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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Aug 29. 2023

단편소설 민물장어

(5)

아가리가 찢어지고 나서도 먹을게 절로 생기진 않았어.

또다시 여름과 겨울이 갔다가 왔어.

먹을 걸 찾아 안 뒤져본 곳이 없었어. 조금이라도 비릿한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지 코를 들이대면서 찾아다녔어. 실컷 먹을 수 있다면 다시 한번 그 지렁이를 삼켜도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 만큼 배가 고픈날들이 많이 보냈지. 

그해 여름은 특히 날이 더 더웠는데 밤이 되어서야 좀 시원했고 한낮에는 굴속에 들어가 있어도 그 열기가 느껴졌어. 뜨거운 온도는 어찌어찌 견디겠는데 숨 쉬는 건 정말 쉽지 않더군. 이게 온도가 점점 올라가니 아가미를 아무리 놀려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 


세상이 점점 줄더니 결국 그 세상과 맞닿아 버렸지. 

굶어 죽는 게 아니라 말라죽을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지.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배때지를 긁혀가며 이웅덩이서 저 웅덩이로 전전했지만 마지막 웅덩이에선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더군.

비적 마른 배는 이미 갈비에 붙어버렸고 뜨거운 햇빛에 등은 바싹바싹 말라버렸지

죽을 날만 기다렸어. 

차라리 저기 어디서 커다란 녀석이 나타나서 날 잡아먹어줬으면 싶더라고. 그때 부던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

세 번째 낮에 위에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어.

본능적으로 느꼈지 '이제 살았구나'.


이참에 시원한 물이 나오는 개울로 이사를 가야 할 거 같더군. 세상이 줄어들기 전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주 시원한 물이 나오는 곳을 발견했는데 그곳이라면 말라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여러 길을 거슬러 그 개울을 찾을 수 있었어. 

아주 살만했지. 

다른 곳이라면 뜨거운 햇살을 받고 힘들게 숨을 쉬어야한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더군 그에 비해 거긴 천국이었어. 냉수에 유유자적 헤엄치니 아주 행복했어. 

그곳 가재도 아주 맛있었지. 

언제 또 고생을 할지 모르는다고 생각하고 먹으니 항상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  


아니나 다를까 그곳을 떠나게 된 것도 내 의지는 아니었어. 

하늘에서 물이 많이 떨어지고 흙탕물이 들이닥치던 그날밤 내가 살던 굴과 개울이 송두리째 빠그라져버렸지. 무언가가 살았던 흑적조차 남지 않았어. 돌무더기에 깔려서는 이틀 동안 굴을 파고 나서야 겨우 밖으로 나왔어. 그리고서는 힘없이 밑으로 떠밀려 내려와 이 강에서 쭈욱 살았는데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지난 온 곳이었던 거 같아. 

'옘병. 처음부터 여기 살았으면 고생들을 안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군


어찌어찌 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싶던 큰 아가리를 이젠 가지게 되었어. 제법 꽤 크게 벌릴 수 있도 있거든. 

이빨도 쓸만해졌지. 한번 콱 물면 놓치는 법이 없지. 

마주치면 잡아 먹힐까 두려워서 꽁지를 내빼야 했던 녀석들도 이젠 날 쳐다보지도 못해. 눈을 게슴츠래 뜨고 쓱 다가가면 걔네들은 눈치를 보면서 일찌감치 자리를 뺴곤하지. 

여기를 지나가는 작고 투명한 어린 녀석들을 보니 나 어릴 적을 보는 거 같아. 

작은 것들이 힘껏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몽글몽글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해서 응원해주고 싶더라고. 

그래서 아가미를 후우하고 부풀리고선 엄지대신 꼬리 탁 치켜세웠지 마라토너에게 하는 듯이 말이야. 그랬더니 개들은 놀라서 도망가더구먼 '허허'.


'짭짤한 물맛이 나던 그곳이 계속 생각이나... 어둡고 포근했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너무 어릴 적이라 길이 기억나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떠나기 전에 걱정했는데 막상 길을 나서니 온몸이 알고 있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찾아갔어. 

흐름에 몸을 맡기고 아래로 흐르게 두었지. 

주변풍경부터 먹는 것까지 다 서서히 바뀌었지. 먹는 것이 달라져서 그런가 노르스름하던 내 배때기 색깔도 은빛으로 바뀌었어. 

어릴 땐 그렇게 치열했고 무서웠던 길이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꽤나 아름다워.

신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 

'왜 나약하고 어릴 때는 험난하게 거슬러가야 하고 능력이 생긴 후에는 힘을 빼고 흘러만 가면 되는지? 반대가 더 편한데 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냐고'


'그런데 어떡하지?'

나 어쩌면 그곳으로 못 돌아갈 것 같아. 

지난날 날 거의 저세상으로 낚아채갔던 실들이 또 보였거든. 심지어 이번엔 한 줄이 아니라 여러 줄이 길을 막고는 온사방에 둘러 저 있었어.

이번엔 죽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잡히고 난 뒤 아주 눈이 부신 통에 가둬두고서는 야박하게 먹을 것 하나 안 주데.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지만 죽을 마당에 한바탕 먹고는 싶었는데 말이지.

그래도 갈떈 한방에 보내주더구먼 

모가지에 칼이 들어온 순간에 난 눈을 빡 부릅떴어 

가는 순간까지 세상 열심히 살았단 것을 증명하고 싶었거든.


나쁘지 않은 장생이었어


안광이 빛나던 눈이 흐릿해졌다. 뒷마당에서 키우는 개 밥그릇과 같은 흰색이다. 

창밖으로 맑은 하늘아래 하늘풍천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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