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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맨 May 09. 2024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금지된 시대의 불꽃같은 사랑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극장개봉을 놓쳐서 몇달 전 쯤 넷플릭스로 보았다.

프랑스 감독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봉준호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탔던 2019년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 * 이 글엔 엔딩에 관한 스포가 있습니다)


개봉 : 2020.01.16.(넷플릭스 스트리밍 중)
감독 : 셀린 시아마
출연 : 노에미 멜랑,아델 에넬


▶ 화가와 모델로 만난 두 여인의 금지된 사랑  


18세기 프랑스. 사진도, 전화도, 인터넷도, 그리고 여성의 권리도 별로 없던 시절.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를 의뢰받고 외딴 섬으로 들어간다. 초상화를 완성해 신랑 측에 보내면 혼담이 이뤄지지만 엘로이즈는 정략결혼을 거절한다. 엘로이즈의 어머니는 마리안느에게 몰래 딸의 그림을 그려줄 것을 의뢰한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산책상대가 되어 그녀를 세심히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눈다.그러면서 자존감높고 생동감 넘치는 그녀에게 점점 빠져든다.엘로이즈 또한 마리안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자유의지로 결혼하기도 힘든 시대에 동성간의 사랑이라니.당시로선 입밖으로 꺼내기 힘든 일이었다.

두 여인은 비록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코르셋에 갇혀있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바닷가를 거닐며 답답한 세상 너머,죽음인지 삶인지 모를 어딘가를 상상한다.   



▶ 오르페우스 신화의 은유    


꼭  동성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여자이기에 금지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리안느는 훌륭한 화가이지만 여자의 이름으로 성공하기는 힘들다.자기 그림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식이다.

귀족인 엘로이즈와 평민인 마리안느,그리고 엘로이즈의 하녀 소피는 계급을 떠나 친구가 되는데 ,

어느 날 세사람이 오르페우스의  신화 읽는 장면이 등장한다.오르페우스 신화는 이 영화에서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르페우스는 지옥에서 나갈때까지 뒤를 보지 않으면 아내 에우리디케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잊고,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돌아본다. 순간의 실수로 아내를 잃는 오르페우스를 소피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자 엘로이즈가 말한다 "여자가 뒤돌아 보라고 한 걸수도 있잖아" 그리고 마리안느가 말한다. "연인이 아닌 시인의 선택을 한 거지."

그러니까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정말 사랑하기에  뒤돌아볼 수 밖에 없었고,그들은 죽음을 맞을지언정 정말 사랑했다는 '추억'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연인이 아닌 시인의 선택을 한거지



한번의 실패 후 초상화를 완성하고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성을 떠나야하는 날, 두 사람은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며 다짐한다. "후회하지 말고 기억하자"고 .

그리고 다음날 아침,엘로이즈를 떠나야하는 마리안느는 터질것같은 심정이 되어 어머니 앞에서 새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던 엘로이즈와 포옹하고,마치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가려한다.문을 여는 순간,엘로이즈가 말한다.


뒤돌아 봐줘요



그렇다. 마리안느는 에우리디케(엘로이즈)를 구하러 지옥(외딴 성)에 들어온 오르페우스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사랑하기에 뒤돌아본다.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을지 몰라도 그것 자체로 완성된 '추억'이 된다.



▶ 고막과 심장을 서라운드로 울리는 엔딩의 여운   


영화의 마지막은 수년의 세월이 지난 후다.

마리안느는 한 전시회에 오르페우스 신화를 주제로 그림을 출품한다.

이 그림 속에서 오르페우스는 파란색 옷을,에우리디케는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이 그림 앞에 선 마리안느의 옷 역시 파란색이다.한 고객이 말한다 ."신화 속 두 사람이 마치 작별하는 것 같군요."

마리안느는 자신과 엘로이즈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작별을 테마로 그림을 그린거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그림을 그린 마리안느는 그림속 오르페우스처럼 파란색 옷을 입고있다)


그리고 그 날, 마리안느는 음악회에서 맞은편 발코니 자리에 앉은  엘로이즈를 본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보지 못한다.

음악회에선 비발디 <사계>중 여름 3악장이 연주된다.

그 음악은 공교롭게도 두사람의 추억이 깃든 음악이다.수녀원에서밖에 음악을 듣지 못했다고 말하는 엘로이즈에게 마리안느가 서툰 솜씨로 들려줬던 피아노 곡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의 숨결을 느꼈던 음악이다.


엔딩에서 카메라는 엘로이즈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관객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귀로는 비발디의 음악을 듣는다.음악은 폭풍 속의 여름처럼 뜨겁고 위험하며 격정적이다.

시시각각 미묘하게 변하는 엘로이즈의 표정은 그들의 사랑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뜨거운 불꽃처럼 다시 타오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어느 영화보다 강렬한 이 영화의 엔딩은 그렇게 완성된다.(절대 잊을 수 없는 영화의 엔딩을 얘기하라면나는 주저없이 이 영화를 탑 5안에 넣을 것이다.)


이 영화엔 OST랄게 없다.붓칠하는 소리,장작 타는 소리,파도 소리,서로간의 숨소리가 ASMR처럼 선명하게 들릴 뿐이다.

그래서 엔딩의 비발디는 더 강렬하게 고막과 심장을 때린다.

이 영화에 사용된 안드리안 챈들러의 격정적 바이올린 선율을 찾아 올려본다.

비발디 사계 중 <여름 3악장> 이다.


https://youtu.be/NVc1bg6Omeo?si=NbzZlIKaml14Bk70



여름이 오기 전 ,넷플릭스가 품고 있는 한편의 명화와도 같은 명작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바로 이 영화다 .

내 맘대로 랭크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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