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게 가난해서 세 번이나 자살기도를 했던 '세이노의 가르침'의 저자 세이노님은 그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차라리 살 거라면 피보다 진하게 살자'라고 결심했고, 그후 엄청난 부를 이루며 성공했다. 그는 자신이 어느 순간 망하게 된다면, 언제라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어제 우연히 본 한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의 강남 벤츠 매장의 영업이사인 한 여성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초등학교 때 한 아이큐 검사에서 98을 받아서 충격을 받아 그 후로는 '난 머리가 나쁘니 무조건 노트하는 습관을 키웠다'라고 말한다. 또한 집이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조차 야간 상고를 다녀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는 현재 연예인들이 산다는 압구정의 현대아파트에 살며 200억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인터뷰 마지막에 '앞으로의 희망은 무엇인가요? 에 대한 대답은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였다. 아직도 자신은 자신이 쓰는 돈을 꼭 써야 하는지 고민하고 걱정한다고 한다.
그 인터뷰에서 그가 최근에 보기 시작한 책이라며 소개한 것이 '세이노의 가르침'이었다.
그의 인생관과 비슷하며 자신에 취향에 맞는 책이라고 말한다.
이때 내가 든 생각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이 이 사람들에게 성공에 대한 지독한 추진력을 준 원동력이 아니었을까?'였다.
나는 내가 여태까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 인생의 큰 굴곡 없이 살았던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그로 인해서 나는 결혼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할 때까지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물론 진짜 흙수저로 태어나 죽을 만큼 힘들었던 세이노님 같은 사람들에겐 말도 안 되는 배부른 철없는 생각이란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워런버핏처럼 변호사 아버지 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어도, 어린 시절부터 돈에 관심이 많고 투자를 시작해 세계적인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기에, 어린 시절의 경험이 삶을 결정짓는 전부의 요인이라고는 할 수 없기도 하지만 말이다.
최근 병원에서 스태프들과 갈등을 겪은 후에 잠시 이직을 고려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의 연봉이 최근에 많이 오른 탓에 이 정도의 혜택을 줄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더 큰 연봉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은 24시간 오픈하는 병원들 뿐이데, 그럼 야간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내가 50이 넘어가는 나이에 그런 조건으로 일하는 것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후 병원들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이 방문하여 나와 스태프들 그리고 매니저와의 트러블을 대화로 풀려는 시도를 했고, 그들과 얘기한 후 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나의 친구가 아닌 동료이기에, 내가 그들과 감정적인 교류가 중요하지 않으며, 서로 같이 일을 하는데 서로 협력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당연한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 후에 나는 스태프들과 아주 평탄하지만 거리감을 갖는 사이로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다.
결국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일을 최선의 상태로 잘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이 되면 된다는 것이다.
벤츠의 강남매장의 이사는 여자로서 영업왕이 되면서 힘들었던 일들을 담담히 얘기했다.
남자들만 있는 곳에 여자로서 겪는 고질적이지만 일상적인 어려움,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고충을 담담히 얘기하면서, 그래도 자신이 성공한 이유는 영업이라는 일을 좋아하고 또한 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워라밸이란 단어는 없다고도 말이다.
병원에서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은 대부분 이십 대이거나 삼십 대 초반의 사람들인데, 나는 가끔 그들이 열정페이를 받는 사람들 같다고도 생각한다. 최저 임금보다는 조금 더 많이 받긴 하지만, 미국이라는 곳에서 특히나 물가가 비싼 캘리포니아에서 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단지 동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일을 시작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과 매일 부딪히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일을 좀 잘한다 싶은 사람들은 테크니션 라이선스를 받는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해 좀 더 높은 연봉을 받거나 다른 일로 이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격증 없이 일을 하면서 연봉을 높이는 방법은 매니저급으로 승진하는 것인데, 그도 크게 임금의 인상은 바라기 힘들다.
더러는 테크니션으로 일하면서 수의과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미리 그 과정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대부분의 다른 직원들에 비해 일에 대한 열정이 높다.
그래서 나머지 대부분의 어린 직원들은 그냥 하루하루 살기에 바쁘고, 매일의 일과에 지쳐한다. 주 4일 근무도 힘들어하고, 이주에 한번 받는 페이첵으로 근근이 버티기 일쑤다. 항상 지각을 일삼고, 막상 일을 하러 나와도 반쯤은 정신이 다른데 팔려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중 한 직원은 25살에 4살짜리 아들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인데, 이 년 전에는 혈액암으로 투병하다 완치된 경우이다. 성격은 좋은데 지각이 일상이고, 같인 일하는 모든 직원들이 걱정할 정도로 그의 삶은 엉망이다. 그런 그가 지난주 토요일일에는 뭔가에 수가 틀어졌는지 하루종일 피곤해하더니 나중에는 일 자체에 대해 짜증을 내며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수의사인 나는 나와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보다 항상 더 많은 날을 일한다. 기본이 주 5일이고, 가끔 아니 이번주도 주 6일 근무를 신청했다. 스태프들은 주 4일 이상의 추가근무를 하면 페이의 1.5배를 받기에 병원에서는 그들의 추가 근무를 대체로는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의사의 경우는 수가 부족하고, 일단 수의사가 없으면 병원자체를 열 수 없으니, 일하는 수의사는 무조건 환영이다.
그런데도 스태프들은 언제나 나보다 피곤한 건 왜일까?
나에게도 아마 워라밸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40대 중후반이면 퇴직에 대한 걱정을 시작한다. 그런데 50대에 들어간 내가 환영을 받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크나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일한 시간별로 보수를 받는 스태프들과 달리 연봉을 받을 수 있고, 추가근무를 하면 기본 셀러리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알바를 하러 온 한 삼십 대 수의사가 주 7일을 일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는 미국 군대에서 계약직 수의사를 하면서, 추가근무를 주말에 더 하는 상황이었는데, 지난 2-3년 정도 그렇게 했다고 말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을 일에 몰두하게 하는 것일까?
어떤 일을 잘 못하면서 그 일을 몰두하게 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도 내가 하는 일을 잘 못한다면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내가 잘 모르는 케이스가 오거나, 내 진료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무슨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그 벤츠 영업이사의 말처럼 그 일이 재미있고 잘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같이 종종 보는 하버드를 졸업한 한 수의사가 단체톡-나랑 같이 근무하는 여수의사와 그 친구 세명만 있는-에서 자신은 주 3일 일을 하면서 올해 연봉 3프로 인상이 되어 이만큼의 연봉을 받는데 너네는 얼마를 받냐며 물어보았다. 사실 미국에서 대놓고 연봉을 물어보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기도 하고, 나는 주 4일이긴 하지만 그 친구보다 연봉이 너무 높아서 막상 말하기가 쉽지 않아서,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자'라고 톡을 했더니 그 후에 대화가 끊겨 '삐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