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지막을 내가 선사해 줄께!

by 온혈동물

그리운 친구 하빈에게.


하빈아, 잘 지내지?

네가 이 이메일을 보고 있다면, 아마 내가 너를 만나러 갈 수 없는 상황일 거야.

너랑 같이 보낸 그동안의 시간들이 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 너였을거야. 힘들었던 학교 생활에서 네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던 순간이 참 많아. 근데 지금 고백하자면, 난 널 정말 좋아했지만 한편으로 지독히도 질투하기도 했어. 너무 질투가 나서 네가 미웠던 적도 있어.

넌 내가 가지고 싶었던 모든 걸 가지고 있었거든. 내가 원하던 여자로의 삶이 너에게 당연하게 주어졌고, 그것도 아주 넘치는 예쁜 외모를 가지고 말이지. 그래서 가끔은 네가 너무 부러워서 시샘하기도 했지. 그렇지만 아주 잠깐씩이었어. 그냥 친구들끼리 갖는 질투심 정도일 뿐이었어.

우리가 그 사람을 같이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네가 뉴질랜드로 떠나고 그가 나에게 다가왔어. 이미 그전에 그가 너한테 관심을 있는 걸 알고 있었어서, 너 때문에 나한테 연락한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그가 아니라고 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알고 있다고, 내가 여자로서 느껴진다고.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어. 그래서 그가 하자는 대로 게이바에서 친구들을 만들고 그들을 한 명씩 유인해서 그에게 데리고 갔어. 그는 근처에서 택시로 위장해서 우리를 태웠고, 병원에서 빼돌린 졸레틸을 음료수에 섞어서 피해자들에게 먹였어.

그가 차 뒤에서 피해자들을 목 졸라 죽일 때 나는 운전석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그리고 우리는 피해자들을 여러 곳에서 기도하는 자세를 만들어 유기했어.

왜 그랬냐고?

그건 아마도 살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했던 나를 바라봐준 그에게 내가 눈이 멀어서였을거야.

마지막 피해자를 남성으로 그가 선택했을 때 이상했지만, 그가 나에게 그가 한 것처럼 살인을 강요했을 때 아마 난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가 나를 이 모든 살인에 대해 책임지게 하려 한다는 것을. 아마 그가 그 피해자에게 나의 흔적을 남겼을 거야.

내가 마지막 피해자의 목을 조를 때, 그날 나는 나를 죽인 거야. 그러니깐 하빈아,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친구였고, 네가 곁에 있어서 나로 살 수 있었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그와 같이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었어.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한 한인원장님과 영주권에 대한 서류도 준비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에게 라스베이거스라는 낯선 여행객들이 많은 곳이 그의 살인에 대한 욕망을 마음껏 실행할 수 있는 곳이어서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




하빈은 오석의 이메일을 다시 읽으며 흐르는 눈물로 눈앞이 흐려졌다.

그녀의 앞에는 보검이 죽은 것처럼 소파에 쓰러져 있었다.


몇 달 동안 하빈은 보검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한인 원장들을 수소문해서 연락했고, 그가 일하고 있는 동물병원을 알아내고는 미국으로 온 지 이주정도 지났다. 그녀는 보검의 병원 근처에서 그를 따라다녔고, 그의 집을 알아냈다.

그가 낮에 없는 동안 그의 집에 들어가는 것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마시는 음료수와 물에 과량의 수면제를 섞었고, 잠들어 있는 그에게 작은 관을 식도로 넣어 메탄올을 주입했다. 그가 깨어나면 그는 시력을 잃을 것이다. 메탄올은 적은 양으로도 실명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다.


하빈의 그녀가 약을 주입했던 모든 물병과 음료수 병을 수거하고 떠나기 전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깊은 잠에 빠져 편안하게 누워있는 그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그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자신의 살인에 대한 욕망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빈이 다시 동물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늘 병원과 집을 오가며 쉬는 날은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복싱장에서 숨이 턱까지 차도록 줄럼기를 하고 펀칭백을 치고 나면 몸은 물먹은 하마처럼 무거워졌지만 머리는 맑아졌다.

그런 루틴이 오석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조금씩 옅어지게 만들었다.


하빈은 모처럼 대학 동기모임에서 나가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거 알아? 어떤 수의사가 미국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실명이 됐데. 라스베이거스인가 어디에서 일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더라는 거지. 병원에 가도 이유를 모르고. 그래서 다시 한국 돌아왔다고 하던데, 그 사람 이제 일도 못할 텐데 어떡하냐? 나 그 얘기 듣고 미국 수의사 준비하던 거 다시 생각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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