 약장수 놈들을 두둔하셨다. 화가 난 아버지는 마당으로 나가셨고, 할머니한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이 약장수들이 할머니에게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글을 읽으시지 못한다는 것을 파악한 후, 집 주소, 집전화번호, 아들 이름에 손자 이름까지 물어서 물건을 보낸 것이었다. 할머니는 얼마나 세뇌를 당하신 것인지 드시지도 않은 약의 효능에 흠뻑 빠져 계셨고, 당신이 돈이 있으니 다달이 갚겠다고 하셨지만, 부모님과 나는 그런 할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지혜롭지 못했던 내가 원망스럽다. '플라세보 효과'를 생각하면 설사 그 약이 한심한 재료를 때려 넣어 달인 인삼 물이었어도 할머니가 그 약을 드시는 동안 즐겁게 드시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글은 모르셨어도 음력과 달이 가는 것, 절기는 기가 막히게 기억하시는 분이라 육만 원을 주시면서 달부 내라고, 천원은 심부름 값이라고 주셨던 그 할머니를 왜 그 당시엔 한심하다고 생각했었을까…. 그리고 점점 해가 갈수록 몸에 좋다고 하는 말에 귀가 번쩍 열리는 나를 보면서 할머니도 나처럼 몸이 아프니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딸아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비타민 세 알. 나와 남편은 네 알. 사실 나는 아침마다 이것을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가족들에게 먹이고 있는 나를 본다. 나도 할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몸에 뼈가 되고 살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고 내가 먹고 싶은 그저 그 마음뿐인데 가족들이 그 마음을 몰라주었던 것밖에.
자연에 순응하기 보다 계절을 거스르는 농업 기술의 발달로 제철을 잃은 과일들의 출하는 나를 아쉬움도 기다림도 모르는 이기적인 주부로 길들여 놓았다. 이런 나를 보며 달래, 냉이, 돌나물, 두릅, 참죽순, 머위, 부추, 민들레 등 주변에 건강한 식자재를 잘 활용하셨던 할머니의 지혜가 떠오르고, 그 먹거리 지혜로 우리 가족을 건강하게 건사하셨음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일하지 않고 쉬면 죄짓는 사람이란 생각에, 쉬시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무조건 일만 하셨어야 했던 그녀의 인생, 그리고 당신이 손수 버신 돈으로 가족들의 밥상에 고등어와 임연수라도 올려 주시곤 흐뭇해하셨던 그 표정을 왜 그 당시엔 읽어 드리지 못하고 감사하다 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감이 크게 밀려오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