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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Mar 28. 2023

서말 하삼두 화백

사순시기에 기억나는 사람

'사순'(四旬)은  '40'이라는 뜻이다.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 <성경>에서 이 숫자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를 준비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탈출 34,28), 엘리야도 시내산(호렙산)에 갈 때 40일을 걸었다(1 열왕 19,8).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시며 유혹을 받으셨다(마태오 4,1-2). 이처럼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을 만나는 데 필요한 정화의 기간을 뜻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올해는 4월 9일 주일이다) 기쁘게 맞이하려면 이 사순 시기 동안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요즘이 사순 시기다.                               


원동 배내골 가는 길목     

성 요한 수도원을 찾았더랬지요.     


사순의 성체조배를 하고,     

구두 뒷 굽에 해동의 젖은 황토를 한 짐 지고     

뒤뜰을 돌아 나왔지요.     


향기 머금은 매화꽃 봉오리 몇 개     

손으로 꼭 감싸 쥐고...     

그렇게 바람처럼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한나절 동안 차 안에서 나눈     

친구와의 신론 대화만으로도 흥감했는데,     

더 욕심을 내어     

산 고개 너머 삼랑진의 ‘윤사월’ 펜션을 들러     

봄나물처럼 풋풋한 그 집 내외분께     

떼를 써서 냉이 국 얻어먹고...     


찻잔 늘어놓고     

감춰 간 매화 그 속에 띄워     

우리 네 사람, 머리 조아려 찻잔의 개화를 감탄합니다.     


말로도 붓으로도     

끝내 그 향은 그려 낼 수 없었지만     

분명 혀끝, 코끝의 감각과 그 시간의 고요함은 기억되고도 남았습니다.     

                                                                                               -하삼두의 <차 잔 속의 開花> 全文-     


문인화와 전례미술로 유명한 하삼두 화백의 세례명은 스테파노다.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밀양에 작업실이 있고 대구 가톨릭 대학 유스티노 인문학 대학원의 외래교수다. 그는 몇 군데 성당건축에 참여했고 (성당의 벽면 테라코타와 내부장식, 스테인글라스에 성화가 아닌, 먹으로 개발한 특유의 기법으로 묵화를 그려냈다) 2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가톨릭 신앙을 담은 소소한 작품들을 모아 <그렇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 <지금 여기> 등 명상 그림 집을 펴냈다.     


이런 하 화백은 먹그림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먹으로 화선지 특유의 질감을 살린 순간의 붓질로 번짐과 겹침을, 원과 근을 감칠 나게 표현해 가는 문인화에 한참을 서서 말을 걸면 그 그림은 내게로 다가와 숲이 되고, 강이 되고, 나무가 되고, 길이 된다. 찰나의 번짐으로 글이 되는 그림 앞에 내가 빨려 들면 그 그림은 어느새 내게, 깊은 명상의 길로 안내한다]          


몇 해 전 하 화백의 강의를 5주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먹그림이 그려져 있는 12장짜리 달력과 1~2호 크기의 소품 몇 장을 얻어 책상 위에 걸어 놓았다.    


물의 번짐을 겁내지 마라.


그림은 자신이 70% 종이가 30%로 그린다.


사물과의 충분한 대화 후에 사물이 말하는 것을 표현하라.


보이는 것을 모두 표현하려고 하지 마라.


그림을 버릴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모험심을 가지고 그려야 그림에 변화가 생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오는 그림이 멋지다.”     


붓으로 피사체를 화선지에 옮기는 그의 시선에 살짝, 내 카메라로 대치하고 보니 구구절절 내게 던지는 표창이었다. 이번 주말엔 산과 들과 바다로... 어디로든 나가 볼일이다.               

                                              <자신의 작품으로 열강 중인 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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