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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민물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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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Sep 02. 2023

장어_초고

단편소설

풍천風川, 바람과 강

기수역汽水域을 일컫는 명칭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 물의 흐름이 변하며 해풍과 육풍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바로 이곳에서 잡은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여기도 그런 풍천장어를 파는 곳이지만 뷰는 더 기막히다. 따지자면 풍천보다 오션뷰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린다. 그래도 오션뷰 장어집은 느낌이 살지 않는다.


"여보 꼬리부터 먹어"


한껏 들뜬 목소리다. 장어를 뒤집는 그녀의 템포가 빠르다. 연기가 올라올 새가 없다.


 "사장님 여기 복분자주도 하나 주세요!"


평소와는 다르다. 그녀의 웃는 표정을 보고 남편도 조금 늦게 따라 웃었지만 영 불안하다. 둘째를 갖고 싶다고 말한 게 농담이 아니었나 보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 이제야 여유가 생겼다 싶었는데, 남편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많이 먹어라고 말 아내가 정작 더 잘 먹는다. 커다란 깻잎 두장 위에, 생강에, 마늘에, 양념장까지 야무지게 쌈을 만든다.


 "여보 이건 빅맥이 아니...." 


남편은 눈빛이 흔들린다

초롱초롱한 아내 눈빛과는 다른 그 다른녀석의 눈이 보인다. 시뻘건 불빛이 일렁이는 참숯에 올라오기 전에도 흐리멍덩한 눈이었는데 이젠 아주 익어버려서 비비탄처럼 보인다. 옥구슬처럼 반질반질한 흰색 아니라 뒷마당에서 키우는 개 밥그릇과 같은 누런 흰색이다.


[굽기전의 눈이 점점확대되어서, 홍채 안의 검은 점이 우주처럼 크게 바뀐다.]


난 깊은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세상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밤하늘에 찍힌 한 점처럼 먼지같은 크기로 세상에 나왔다. 나에 비해 세상은 무척이나 넓었다.

헤엄을 쳤다기보다는 흘러갔다고 말할 수 있다. 

은하수처럼 보이는 우리 무리는 어디론가 흘러갔다

자아를 인식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점에 가까워 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자라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몸이 유리처럼 투명했고 깊은 바닷속은 아주 까맣다 보니 옆에 놈의 눈알만 겨우 보였다. 놈들과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몸뚱이가 커지는 것을 잘 알 수는  없었고 일렁이는 달빛에 옆에 눈알만 조금씩 커져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나마 우리는 눈알이라도 있지 어떤 녀석들은 눈알 같은 게 없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가리가 자기 몸 보다 큰 놈, 뿔에서 빛이 나는 놈, 워낙 이상하게 생겨먹은 녀석들이 많아서 나중에 내가 자라면 어떤 몸을 가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너무 어두워 주위를 보는 건 어려웠고 넓디넓든 세상에 도대체 무엇들이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까맣기만 어두운 세상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조금씩 바뀌고 저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느낌으로만 알던, 투명하고 길다란 내몸을 눈으로 확인할수 있었다. 역시나 보기어려운 이유가 있었다.  

저 멀리보이는 세상은 여전히 깊은 물에 갇혀서 뚜렷히 보이지 않았다. 

낮과 밤이란 게 생겼다. 아직 낮과 밤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낮이 아주 조금 더 밝다.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 세상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들과 그 밖의 물로 채워져 있다것이 였는데 다른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걔중에서 가장 큰 것은 물만큼 커다란 바닥이었다. 어딜 가도 밑으로 내려가면 바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바닥이라는 것은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아주 얄팍할 수도 어쩌면 이세상처럼 아주 깊을 수도 있다.


계속계속 흘러간 뒤 낮과 밤은 좀 더 명확히 구분되었고 세상이 조금 낮아졌다. 낮이 생기기 전 이곳은 천정이 없은 아주 높은 세상인줄 알았지만 갈수록 천정과 바닥 사이가 좁아졌다. 밝은곳에선 눈에 보이는 범위가 더 넓어진다. 하지만 낮은 좀 황량하다. 지나치게 밝아서 그런지 움직이는 것들은 더 재빨리 움직이고 빈 곳이 아주 많다. 그리고 낮에는 아무래도 눈꺼풀(보이진 않지만 뭐 그런 게 있다)에 영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잠을 잔다. 잠을 자다가 무리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무리의 모두가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니 눈을 뜨고 봐도 세상만 달라졌지 옆에 놈은 그대로다. 돌아다니다 보니 한 번씩 엄청난 속도의 흐름에 몸을 태우기도 한다. 그땐 옆에 녀석만 움직이지 않고 온 세상이 아주 빠르게 흐른다. 

어디로 가는지, 내가 무엇이 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눈이 부셔 잘 쳐다보지 못했던 것들이 밤에는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빈 곳도 많지 않고 움직이는 것들의 속도는 느리지만 부산해 보인다. 밤에 자는 신기한 녀석들도 있다. 이 녀석들은 내가 태어난 곳으로 가면 아마 잠만 잘 놈 들이다. 

바닥 근처에는 돌이나 바위도 아닌 것이 있다. 이놈이라고 불러야 할지 한 무리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것들은 아주 형형색색이라 꽤 볼만하다. 살아 움직이지만 한쪽 밑은 붙어있어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눈이 없어 어디를 보고 말해야 할지를 몰라 한번 건드려보니 흐물거리는 몸을 팍 움직여서 아주 깜짝 놀랐다. 그 다음부터는 고놈들을 놀리는 재미가 있어 가끔 바닥으로 내려가 이 녀석들과 놀곤 했다  


이 녀석들 말고 움직이는 것들은 주로 날 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심지어 무서운 것들의 변장 솜씨는 매우 뛰어나 바위처럼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눈깜작할세에 덮칠수 있다. 

 녀석들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땅속에서 튀어나오질 않나. 돌틈에서 튀어나와 낚아채 가질 않나. 커다란 망태기로 보쌈을 해버리는 녀석도 있다. 그놀들이 마음먹고 덤비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지들이 잡혀 먹히는 것도 모른 채 멍한 눈을 하고 물려간다. 잡히고 나선 아무리 몸부림처도 소용없다. 잡히지 않게끔 평소에 조심해야 한다. 난 그들에 눈에 띄지 않도록, 눈에 띄더라도 다른 녀석이 물려가도록 무리에 속에 섞여 다녔다. 


 먹는 게 주된 일이었고 흘러가는 건 자연스레 되는 것이었다. 무리의 다른 녀석들도 다들 배때지를 채우러 다녔는데 대부분 아가리도 커다랗고 몸뚱이도 넉넉해서 나보다 더 잘 먹어댔다. 내 작은 아가리와 짧은 꼬리는 누가 봐도 비루했다.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봐도 큰 녀석들이 먹이를 먼저 낚아채가는 탓에 내 몸뚱이는 실처럼 가늘 수밖에 없었다. 투명한 유리구슬 양쪽을 잡아 쭈욱 늘여 논 것처럼 생겼다. 그나마 이 몸이 다행인 것은 괴물 같은 녀석들이 물려고 할때 벌어진 이빨틈 사이로 몸을 내뺄수 있는 것이다. 몸속 내장이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투명하고도 비실한 몸이지만 그런 놈들의 이빨이 등허리를 훑고 지나가면 몸속 장기가 툭 떨어진 거 같은 기분이 들고 물이 시리게 느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몸에 빨간 점이 생겼다. 이 빨간 점이 점점 커지더니 콩콩 뛰는 게 보였다. 내게도 장기라는 게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오밤중에 눈이 부셨다. 자는 사이 벌써 날이 밝았나 하고 어리바리한 눈을 번쩍 떴지만 느껴지는 진동이나 흐름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고 밝게 빛나는 불빛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도 없어 꼬리를 내 뼈며 줄행랑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느러미가 한번 쭈삣 섰던 거 같다. 보름달처럼 밝게 빛나는 여러개의 불빛을 따라가면 먹을 것들이 잔뜩 모여있어서 배를 채우기 편했다. 온도는 헤엄칠 정도로 적당히 식었고 아가리만 딱 벌리고 열심히 앞으로 나가면 배를 두둑이 채울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큰 녀석들보다는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불빛을 재빨리 따라간 그 녀석들 수가 하루 이틀 적어지는가 싶더니 모조리 사라진듯했다. 아마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고 우람해진 몸으로 더 빨리 헤엄을 처서 멀리 가버린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큰 몸뚱이로 더 큰 먹이를 먹는다고 상상하니 부러움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몸을 키워야겟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배를 채웠다. 여러개 불빛이 여명으로 녹아들때쯤 저멀리 거품이 있어났다. 바닥에서 처다보고는 날씨가 꽤나 급격하게 바뀌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거품은 살아있는것 마냥 빠른 속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 거품은 무서운놈들 무리와 나처럼 가녀린 녀석들 무리가 만들어낸 방울거품이였다. 가까이서 보니 지느러미가 잘린놈, 머리가 없는놈, 반토막이 된놈 모두가 뒤섞여 아주 아수라장이였다. 크고 무서운녀석들에겐 만찬파티장이였고 불쌍한 녀석들에겐 학살의 현장이였다. 그 거품은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다. 녀석들 피부에서 나온 은빛가루가 햋빛에 반짝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새파란 아침은 다시 황량해 졌다.


먹는 게 중요하지만 살아있어야 먹을 수 있다. 밤이든 낮이든 큰 녀석들은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살아있는 것만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 살아 나온 놈한테 들은 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녀석이 말하기를 햇빛이 사라지더니 세상이 갑자기 새까만 밤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거 밤이면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니오?"라고 되물었더니 물이 전혀 흐르지 않았고 이리저리 심하게 요동쳤다고 했다. 그냥 밤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멀찌감치 보이는 한지점으로부터 시작해서 무리들의 몸이 녹기 시작한 걸 봤다고 했다. 그 녀석들은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자기 몸이 녹는 걸 지켜봤다고 한다. 뼈만 남기고 죽어버렸다고 했다. 

그 녀석도 '아! 씨부럴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파도가 들이치고 물이 흐르더니 다시 빛이 보였다고 한다. 겨우 빠져나온 것이였다.  

그 녀석 무리는 아마 길을 잘못 들어 끔찍한 불덩어리 계곡에 빠졌다가 나온 것 같다. 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큰 무리에서 떨어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맛이 좀 바뀌었다. 이상한 흐름이 생겼는데 이 흐름을 잘 타야 헤엄치기가 편했다. 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긴 하지만 특정 시간 때는 그 흐름이 약해지거나 반대로 흐르기까지 해서 그때 아주 편하게 길을 거슬러 갈 수 있다. 반대 시간엔 아무리 앞으로 나가려고 해도 힘에 부친다. 이 흐름을 탈 수 있는 시간이 해가 지고 나서 오면 더욱 편했다. 

갈수록 낮은 더 더워졌고 밤은 시원해졌다. 물살도 더 거세졌고 빛도 여간 센 게 아니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다 보니 등짝이 아주 따가워 나 다닐 수가 없었다. 피부와 모습도 달라졌다. 처음엔 안개처럼 뿌옇게 보이더니 완전히 잿빛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몸이 투명하지 못해서 들키지 않기 위해선 잘 숨어 다녀야 했지만 바닥으로 다니다보니 잿빛이 눈에 띄진 않았다. 무거겁고도 날렵한 느낌을 주는 게 좀 마음에 들었다.


정말 엄청난 것을 알아냈다. 

세상이 두 개라는 것이다. 

보아하니 내가 사는 이 세상과 내가 갈 수 없는 그 세상으로 나뉜다. 

아가미(몸이 커지고 나서 이것이 생겼는데 숨을 잘 쉬기 위해선 볼따귀를 잘 움직여 줘야 한다. 아가리를 열고 물을 쭈욱 빨아들인 뒤에 아가미로 후우 뱉어내면 숨이 쉬어진다. 아무튼)를 열심히 놀려도 바닥에서는 숨이 찰 때가 있어 숨기가 좀 더 수한 곳, 밝은 곳, 윗동네로 가끔 올라가 보곤 했다.

그때 보았다. 

내가 사는 세상 말고도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잘 보이 않지만 우리 세상만큼 넓은 세상임을. 


그 세상에서 사는 녀석들이 가끔 우리 세상에 들어온다. 달빛이나 햇빛도 모두 그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었다. 색도 아주 희양 찬란하다. 푸른색. 녹색. 붉은색이 아주 눈이 부시게 쏘아져 내린다. 자세히 쳐다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


다시 밍밍한 물맛을 가진 이 동네를 말하자면 태어난 곳과 그동안 지나온 곳들에 비해 안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거슬러 갈수록 고만고만 녀석들이 많아지고 무서운 녀석들의 수는 줄었다. 숨을 곳도 더 많아졌다. 가다 지치면 중간중간 쉬면서 배를 채웠다. 큼지막한 돌틈사이에다 공간을 만들고 내 집이라 생각하고 몇 날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해가 넘어갈 때즈음 굴을 기어 나와 주위를 살폈다. 주변은 크게 맑은 물과 희뿌연 물로 나뉘었다. 맑은 물 주변에는 돌과 바위가 많았고 뿌연 동네에는 주로 모래와 풀이 많아서 그런지 먹을 것들이 더 많았다. 가끔 맑은 동네와 뿌연 동네 할 것 없이 홀라당 누런 물로 바뀔 때도 있는데 그땐 시원해진다. 나중에 알아차린 사실인데 그 세상에서 물이 떨어져서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그 세상은 참말로 신기하다. 물이 떨어지는걸 보면 분명 거기도 물이 있는데 우리는 그 세상으로는 갈 수 없는 게 이상한 노릇이다. 이 세상에서는 바닥을 제외하고는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다닐 수가 있는데 그 세상은 바닥처럼 지나갈 수 없게 되어있다. 바닥처럼 딱딱해서 못뚫고 가는게 아니라 그 세상에는 밀어주는 힘이 부족하달까? 이 세상에도 힘을 주어 헤엄 치지않으면 서서히 가라앉기 마련인데 그 세상에선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진다. 힘껏 뛰어 올라 보려해도 고작 내 몸만큼면 겨우 그세상에 담그는 수준이다. 

어쩌면 이세상 바닥 아래에도 그 세상이고 이 세상 위에도 그 세상일지 모른다.

아마 이 세상은 돌팍사이에 있는 굴처럼 그 세상 사이에 끼어있는것 같다. 


돌팍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나 말고도 굴속에 집을 짓고 사는 녀석들이 있었다. 언듯 보기엔 다 비슷한 돌덩이인데 다들 자기 집은 어찌나 아끼는지 틈틈마다 집주인이 다 달랐다. 그날도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날이 밝기 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굴 앞에 도착해서는 대가리를 돌려 꼬리부터 굴속으로 집어넣는데 꼬랑지가 턱 막혀서는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내 굴이 맞는가 다시 한번 쳐다봤다. 

'분명 내 굴이 맞는데...' '다녀온 사이 굴이 무너진 건가?' 생각하고는 대가리부터 쓱 디밀고는 살펴볼랬는데... 아뿔싸!

거대한 대가리와 좁쌀만 한 눈을 가진 그놈과 마주쳤다. 그놈 몸의 절반은 대가리고 아가리는 또 얼마나 큰지, 그놈 입술에 달린 수염이 내 몸과 같은 크기였다. 두꺼운 두 입술사이가 쩍 하고 벌어지더니 순식간에 몸이 빨려 들어갔다. 입술을 지나 그놈 입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허둥지둥 정신을 차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처 봤지만 턱 하고 닫히더니 내 몸뚱어리가 꽉 끼여버렸다. 몸이 마구 떨리고 눈알도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빠져나가기 위해 미친 듯이 몸을 흔들고 비틀어댔다. 그 입에는 이빨대신 뾰족한 가시 같은 것이 돋아나있어서 내 피부는 찢겨 나갔다.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몸통 한 덩어리를 내어주더라도 살아나가려고 발버둥 쳤다 아니 난 발이 없어 몸부림쳤다.

또 한 번 운이 좋았다. 그놈이 날 빨아들일 때 내 침대로쓰던 나뭇가지들도 같이 빨아들였다. 그 가지가 그 아가리를 꼭 다물지 못하게 도와줘서 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곳을 떠나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이제 몸도 제법 쓸만해졌다. 다른 녀석들을 보면 나처럼 날렵하지 못했다. 그 녀석들은 일찌감치 무시무시한 놈들에게 거의 다 잡혀갔다. 허리가 굽은 놈, 비실비실한 놈, 꼬리가 뚱뚱한 놈 모두 다시 만날 수 없다몸뚱이가 커지다 보니 배가 더 고파졌다. 짭짤한 맛도 없어져서 그런지 싱겁게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너무 배가 고플 땐 이른 밤이나 새벽까지도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긴 하는데 해가 뜨고 나면 사실 먹을게 많이 없어진다. 바닥에 가라앉은 낙엽들을 뒤지다 보면 먹을 것들이 나왔다. 주로 집게가 달리거나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것들이었고 흙바닥엔 또 다른 것들이 있었다. 그 세상에서도 먹을게 떨어지긴 하는데 맛은 좀 덜하다. 신토불이라고 우리 것이 조금 더 맛이 좋았다. 가끔씩 운이 좋아 미꾸라지나 작은 물고기들을 잡기도 했는데 그것들이 제일 맛있는 거 같다. 미꾸리 같은 녀석들은 길쭉하니 나랑 생긴 게 좀 비슷해서 여간 날랜 게 아니다. 이 녀석들이 작은 구멍에 들어가 버리면 내 몸뚱이로 바늘구멍 같은 그곳을 통과하긴 불가능하다. 그 구멍이 또 여러 군데로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곳으로 금세 빠져나가버린다. 


난 사냥엔 영 소질이 없다. 대신 코가 좋다.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누가 뭔가를 먹기 시작하면 바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사실 바로 잡아먹는 것보다도 하루정도 숙성시켜서 먹는 걸 좋아한다. 그 세상에 녀석들이 윗동네와의 경계에서 투닥거리다가 이곳으로 들어오면 영 힘을 못쓰고 죽어버리는데 마실을 나가는 저녁때쯤 되면 딱 먹기 좋게 바닥에 가라앉혀진다.

무엇보다 하루 정도 시간이 지나면 냄새도 솔솔 올라오고 감칠맛이 돈다. 적당히 불어서는 씹기도 편하고 소화도 잘된다.

그리고 난 감이 좋다. 그 세상에서 물이 방울 방울이 떨어지면 이세상의 경계와 부딛힌다. 그 소리와 진동을 온몸으로 알아차릴수 있다. 어디가 물쌀이 빠른지, 어디가 바위에 부딛혀 물보라를 일이키는지 눈으로 보기전부터 알수있다. 가끔 그 세상에서 들어오는것들이 그 경계에서 헤엄치는 소리는 아주크게 들려서 멀리서도 눈치를 채고 도망가거나, 먹을만하다 싶으면 그곳을 쉽게 찾아간다. 먹잇감들이 모랫속이나 낙엽속에서 숨어서 내는 소리는 아주 미세하게 들리는데 내 몸을 움직이는 소리도 줄이고 가만히 귀를기울이면 찾을수 있다. 눈으로 확일할 필요도 없이 그곳이다 싶은곳을 찾아서 덥석 물면 된다. 물론 찾기만 잘하지 사냥 성공률이 높지는 않다. 열에 하나만 성공해도 다행이다.


이젠 제법 강한 물살도 거슬러 오를 수 있다. 긴꼬리를 훌렁훌렁 휘두르고, 대가리로 물을 이리저리 저으면 앞으로 쭉쭉 나갈수 있다. 하루는 먼 길을 돌아가기가 귀찮아 지름길로 갔는데 우리 세상은 낮고 그 세상과 가까운곳 이었다. 갑자기 등뒤에서 찌르듯이 어떤 놈에게 꼬리를 물리적이 있는데 어찌나 놀랬던지 아직도 그날 생각하면 쓸개가 쪼그라들 것 같다. 나는 날래게 앞으로 몸을 쭈욱 내빼고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배배 꼬아서 도망칠 수 있었다. 꼬리지느러미엔 아직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제 그까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차하면 돌틈사이로 숨어들 수 있다. 뾰족한 돌이 있더라도 내 몸은 기름칠을 한 것처럼 미끈하게 통과된다. 기름은 아니고 피부도 아닌 것이 내 몸을 감싸는데 아주 부드럽다. 내 기분에 따라 그 양이 달라진다

점점 시원해지다가 세상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워낙 찬물을 좋아하는 나지만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배를 많이 채워서 배가 그리 고프진 않다. 그냥 졸음이 마구 쏟아진다.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잠만 몇 달을 내리 잤다. 숨도 쉬지 않고 잠만 잔듯하다. 

긴 잠을 자는 동안 난 꿈을 꾸었다.

새까맣고도 포근한 우주를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곳에서는 이 세상과 저세상에 경계는 없었다. 

내 몸이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다.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여명이 밝아오듯 눈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추위를 잘 타지 않지만 물은 겨우 얼지 않을 정도로 차갑게 흘렀다. 몸을 움직이자니 허리에 나무를 대어 묶은 듯 해서 마음대로 놀릴 수가 없었다. 몇 달 동안 잠만 잔다고 먹은 것이 없으니 배가 쪼그라들어 힘이 하나도 없었다. 

 

어찌 된 노릇인지 주변을 너머 저 멀리 모래 바닥을 헤집어봐도 먹을 것을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날이 지나고 나서 온도가 좀 더 높아져 몸을 움직이는 것이 수월해졌지만 갈비뼈와 배때지가 달라붙어버렸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집게가 달린 녀석, 미꾸리 같은 녀석, 물고기 새끼 같은 녀석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그 세상에부터 쳐들어와 날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무서운 놈들과 나보다 더 큰 물고기 놈들이었다. 

몇 달을 굶었더니 미처 돌아버린 녀석들도 생겨났다. 엊그저께까지 농담도 주고받던 한놈이 내 꼬리를 물었다. 나도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아가리로는 이것저것 들춰보고 물어뜯게 되니 그 녀석이 왜 날 물었는지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보다 큰 녀석들은 어떻게든 날 잡아먹으러 달려들었고 나 역시 나보다 작은놈들은 가차 없이 먹어치웠다. 큰 놈들이 더 먼저 굶어 죽기 시작했고 난 시체를 뜯어먹고 버텨낼 수 있었다. 그렇게 물살에 흔들리는 풀을 제외하고는 움직이는 것은 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때 지렁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모래 바닥을 열심히 뒤져야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하는 녀석인데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처럼 비실비실하지도 않고 아주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는 흘러나오는 냄새 또한 아주 날 환장하게 만들었다. 먼저 다른 녀석들이 없나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커다란 녀석이 저 뒤에 숨어있다가 날 덮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몸은 이미 다가가고 있었다. 숨도 쉬지 않고 슬그머니 다가가 꼬리부터 한입 물고는 머리까지 꿀떡 삼켰다(꼬리가 머리였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꿀맛이었고 역시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실 같은 게 입에 걸리긴 했지만 이정로는 문제 될게 전혀 없었다.

어디 한마리더 없나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핑"!

피아노 줄이 튕기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 몸은 쏘아져 나갔다. 

세상이 몇 바뀌 돌더니 난 아가리가 꿰인 체 그 세상을 넘어 저세상으로 당겨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는 몸을 앞으로 내뺐다.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몸을 뱅뱅 꼬아봤다.

 잡히는 것 물 뿐이었고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집게발 같은 게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세상 경계까지 들어오려저서는 수분동안 당겨져갔다. 그리고 더 이상 저항할 의지조차 잃어버렸다. 짧고도 아쉬운 그동안의 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때 저승사자 그놈이 당기느라 힘들었는지 거의 뭍에까지 끌려왔을때즘 잠깐 틈이 생겼다. 

젖 먹던 힘(물론 먹어본 기억은 없다)까지 써서 주변 돌팍이니 풀이니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아가리가 찢겨나갈 거 같았지만 살고 싶다는 의지와 집작이 더 컸다. 이제 몸뚱이가 좀 컸는데, 더 많이 먹을 수 있는데,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하고 이번생을 마감하기는 싫었다. 

어금니를 꽉 물고서는 줄이 끊어져라 몸을 뱅뱅돌려 재꼇다. 줄이 끊어지기는커녕 사방팔방 엉키면서 내 몸은 실과 풀 사이에 끼여 더 이상 움질 일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동이 틀 때쯤 줄이 느슨하게 풀렸다. 

저승사자는 내 아가리에 쇠꼬챙일 꼽아둔 채 돌아갔다.

아가리는 반쯤 찢어지고 몸뚱이도 돌팍에 긁혀 만신창이였지만 난 생각했다. 

'난 역시 운이 억세게 좋구나'


아가리가 찢어지고 나서도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먹는게 문제였어. 먹을 것이 저절로 생기진 않았거든

다른 여름과 겨울이 갔다가 왔어.

먹을 걸 찾아 안 뒤져본 곳이 없었지. 조금이라도 비릿한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지 코를 들이대면서 찾아다녔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거든. 실컷 먹을 수 있다면 다시 한번 그 지렁이를 삼켜도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 만큼 배가 고픈 날들이 많이 보냈지. 

그해 여름은 특히 더 더웠는데 밤이 되어서야 좀 시원했고 한낮에는 굴속에 들어가 있어도 그 열기가 느껴졌어. 뜨거운 온도는 어찌어찌 견디겠는데 숨 쉬는 건 정말 쉽지 않더군. 이게 온도가 점점 올라가니 아가미를 아무리 놀려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 


이 세상이 점점 줄더니 결국 그 세상과 맞닿아 버렸지. 내가 있던곳이 뭍으로 변해버렸어. 

그때 죽었더라면 다른 놈들이 내 시체를 보고 한참 논쟁을 벌였을 거야. 이놈이 말라죽었는지 굶어 죽었은지 말이야. 살아있는 내 꼴이 딱 그 정도였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배때지를 긁혀가며 이웅덩이서 저 웅덩이로 전전했지만 마지막 웅덩이에선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더군.

뜨거운 햇빛에 등은 바싹바싹 말라오고, 죽을 날만 기다렸지. 

차라리 저기 어디서 커다란 녀석이 나타나서 날 잡아먹어줬으면 싶더라고. 그때 부던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

그리고 세 번째 낮에 그세상 위에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어.

본능적으로 느꼈지 '이제 살았구나'.


이참에 시원한 물이 나오는 개울로 이사를 가야 할 거 같더군. 세상이 줄어들기 전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주 시원한 물이 나오는 곳을 발견했는데 그곳이라면 말라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여러 길을 거슬러 올라가 그 개울을 찾을 수 있었어. 

아주 살만했지. 

다른 곳이라면 뜨거운 햇살을 받고 힘들게 숨을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더군 그에 비해 거긴 천국이었어. 냉수에 유유자적 헤엄치니 행복했어. 

그곳 가재도 아주 맛있었지. 

언제 또 고생을 할지 모르는다고 생각하고 먹으니 항상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  


아니나 다를까 그곳을 떠나게 된 것도 내 의지는 아니었어. 

그 세상에서 물이 많이 떨어지고 흙탕물이 들이닥치던 그날밤 내가 살던 굴과 개울이 송두리째 빠그라져버렸지. 무언가가 살았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어. 돌무더기에 깔려서는 이틀 동안 굴을 파고 나서야 겨우 밖으로 나왔어. 그리고서는 힘없이 밑으로 떠밀려 내려와 여기서 쭈욱 살았는데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지난 온 곳이었던 거 같아. 

'옘병. 처음부터 여기 살았으면 고생들을 안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군

어찌어찌 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싶던 큰 아가리를 이젠 가지게 되었어. 제법 꽤 크게 벌릴 수 있도 있거든. 

이빨도 쓸만해졌지. 한번 콱 물면 놓치는 법이 없어. 

마주치면 잡아 먹힐까 두려워서 내가 꽁지를 내빼야 했던 녀석들도 이젠 날 쳐다보지도 못해. 눈을 게슴츠래 뜨고 쓱 다가가면 걔네들은 눈치를 보면서 일찌감치 자리를 빼곤 하지. 

여기를 지나가는 작고 투명한 어린 녀석들을 보니 나 어릴 적을 보는 거 같아. 

작은 것들이 힘껏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몽글몽글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해서 응원해주고 싶더라고. 

그래서 아가미를 후우 부풀리고선 엄지대신 꼬리 탁 치켜세웠지 마라토너에게 하는 듯이 말이야. 그랬더니 개들은 놀라서 도망가더구먼 '허허'.


'짭짤한 맛이 나던 그곳이 계속 생각이나... 어둡고 포근했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너무 어릴 적이라 길이 기억나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떠나기 전에 걱정했는데 막상 길을 나서니 온몸이 알고 있더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길을 찾을 수 있었어. 

흐름에 몸을 맡기고 아래로 흐르게 두었지. 

주변풍경부터 먹는 것까지 다 서서히 바뀌었지. 먹는 것이 달라져서 그런가 노르스름하던 내 배때기 색깔도 은빛으로 바뀌었어. 

어릴 땐 그렇게 치열했고 무서웠던 길이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꽤나 아름다워.

여기를 풍천이라고 부르고 싶어

신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왜 나약하고 어릴 때는 험난하게 거슬러가야 하고 능력이 생긴 후에는 힘을 빼고 흘러만 가면 되는지? 반대가 더 편한데 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냐고' 묻고싶어


'그런데 어떡하지?'

나 어쩌면 그곳으로 못 돌아갈 것 같아. 

지난날 날 거의 저세상으로 낚아채갔던 실들이 또 보였거든. 심지어 이번엔 한 줄이 아니라 여러 줄이 길을 막고는 온사방에 둘러 저 있었어.

이번엔 죽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잡히고 난 뒤 그 세상을 구경하게 되었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주 눈이 부신 탓에 그세상이 잘 보이진 않았어. 

가둬두고는 야박하게 먹을 것 하나 안 주데.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지만 죽을 마당에 한바탕 먹고는 싶었는데 말이지.

그래도 갈땐 한방에 보내주더구먼 

날카로운 쇳덩이가 들어어와 모가지를 찌를 때 

난 눈을 빡 부릅떴어 ! 

가는 순간까지 세상 열심히 살았단 것을 증명하고 싶었거든.


나쁘지 않은 장생이었어


안광이 빛나던 눈이 흐릿해졌다. 뒷마당에서 키우는 개 밥그릇과 같은 흰색이다.

[희색이 하늘로 바뀐다.] 

창밖으로 맑은 하늘아래 하늘풍천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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