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어떤 식으로 그런 장소를 발견하는 걸까
사람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그래서 이토록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
정처 없이 떠도는 일도 좋지만 결국 나를 받아줄 사람과 장소가 없고, 그저 무궁무진한 안개 속 길 한가운데 던져져 있다면 유랑에서 오는 행복은 그저 사치일지도 모른다.
돌아갈 장소. 사람은 대체 언제, 어떤 식으로 그런 장소를 발견하는 것일까.
어떤 날 나는 백조가 마지막으로 떠 있는 것을 저녁 늦도록 지켜본 일이 있다. 어둑어둑한 박명 속에 흰 덩어리가 여기저기 모여 있었고 때때로 바스락 소리를 냈다. 몹시 외로워보였다.
나 자신의 심경 그대로였는지 모른다.
(중략)
지금도 나는 뮌헨의 가을하면 내가 처음 도착한 해의 가을이 생각나고 그때의 심연 속을 헤매던 느낌과 모든 것이 회색이던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 것에도 자신이 없었고 막막했고 완전히 고독했던 내가 겪은 뮌헨의 첫가을이 그런데도 가끔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웬일일까? 뮌헨이 그때의 나에게는 미지의 것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인지 또는 내가 뮌헨에 대해 신선한 호기심에 넘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안개비와 구라파적 가스등과 함께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의 나의 젊은 호기심인지도 모른다.
나의 다시없는 절실했던 고독인지도 모른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젊었고 대체로 행복했다. 먹거나 입는 것보다는 책을 사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을 중시하고 좋아하는 우리의 근본적 공동 요소는 그대로 허용되고 유지되었다. 그 점에서는 우리는 언제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가령 수입의 반을 넘는 책 한권을 사기를 우리는 한번도 주저해 본 일이 없다.
그 대신 언제나 가난했고 가난이 우리에게는 재미있었다.
예전에는 완벽한 순간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 순간 때문에 우리가 긴 생을 견딜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노을이 새빨갛게 타는 내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너무나 광경이 아름다워서였다. 부산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니면 대학교 1학년 때 아무 이유도 없었다.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었고 그것은 아늑하고 따스한 기분이었다.
완벽하게 인식에 바쳐진 순간이었다. 이런 완전한 순간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그것을 다시 소유하고 싶다. 완전한 환희나 절망, 무엇이든지 잡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에 의해서 뒤흔들려 보고 싶다. 뼈 속까지, 그런 순간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고 있다.
격정적으로 사는 것 ⏤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남에게 보여서 부끄러운 사랑은 마약 밀매상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없느니만 못하다.
대낮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한다.
임신이나 하고 싶다. 모든 과제에서 도피하기 위해.
보다 가정에 뿌리 깊어지기 위해.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