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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Dec 17. 2024

공테이프와 도돌이표

미니픽션 & 삼행시

 너- 로 인해

 는- 건


 그- 리움. 그러나 그리움도 식상하여

 의- 식적으로


 말- 벗을 찾아 그리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아쉬움이란 녀석의

 씀- 씀이는 어쩐지 심술궂고 박하여,

 에- 리고


 아- 련하다.

 무- 전기에 가득 섞인 잡음으로

 것- 도는

 도- 돌이표.


 더- 러는

 하- 나님에 관하여 말하였다.

 지- 루하게도


 말- 세를 2천 년 넘게 지나고 있다면서

 아- 린 것도 아련한 것도 2천 년이면 지루하다 못해 지리멸렬할 것이라며 투덜거리다, 우연히 녹음된

 라- 디오 사연을 발견한다. 오래 전 당첨된 이야기를 읽어주는 디제이의 목소리를 다시금 들었다. 설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겉도는 도돌이표와 설레는 그리움)





전원을 연결하자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연 보내주신 분, 감사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될 거예요."

오래된 휴대용 더블테크 카세트를 발견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부서지고 먼지가 낀 그 기계가 작동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거기에 아직도 장착되어 있던 테이프에선 오래 전에 녹음해 두었던 음악 프로그램의 디제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사연을 읽는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내 기억 속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오래전 내가 보낸 사연이었다.

그 사연이 끝날 지점에 라디오 디제이는 노래를 하나 틀어주었고, 그 노래를 듣는 동안 잠시 추억에 젖었다. 그리고 그 노래가 끊기고 광고가 나올 지점에서 갑자기 끊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시엔 공테이프에 여러 번 반복해서 녹음을 하곤 했는데, 아마도 라디오 프로그램을 덧씌우기 전에 있던 녹음 자료였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반복되는 건 무슨 이유일까?" 

무전기 속에서 잡음이 흘렀다. 녹음 테이프 속에서는 무슨 맥락에서 하는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무전기를 들고 말하는 듯했다. 그즈음 그랬던 것 같다. 무전기를 들고 옆 동네 있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걸 재미 삼아 공테이프에 녹음했던 건 기억이 났다. 

잡음이 심한 공테이프에서 나는 주파수를 맞추는 듯했다. 그 손길은 느릿했다. 어쩐지 테이프 속은 비라도 내리는 밤 같았고, 더울 것 같았다. 밤은 지루했고, 기다림은 더 지루한 어떤 날이었을 것 같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확히 기억한다기보단 그냥 그런 날이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지금의 기분 탓일 수도 있었다. 그리움이라는 단어조차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반복해서 들리는 소리는 점점 감흥을 줄어들게 했다. 아름다운 추억인지도 알 수 없으니, 그곳으로 감정을 이입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테이프가 작동하는 걸 알고는 더블데크 카세트를 만직작거리며,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쓴다. 무엇을 쓰겠다는 의도를 지니고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우연히 시작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나는 잡음 섞인 소리를 반복해서 듣다가 고개를 숙였다. 한참 동안 기억 속 설렘과 현재의 무감각함 사이에서 헤매다가 문득 라디오를 끄고 생각하려 했다. 사실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글감을 메모하려다가 볼펜을 놓고는 침대에 누웠다. 테이프는 탁 걸리는 소리를 내면서 B면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헛돌았다. 탁, 탁, 탁. 

정지 버튼을 누르며 생각했다. 

‘그래도 다시 설렐 수 있을까?’

무전기와 라디오는 조용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리움의 도돌이표 속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헛돌아도 도는 것은 도는 것이었다. 시작도 끝도 없이,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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