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 전여빈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옆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마치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담은 듯한 고요한 옆모습을. 거기엔 결단과 슬픔, 그리고 한 줌의 희망이 엉켜 있다. 나는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너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사랑의 끝은 폭발하는 감정이 아니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자신과 타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란 것을.
우리가 함께였던 시간들은 때로는 찬란했고, 때로는 무거웠다.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내 안에 잔상처럼 남아 있다. 너와 함께 웃던 순간은 따스한 빛처럼 기억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헤어졌던 그날의 어둠은 더 깊은 그림자를 남겼다. 그날, 너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너의 어깨너머로 보았던 옆모습은 마치 모든 걸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더 이상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
“그래도 행복하길 바란다”는 작은 기도,
그리고 “내가 더는 버틸 수 없었다”는 무언의 고백이 얽혀 있었다.
헤어짐은 단순히 누군가를 잃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한 부분을, 내 안의 무언가를 떼어내는 고통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했는지 스스로 묻게 되었다. 너 없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익숙해지는 듯했지만, 그 익숙함은 이따금 날카로운 가시처럼 나를 찌른다.
커피 잔을 놓을 때의 작은 소리,
지나가는 낯선 향기,
거리를 걷다 마주친 두 손을 잡은 연인의 모습.
그런 것들이 내게 너의 흔적을 소환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를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슬픔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어쩔 수 없는 복잡함이 있다. 원망과 감사, 미련과 안도, 사랑과 허망함이 뒤엉켜 있다. 너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마치 내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내가 더 노력했더라면 달라졌을까?”
“너는 나를 완전히 잊었을까?”
“우리가 서로에게 준 상처들은 이제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할수록 나는 알게 된다.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순간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반짝이고, 빛을 잃은 별들처럼 하늘 한 구석에 머물고 있다. 너와 나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 기억은 내게 남아 있다. 내가 살아가는 내내 나와 함께할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위안이 되고, 때로는 짐이 될지라도.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너를 완전히 잊고 싶지 않다는 것을. 너는 나의 일부였고, 그 사실을 부정하려 할수록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사랑의 끝은 완전한 망각이 아니라, 그 관계의 무게를 인정하고, 그것을 내 안에 한 조각으로 품는 일이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처럼.
빛은 사라졌지만,
그 길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너의 옆모습이 떠오른다.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한 그 얼굴이.
나는 더 이상 너를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내가 너를 사랑했던 그 시간들과 화해하려 한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놓아주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