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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Dec 10. 2023

비밀스러운 삶

자기표현의 시대에서 '비밀스러움'을 지향하는 이유

가장 소중한 이야기들은 쓰여지지 않았다.
그걸 안 썼고 앞으로도 안 쓸 것이기 때문에 나는 무사한 듯했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中



2020년에 읽었던 이 문장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글이란 치유제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쓰는 일은 매우 중요했었다. 글로 승화할 수 있다면 극복 못 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오히려 쓰이거나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살아지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인생에 2016년에서 2018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그랬고, 2021년 이후의 삶들도 (또 다른 의미에서) 그랬다.


일본 유학시절(2016~2018)은 삶의 바닥을 경험한 시기였다. 사람들이 이유를 물어올 때에 대비한 정형화된 대답은 마련되어 있다. 타지에서 외로웠다든가, 당시 건강하지 않은 관계 속에 있었다거나, 그렇게 봉합해 버리면 거짓이 없으면서도 간단하다. 그러나 우물 안 어둠은 짙었고 거기엔 괴물이 살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 어떤 어둠이 있었고 무슨 괴물을 만났는지까지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너무 힘든 일들은 쓰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


2021년이 지나면서 내 삶의 결은 빠르게 정돈되어 갔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고 과녁에 화살을 쏘듯 살았다. 업계에서 인정해 주는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모든 게 정확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 류의 이야기들도 글로는 녹여내기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드라마와 서사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그저 행복하다는 종류의 목가적인 스토리는 잘 회자되지 않기 마련이다.


단순히 남들이 듣고 싶은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쓰이지 않은 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조금씩 남겨놓는 것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위의 두 이야기가 내 인생의 메인 모티브라서 그렇다. 그간 SNS나 블로그 등에 퍼뜨렸던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 두 가지 줄기에서는 벗어난 곁가지 같은 이야기다. 요컨대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덜 중요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실이 내겐 무언가 안도감을 준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들은 어디에도 흩뿌리지 않고 내 안에 담고 있는 것.


그래서 글쓰기 플랫폼으로도 동네 마실 나온 분위기의 블로그보다는 내 서랍이 있는 방 같은 느낌의 브런치가 좋다. 비밀을 털어놓기에 조금 더 적합하다고 해야 할까. 내 삶에서 지향하는 가치가 '비밀스러운 삶'이기 때문에 그렇다. 20대 초반, 알베르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의 <섬>이라는 책에서 이 문구를 발견한 뒤로 어느 한 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에세이를 읽는데 비밀스러운 삶에 대한 내용이 나오길래 반가운 마음에 메모해 두었다.



  장 그르니에는 철학 에세이 『섬』에서 '비밀스러운 삶'을 꿈꾼다. "오직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해서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가 견지하는 태도는 이렇다. 자신을 드러내는 말을 하지 않는다. 타인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실제보다 더 보잘것없는 사람인 척한다. 가본 나라에 대해서도 안 가본 나라인 듯 군다. 잘 알고 있는 사상을 누가 이야기하면 처음 듣는 듯 행동한다. 누가 유식한 척해도 토 달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마저 낮춘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자기 자신보다 더 괜찮은 사람인 척하기 위해 가슴을 부풀리는 사람들에게 싫증이 났던 터라 나는 장 그르니에가 꿈꾸는 비밀스러운 삶이 마음에 들었다.

  책에는 데카르트가 비밀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전략도 나와 있었다. 데카르트는 대도시 암스테르담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훤히 노출시킨다. 자주 만나는 수위에게는 먼저 말을 걸고, 수위가 호기심을 발동시키기 전에 선수를 쳐 자신에 관해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 이땐, 꼭 매우 디테일하고 솔직하게 속 얘기를 털어놓아야 의심을 사지 않는다. 여기서 신경 써야 할 건, 속 얘기를 털어놓는 분야는 데카르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분야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실컷 충족시켜 주고 나서야 데카르트는 "정신은 자기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후부터 나도 '비밀스러운 삶'을 지키기 위해 은밀히 매진해 왔다. 원래도 이미지 관리하듯 두루뭉실 얘기하는 데는 재주가 없었지만, 솔직함의 한계엔 늘 신경을 쓴다. 속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도 조금은 남겨놓고, 디테일에 더 힘을 주고 싶어도 결국은 힘을 뺀다. 그렇게 '나만 아는 나'를 내 안에 남겨놓고 '나는 비밀스러운 사람이지' 흡족해한다. 글을 쓸 때도 마지막 한 조각의 비밀은 꼭 남겨둔다.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도, 남에게 보여주지 않을 나만의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기억한다.  

황보름, <단순 생활자> 中



직장에서도,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말하지 않은 부분을 남겨두기 위해 조심하는 편이다. 비밀스러운 삶을 위해서다. (이것도 비밀이지만) 나는 입사시험을 치르며 동기들 중 1등으로 입사를 했는데, 회사에서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아니, 오히려 아무도 몰랐으면 한다. 같은 의미에서 1980년대 덩샤오핑 중국의 외교정책인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길러라)'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남들이 내 능력을 알아주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편이 안심이 된다.


예전에 읽었던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아래 인터뷰 답변은 아직도 종종 곱씹을 정도로 좋아한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저만의 세 가지 방식을 알려드릴게요. 제가 말씀드리는 방식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고 시간과 장소, 상대방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알아주세요. 첫 번째로 일단 투쟁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왜 투쟁하나요? 에너지를 아끼세요. 우리가 준비됐다고 해도 상대방이 준비되지 않았으면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어요. 상대방은 우리가 자신에게 도전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니까 준비되지 않은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하지 마세요.

  두 번째는 상대방이 몰라도 괜찮으니 여러분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기는 거예요.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이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요. 그러나 그것을 알아주는 상대방은 드물어요. 제가 사람들로부터 빈번히 받는 질문이 있어요. “직장에서 부장님이 커피를 타오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그들에게 그 요구에 저항하지 말고 커피를 타라고 해요. 대신 커피에 침을 뱉으라고 하죠! 침을 뱉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서구 문화적 관점이에요.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를 다르게 보죠. 국한된 생각으로 상황을 피하지 말고 웃으면서 당신만의 방식과 사상으로 상대방을 이기세요.

  마지막으로 일단 침묵하고 실력을 쌓으세요. 첫번째 방식에서 그랬듯이 내 말을 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힘을 쓰지 마세요. 그곳에 쏟을 힘으로 자신의 실력을 길러 성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아도 그들이 먼저 나에게 와요. 그들이 나에게 와서 내가 필요하다고, 대가를 줄 테니 조언을 해달라고 하죠. 부모님이나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성공하면 내 말에 수긍하지 않았던 그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실력이 나 자신을 입증해주죠. 나를 향한 대우도 달라지고요. 그러니까 다른 곳에 공들이지 말고 나에게 공들이세요. (출처 : 덕성여대신문)



실은 나는 인정욕구가 매우 컸던 사람이다. 그러나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며 얻은 교훈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 1>을 그대로 본떠 제작된 리얼리티쇼 <오징어게임 : 더 챌린지>를 보면서도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오징어게임 우승자는 힘이 세거나 돋보이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화려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본인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패를 보이지 않고 실력을 숨기고 있다가 결국 우승을 거머쥔 그녀의 플레이가 인상에 깊이 남았다. 진정한 강자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군중 속에서 나는 드러나지 않는 편을 택한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잘 나가고 야망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보다 '귀여운 할머니 같은 언니'라는 포지션이 훨씬 편하다. 누군가 나를 위협적으로 보지 않고, 경쟁상대 삼지 않는 것이 회사생활에서 더없이 유리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구와도 편을 먹거나, 반대로 적을 만들지도 않는다. 팀 내에서도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사람이라는 인상은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일을 대충 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맡겨진 일은 누구보다 깔끔하고 완벽하게 처리한다.) 그렇게 하면 나를 갉아먹을지도 모르는 일들(일명 '똥')이 떨어질 확률이 적어진다.


동시에 허허실실 쉬운 이미지로 가서는 곤란하다. 이런 나를 다 안다는 것처럼 구는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런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한 장치를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그다지 어렵지 않다. 첫째,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면 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다. 둘째, 힘을 갖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마음을 산다. 평소에 이렇게 해두면 아무도 나를 무시할 수 없다.


비단 회사생활에서만이 아니라 사적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꺼내지 않는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우울에 대한 이야기, 그 외에도 여기에조차 쓰지 않는 것들. 그렇게 해야 가까스로 생은 유지된다.


벌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나는 옛날만큼 사색적이거나 무거운 인간이 아니다. 매일 출근해서 사람들 얼굴을 보고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도무지 어디 우아한 우울을 품을 틈새가 있겠나. 그렇게 우리는 하루키 신작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그림자를 떼어내고 살아가는 주인공처럼 무언가 빠진 모양새가 된다. '비밀스러운 삶'의 핵심은, 쓰이거나 말해지지 않아도 그것을 내 안에 분명히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내 안에는 작은 모닥불이 항상 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만이 안다.




마지막 사진은 지난 10월에 다녀왔던 대만의 어느 한 화원. 바쁜 출장 일정중 오전 일찍 일어나 홀로 저 곳에 다녀왔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화원 내 기념품샵에서 구매한 에코백을 매고 다닐 때마다, 비밀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남몰래 즐겁다. 살다보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소문내지 않고 역으로 나만 알고 싶은 것들이 있지 않은가. (어딘지 궁금하면 나의 마음을 얻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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