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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없는 수정본은 없다

by 로그아웃아일랜드

나름 만족스러운 글을 쓰고 이틀 정도 후에 다시 읽으면 수정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발견한다. 갓 쓰고 난 후에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군데군데 수정을 마치고 며칠이 지나 한 번 더 읽는데 고칠 부분이 또 눈에 들어온다. 구시렁대며 또 손을 댄다. 수정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수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원본을 써내렸던 자만이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진 결과물은 언제나 원본이 존재하며 원본을 만드는 단계, 즉 '시작'이 없으면 당연히 결과물이 존재할 수 없다. 주변의 훌륭한 결과물들은 보통 되게 터무니없고 볼품없는 상태인 원본의 단계를 거쳤을 것이다. 사실 그런 원본이 있었음을 알기에 현재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그 노력의 시간을 더욱 숭고하게 느끼기도 한다. 파일명에 '_진짜 최종' '_최최최종' 이 담겨있을 때 실소가 터지면서도 그 수정의 과정을 문득 상상하게 된다. 수정본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건 원본의 탄생부터 시작된 지난한 과정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본을 만들려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 원본을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생해서 만든 원본이 볼품까지 없다면 마음이 쓰라리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에 비해 결과물이 하찮을까봐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시간이 곧 금인 요즘 시대에 남들의 잘 만들어진 결과물을 소비하고 이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그리고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라도 자신의 결과물을 만들어본다면 그 성취감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 테다. 그리고 결과물을 만들어낸 나를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만들어봐야 한다. 생산자 또는 창작자로 살아보는 일이 그리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내가 관심을 주로 갖는 분야에서 가볍게 시작해 보면 되는데 그것이 요리가 될 수도 있고, 사진촬영이 될 수도 있고, 균형 잡힌 몸을 만든다는 점에서 운동이 될 수도 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러지 않는 것에 비해 개개인을 더욱 살아있게 만든다.





결과물을 만드는 것의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원본을 만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일임을 안다면 우리는 원본의 퀄리티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만드는 원본은 걱정한 것보다 쉽게 만들어지기도 하며 꽤 괜찮기까지 하다. 만든 직후 우리는 원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수정할 부분이 보이면 한 번 더 매만지고, 또 보이면 또 매만진다. 원본에 수정의 손길이 두텁게 쌓여간다. 결국 완성된 결과물의 퀄리티가 어떻건, 우리는 만들어낸 것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되며 그 모든 과정이 우리 속에 어떤 불씨를 남긴다. 뜨거운 성취감 또는 무언가를 더 만들어 보겠다는 앞으로의 열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공간에서 초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오늘날의 이것저것들을 둘러볼 때마다 원본을 만들던 순간부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땐 그랬는데, 저 땐 이랬었지. 그렇게 향수에 젖었다가 문득 또 수정을 한다. 위치도 틀어보고, 다시 매만지고, 정리를 하고 나면 또 살짝 새로운 모습이 되어있다.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고쳐지고 있는 모든 것들과 산다. 그리고 그 고쳐진 것에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원본의 모습이 계속 서려있다. 역시 원본 없는 수정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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