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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08. 2024

이주의 휴가가 남긴 것!

Two weeks vacation

2017년에 미국으로 온 후 아마도 처음으로 긴 휴가를 보낸 것 같다. 

휴가 기간이 길 때는 한국을 두 번 정도 갔었기에, 시차 후유증을 회복하면 끝이 났던 시간이었다. 이번에 두 주간의 긴 휴가에 5일 정도 태어나 처음 하는 크루즈 여행을 제외하면 나름 여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오신 엄마를 모시고 간 크루즈 여행은 정말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그야말로 백수(?)의 한가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지고 갔던 두 권을 소설을 다 읽을 수 있었다는 것만을 봐도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여행을 하기 전 아무 준비도 하지 않는다'의 신조를 갖고 있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짐을 꾸려 크루즈에 올랐다. 물론 딸 둘과 남편 그리고 엄마까지 가는 여행이라 바리바리 짐을 싸긴 했지만, 가서는 하루종일 뭔가 먹고, 커피를 아마도 하루에 네 잔은 넘게 먹은 것도 같다. 간간히 엄마, 남편과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칵테일을 마셔보기도 했다. 십 대인 두 아이들은 각자의 나이에 맞는 클럽에 가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다 돌아왔기에 애들에 대한 부담도 별로 없었다. 


다만 모든 음식이 느끼하다 보니, 며칠이 지나니 식당에 들어서서 나는 치즈냄새가 좀 역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컵라면이나 고추장 캡슐이라도 챙겨 올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간 날 때마다 소설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놀러 와서 무슨 책만 읽냐며 타박을 하시기도 했지만, 나는 오래간만에 읽는 스릴서 소설의 재미에 한껏 빠져버렸다.


미국수의사를 준비하면서, 결국은 영어로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처음 영어시험 준비를 하면서, 나는 모든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영어로만 되는 상황을 만들려 노력했었다. 보는 것 듣는 것을 영어로 안 하면, 영어를 쓸 일이 전현 없는 토종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20대 후반, 뉴질랜드에 일 년도 안 되는 짧은 언어연수를 다녀오며 얻은 좋은 습관은 영어로 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책의 표현 수준에 따라 아주 잘 읽히고 이해가 되는 책이 있었고 아예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들도 있었다. 웃기게도 '다빈치 코드'같은 소설은 내용이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영어로 읽기에는 작가의 표현이 명료해서 이해가 잘되는 책에 속한다. 


어쨌거나 그러한 이유로, 나는 미국오기 전 아마도 한 오 년 이상은 한국드라마와는 담을 쌓고-그래도 응답하라 1994와 응팔은 봤다- 미드만 보고 영어소설만 읽었다. 그래서 미국에 온 이후로는 한국 드라마를 더 많이 보는 편이기도 하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미국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접한 투자책 하나가 나의 삶에 대한 방향을 바꿔놓아서, 그 이후는 모든 소설책을 끊고 투자나 경제에 관련된 자기 계발서만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바뀐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무언가 모르는 일을 하게 된다면, 예를 들어 집을 산다면, 집을 사는 과정이나 그에 관련된 책을 읽어 기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전에는 무언가 모르는 게 있으면,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직접 책을 읽고 찾아본다는 원칙을 갖게 된 거이다. 

그래서 이 년 전 집을 사기 전에 두 권을 책을 읽었는데, 워낙 꼼곰하게 뭔가 하는 성격으로 못돼서 백 프로 이해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이참에 두 권을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짜릿한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끼며, 내가 소설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나는 탐정물이나 스릴러물의 책들을 좋아한다. 극이 주는 긴장감과 반전이 흥미롭다 느끼기 때문이다.




하는 일 없이 먹고자며 크루즈를 한 후, 집에서는 집을 산후 미뤄뒀던 집 밖의 잡초청소를 시작했다. 그렇게 조그마한 앞뜰에서 그렇게 많은 잡초가 자랄 줄은 몰랐는데, 몇 시간을 치워도 끝이 없었다. 나이 드신 엄마까지 참가하여 두 딸들과 몇 시간을 잘라내고 치우고 나니, 집 테두리 밑으로 작은 토끼 두 마리가 집 밑으로 드나드는 것을 목격했다. 혹시 쥐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쥐덫과 토끼 덫을 놓고 몇 날 며칠 기다렸지만, 쥐덫의 미끼인 고기는 까마귀가 먹고, 엉뚱한 도마뱀 한 마리만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깨끗이 잡초를 정리해 시야를 정리했더니, 더 이상 집 주변에 드나드는 흔적이 없어 조만간 남편과 시멘트로 주변을 막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열심히 잡초정리를 하느라 집에서 쓰는 가위를 동원했지만, 도무지 진전이 안될 때, 옆집 아저씨와 앞집 아저씨가 도구를 빌려주어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잡초와 무성하게 잎이 자란 집 앞의 작은 야자수를 정리할 수 있었다. 야자수 안에는 동물들이 먹은 걸로 보이는 깎아진 야자수 씨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옆집 아저씨말이 그 야자수는 자기네 집 야자수 애기라고, 우리 전주인이 그 나무에서 베어 심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지 정리는 이년에 한 번만 하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여행을 하고, 집 주변 정리를 하면서 이주를 보내고 나니, 병원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생긴 이석증 증상으로 매일 조금이라도 머리 돌리기 운동을 안 하면 어지러웠던 증상도 깨끗이 사라졌다. 

휴가 한 달 전쯤에 병원 스테프들과 매니저 때분에 병원을 옮겨야 되나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어지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황이 정리되었는데도, 가끔씩 생기는 어지럼증은 생활을 조금 불편하게 했었는데, 휴가 후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피곤해도 주말에 쉬면 괜찮다 생각했는데, 막상 휴가를 보내고 보니, 무언가로 몸이 피곤해지는 것과는 별도로 다른 의미의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과는 다른 신체적 노동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말이다. 


이제 가끔은 소설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두 권을 소설을 더 구매했다. 오래간만에 스티븐 킹의 소설도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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