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중국에서도 한자를 다른 문자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한글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시도를 주도한 인물은 원세개,
위안스카이였다.
스카이(SKY)가 이름에 들어 있을 만큼
한국 명문대의 사정에 밝은 사람이라는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위한 스카이. 스카이를 위하여. 어머니가 맹자의 엄마일 것 같은 이름이다.
그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위안스카이는 군벌로
청나라 정국에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자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한자를 한글로 바꾸려는 의견이 있었다고 하니
괜찮은 사람 같다. 단, 멀리 있을 때만.
한국에 있으면 뒷목 잡게 하는 구태한 권력이었겠지만,
어쨌든 그가 보기에도 중국의 문맹률은 심각한 수준이었나 보다.
물론, 이 시도는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그냥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의견 피력 수준에서 끝났다고 안다.
초기의 윤석열 식이다. 질러 놓고, 여론의 반응을 보고, 아니면 철회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사안은 그럴 만했다.
나라의 문자를 바꾼다는 건 굉장히 민감한 문제니까.
그때 반대 논리가 조선의 망국적 상황이었다.
“망한 나라의 문자를 쓸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야 표음문자의 효율적 특성으로 한글의 우수성이 대단하다 하지만,
문자를 익히는 것으로 엘리트성을 겨루던 잔재가 여전했던 시절,
의미를 진중하게 표현하는 예술적 문자와 달리,
한글은 그냥 음이나 소리나는 대로 표현하는 가벼운 글자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사상과 혼을 담아 자연과 관념을 드러내는 것과는 별 상관 없는 글자.
문자에 민족성과 문화적 잠재력이 담겨 있다는 믿음으로 볼 때
망한 나라의 글자는 후진성을 반영한 것이란 믿음도 있을 만했다.
어?
그런데,
그때 조선의 위정자들은 한자 썼는데요?
청에서도 한자 쓰지 않았나요?
이빨 빠진 호랑이도 대국이라고
조선을 그리 모욕하다니요.
그럼에도 그들이 보고 있는 국가는 유럽 열강이었을 것이다.
알파벳.
그렇게 치면 사상이고, 혼이고 그런 게 아니라
오롯이 표면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이 근거였을 것이다.
지금도 국력에 따라 그 나라의 것이 더 세련된 기준이 되는 것은 여전하니까.
결국 그들은 중공 시절, 알파벳으로 한자의 발음기호를 표시하는 것으로 안다.
이왕이면 자기들보다 강한 나라의 문자.
무엇보다 효율적인 면이 있다. 많은 나라에 보급되어 있다는 보편성.
실제로 어쩌면 한글보다 더 실용적인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초성 중성 종성을 한 단위로 묶어 음절 하나를 표현하여 소리마다 음절 단위로 끊어지게 하지 않는 특성.
Boy는 ‘보이’라는 두 음절로 인지하지만
실제로 원어민 사이에서는 ‘보-이’여서 마치 1.5음절이나 1.7음절의 느낌이 드는 것처럼.
중국어에도 그런 게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역사적 맥락에서 한글을 쓰는 게 자존심에 상처 받는다 여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 나?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한글의 우수성을 이해했던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층 중 한 사람,
마오쩌둥 시절의 사람이라도 언뜻 읽은 것 같은데
그 사람이 한글을 발음 체계 표기나 전면 도입을 검토했던 적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책 반영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는데
그때 되었으면
우리가 한자 때문에 고생을 할 일은 연구 차원으로만 국한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문자를 바꾼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은 아니다.
문맹률 걱정으로 한글을 도입하기보다는 문맹을 택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대신 간체가 개발되었다. 이 문자가 한자를 많이 아는 자국민에게는 추론될 논리성이 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어려운 문제 체계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한국에서 옛 문헌을 보려면 번체를 공부해야 하고, 일본어와 대만어를 이해하려고 해도 그런데
중국은 간체를 들이밀다니.
문자를 줄였다는데도 몇 천 자.
정말 중국 공산당 최고위급이었다는 그 간부가
한글을 표기 문자로 막 밀어붙였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선가 분명히 그에 관한 정보를 읽었다.
인터넷에서도 잘 찾기 어렵다. 하지만 난 분명히 보았다.
“착각한 게 아니냐고? 기억이란 온전한 게 아니다”라고 짚어줄지 모른다.
그래도 난 보았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확신하느냐?”라고 다시 짚어줄지 모른다.
그래, 어쩌면 난 보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보았다...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온전한 게 아니라고 읊조릴지도 모른다.
모른다. 내가 뭘 알겠는가.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