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도 이런 밴드를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거다.
락밴드를 좋아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듣는 질문이 '어느 밴드를 가장 좋아하세요?', '어떤 장르를 좋아하세요?'다. 워낙 많은 밴드를 좋아해와서 잠시 고민을 할 법도 한데, 나는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큰 고민 없이 '해리빅버튼'을 그리고 '하드락'과 '블루스락'을 말한다. 대답한 후에 나도 모르게 놀라서 이게 맞나 하고 생각을 다시 하긴하지만 굳이 답을 정정하진 않는다. 덧붙여 몇 팀을 더 꼽을 뿐이다. 웨이스티드 쟈니스를 가장 '내가 사랑한 것들' 첫 글에 소개하기도 했으나 그들의 모든 것을 사랑했지, 진짜 취향을 말하자면 해리빅버튼이 훨씬 내 취향에 가깝다. 실제로 공연을 보고, 음악을 들을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곤 하니까.
개인적으로 TOP밴드 시즌1에 크게 데여 2는 보지 않았는데 해리빅버튼은 이 방송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것도 제대로, 엄청난 충격으로 말이다. 방송 당시에도, 현재에도 하드락 밴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저 당시는 있기는 했음) 한국에서 이런 하드락 밴드가 나타나다니! 하는 충격파가 있었다. 당시 해리빅버튼은 결성 초기였고, 이름을 알리기 위해 TOP밴드에 지원했다고 한다. (나중에 돌아보니 나는 지금은 사라진 인디팬에서 해리빅버튼 첫 공연을 봤었다. 서로가 몰랐을 뿐.) 그리고 나름 씬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브이홀 단독공연도 했었다. 그랬다.
아무튼 그 후, 해리빅버튼은 여러모로 굵직한 우여곡절이 많았다. 멤버 교체도 잦았고, 독보적인 사운드를 갖고 있으면서도 클럽 공연에 머물렀다. 락페스티벌에 매년 서긴 해도 늘 그때 뿐이었다. 어느 밴드나 갖게 되는 정체기도 있었으나 (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유독 참 그랬다. 터질 듯, 터지지 않는 그런 게 아쉽고. 리더인 이성수 씨가 인디씬을 사랑하고, 공연 자체를 즐기는 분이기에 어느 규모의 공연이든 늘 정신 나가도록 놀 수 있는 건 좋았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밴드를 워낙 많이 좋아하고, 보다보니 정을 잘 안 주게 되는 시기가 왔었는데 해리빅버튼을 그 시기에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적당히 놀고, 적당히 듣고, 적당히 하자고 마음을 먹었으나 그 적당히가 안되는 계기가 오고 말았다. 가장 상단에 있는 영상까지 만들게 된 첫 번째 러시아 투어였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NTZcHX0aDDFTLpgRgogc7asVkt-mMkmc
나는 이 공연이, 이 밴드가 다시 맞이할 수 없는 어떤 굉장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러시아 투어에서 (그것도 아주 작은 도시인 하바롭스크에서)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 전성기 수준의 공연을 보았으니까. 그래서 빌어먹을 그 '어쩌면' 하는 병이 도지고 말았다. 해리빅버튼이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한 밴드 중에 가장 먼저, 최초로 진짜, 진짜 잘 될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오타쿠적 한탄을 하고 싶어서 쓰는 글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리빅버튼'이라는 제목을 사용했을 만큼, 나는 여전히 내 취향의 끝은 해리빅버튼이라 생각한다. 어제 해방촌에서 오랜만에 공연을 보고서도 생각했고, 가끔 노래를 들을 때도 생각한다. 아, 사운드 하나는 진짜 끝내준다. 정말 내 취향을 갖다 때려 박았네. 그러면서 어서 페스티벌의 계절이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해리빅버튼의 무대를 등지고 뛰어노는 걸 상상한다. (제대로 쳐놀면 무대를 볼 수가 없으니까.)
해리빅버튼은 하드락 밴드지만 생각보다 또 의외로 실험적인 곡도 있는데, 그걸 또 해리빅버튼스럽게 완성해서 듣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보컬과 사운드를 적절하게 이 밴드의 강점을 살려서 사용한다. 그러니까 밴드가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방향은 잘 알고 있다는 걸 매번 신곡이든, 공연이든 접할 때마다 느낀다. Contamination은 음원으로는 왜 이러셨을까 했다가 라이브를 보고 나서야 역시 다 뜻이 있으셨구나 하고 납득한 곡이었다.
그래서 결국, 해리빅버튼. 이렇게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공연을 보고 듣거나 뛰어 놀며 내 안의 문제들을 잠시 잊고, 행복을 찾을 만큼 진심이듯, 해리빅버튼 역시 모든 무대에 진심이다. 밴드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와, 이번에 진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크게 하진 않았다. 그저 내 마음만 복닥거릴 뿐이었다. 때로는 무지하게 싫었고, 또 때로는 미웠고, 또 때로는 이해하다가도 내 마음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취향은 속일 수도, 바꿀 수도 없었다. 이전만큼 모든 공연을 다 가지는 못하더라도 가게 된다면, 늘 그랬듯이 가장 신나게 놀 것이다. 그간의 애증은 전부 잊고서 말이다. (어제도 그랬다.....) 그래서 결국, 해리빅버튼인거다. 나는.
사실 한동안 너무 밉고, 지쳐서 신곡을 아예 안들었었는데 어제 공연에서 보고, 들으면서 이 사람들이 진짜. 하며 웃었다. 어쩔 수 없다. 내 인생 앞으로 어디를 가든, 이런 밴드를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거다. 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만나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감히 예측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