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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과 그녀

산과 그녀

(1)

by 쏴재

열흘 전,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녀는 매일 아침 창밖으로 강첸 레그루브를 찾았다. 처음에는 희미한 실루엣으로만 보이던 만년설이 이제는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얀 설산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푸른빛이 은은하게 번졌다. 생각보다 온화한 공기에 당황했던 첫날, 구글맵을 펼쳐 네팔의 위도를 다시 확인했다. 적도에 가깝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택시에서 내려 묵직한 배낭을 멜 때, 높이 오를수록 추워질 거란 생각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등과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가 마치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였던 것처럼 익숙했다. 허리 벨트를 채우는 소리가 딸각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출발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숙소는 타멜 지구의 좁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창틀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토바이와 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포장되지 않은 길 위로 흙먼지가 자욱했다. 쓰레기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창가에 널어둔 스카프와 마스크는 어느새 갈색 얼룩이 졌다.


가이드를 만나 트레킹 일정을 조율했다. 샤브루베시까지는 120km. 지도상의 거리만 보면 반나절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홉 시간이나 걸렸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깊은 협곡에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보았던 버스 추락 사고 기사가 불현듯 떠올랐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어깨에 기대어 잠든 옆자리 승객의 머리가 나에게로 기울었다. 이상하게도 그 무게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온기가 고마웠다. 마치 오래전 산길에서 만났던 누군가를 다시 만난 것처럼. 창밖으로는 계속해서 구름이 산을 감싸고 있었다. 저 구름 너머에는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귓가에는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어릴적 그녀의 집 뒤에는 큰 산이 있었다. 그저 동네 뒷산에 불과했겠지만, 작은 소녀에게는 하늘로 이어지는 계단처럼 보였다.

"오늘도 오름에 뎅겨왓수과?" 그녀 돌아온 걸 알아난 할망이 말했다.

"예, 학교 끝나고 오는 질에 박생이 하나가 아멩 가까이 온거라양. 쨱쨱 소리 내멍 무신 말을 허는 거 닮아양"

"게난 다시 질 가코젠 허난 자꾸 따라오멍 지져귀는 거라양"

"조급해 뵈기도 허고 그 소리가 신기해난 그 새랑 솔피 날아댕기멍 뛰당 완 거우다"

"그래도 해 지기 전이 들어와사주. 그러당 낭 뿌리에 걸령 넘어지민 어떵허코. 아방한티 다 일러줄 거우다"

"안되주. 아방한티 말허지 맙서. 그 새가 진짜 급해 뵈엿다게. 다음엔 새가 말 걸어도 잘 달래볼 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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