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파트 남자
아파트 여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애들 등원 후 커피 수다’
‘남편 뒷담화’
‘아파트 시세’
‘이웃 주민, 옆집 여자, 앞집 여자’
‘아파트 여자들’이란 책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파란색의 책 표지가 강렬하게 눈에 띈 탓도 있다. 짐작된 내용들도 있었지만, 책장을 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강렬하게 다가온 표지만큼이나 강렬한 이야기였다.
도서 : 아파트 여자들
저자 : 서린
출판 : 리빙룸루틴
아파트... 어쩌면 직장보다 더 지독한 또 다른 사회?
육아를 위해 휴직을 하였지만, 또 다른 사회로 복직을 한 느낌이다. 그 무리 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나는 신입이었고 공동의 관심사를 찾기 전까지는 서로 무관심이다. 시간이 지나 편해지는 호의적인 관계가 이해타산을 넘어 나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다는 섬뜩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서로들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여도 단점을 보이는 순간 삽시간에 그것이 먹잇감 표적이 되어버린다.’ p.91
친구(남자)가 육아휴직으로 2년을 보낸 적이 있다. 복직하고도 눈치 안 보고 잘 다니는 것을 보면 분위기가 많이 바뀐 걸 느낀다. 남편도 육아휴직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아이들 등원과 하원을 시키면서 엄마들과 어울리며 커피를 산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하원을 못 챙길 시 이웃에게 부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책에서 만난 아이들의 등원 후 편의점 커피 만남 자리의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친구가 생각이 났다. 친구 역시 처음에는 등원 버스 줄에 이방인 취급을 받다가 나중에는 서로 챙기는 사이가 되었다. 나중에는 친구가 엄마들 사이에서 커피를 돌리기도 하고 엄마들 사이 자리 잡았다고 자랑도 한 적이 있었다. 같은 아파트 이웃을 알고 지내니 참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서로 살갑게 인사를 한다.
친구가 빨리 복직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아비라는 소문이 안 돌아서 정말 다행이다. 이 친구는 맞벌이 부부.)
그녀들의 틈에 낀 친구가 이방인은 아니었을까 생각 들었다. 앞에서는 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뒤돌아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 소설을 읽고 소름 끼치는 일들이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 내 일 같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내 이웃의 이야기라 생각이 들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아주 어린 시절 가게에 딸린 3평 남짓 한 방에서 4 식구가 살았다. 엄마는 이 지긋지긋한 단칸방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새벽시장을 오가며 죽으라 일만 했다. 아들 공부방 하나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독하게 살림을 키웠다. 중학교 입학 무렵 엄마는 아버지 몰래 아파트 청약을 넣었다. 노발대발한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꿋꿋이 일수 수첩에 도장을 찍으시면서 대출 빚을 갚아 나가신 엄마였다. 그 아파트가 우리 가족의 첫 집이 되었다. 그 아파트를 계약하며 아파트가 매일 올라가는 과정을 지켜본 터라 울컥한 기분이 드셨을 거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않으시면서 아남전자 전축 그리고 비디오까지 장만하시고 티브이까지 한 브랜드로 고이 모셨던 기억이 난다. 정말 사용하지도 않고 매일 닦으며 모셨다. 그냥 인테리어였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집이었지만 아파트 한 채 장만해서 월세 걱정 없이 살게 된 그 기쁨을 표현한 것이었다. 손님들이 집들이 방문하시면 내심 큰 자랑거리용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런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시간이었다.
아파트! 어머니에게는 큰 목표이자 성공의 의미였다.
(지금은 주택이 좋다고 옥상이 있는 2층 양옥집에 살고 계신다.)
자기가 선택한 장소에서 스스로 위태로워지지 않기를
‘소속감과 유대관계를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습성이다.’
모든 인간은 고립되지 않기 위해 교류를 이어나가고 나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공유하며 살아간다. p.168
소설 속 등장인물의 속물들 사이에서 느낀 피곤한 인간관계는 우정이라 느낄 수가 없었다. 자기가 선택한 장소에서 위태로워지며 맞지 않는 사람들과 맞추며,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며 참고 살아간다.
정보는 필요하지만 정보를 얻는 만남은 불편한 현실과 마주한다.
우린 너무 쉽게 벗이라 우정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격이 있어 서로의 격을 챙기거나 논하지 않아도 되는, 결이 같아 서로 불꽃 튈 염려가 없는, 곁에 있어 나보다 더 나를 알게 해주는, 내 삶에 자리 잡은 격, 결, 곁과 자연스레 궁합 맞는 누군가와 최소의 예민, 우려, 신경만으로도 짙고 깊고 오랜 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 - 브런치 작가 지담 -
이런 관계에서 ‘벗’이라 ‘우정’이라 부르고 싶다.
남편들이 생각하는 아파트란 주거공간
남편들도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남자들’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음식물 쓰레기’, ‘흡연’이라는 두 단어가 떠오른다.
퇴근 후 집으로 들어서면 아파트 밖으로 잘 나서진 않지만, 아내의 심부름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가는 남편들. 똑같은 모습의 남편들과 마주치는 상황 그리고 흡연자 남편은 단지 밖에 흡연 장소를 몰래 찾아다니는 모습들이 연상된다.
음식물 버리러 온 남편들과 마주칠 때 이웃 남편과 눈인사하는 정도의 관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같은 동 주민은 목례가 끝나기 무섭게 말없이 바뀌는 숫자만 바라보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그 어색한 기분을 공유하는 관계. 그냥 같은 동에 산다는 그 느낌. 아내만큼 큰 관심은 없으니까…. 아파트란 공간이 남편에게는 어떻게 와닿을지? 내 가족과 함께하는 주거 공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는 생각.
요즘 세대(MZ)의 엄마들은 점점 느슨한 연대를 찾고 있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가벼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진정한 소속감과 우정을 찾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선택한 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에 끈끈한 연대보다는 느슨한 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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