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힘들면 언제든 내게 쏟아내 버려요.
시댁에서의 2박 3일.
요 근래 끈이를 일찍 재우느라 늦은 퇴근을 하는 시누이와 정말 오랜만에 밤 수다를 시작했다.
나 보다 5살 위의 우리 형님은 아직 솔로다.
그래, 말이 솔로이지 우린 형님을 그냥 노처녀라 속시원히 부른다.
그런 시누가 요즘 뭘 해도 짜증이 난단다.
하는 일도 짜증 나고
뭘 먹어도 짜증이 나고..
남편과 난 쿨하게 진단을 내려줬다.
형님, 그게 바로 노처녀 히스테리예요.
알고 있단다.
그런 시누가 유일하게 그 짜증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우리 시어머니.. 즉, 엄마다.
형님은 우리 시어머니를 자신의 감정 하수구라 표현했다.
꽉 채운 나이에 혼자인 딸이 쏟아내는 온갖 감정의 찌꺼기를 뱉어 내는 곳.
감정의 하수구란 표현을 『보통의 육아』 저자는 어른들의 감정이 가장 낮고 나약한 자녀에게 쏟아진다는 뜻에서 사용했으나, 이제 말도 잘 하고 경제력도 생겼고 정보력도 엄마보다 더 빨라진, 쉽게 말해 강해진 자녀는 반대로 엄마를 감정 하수구로 삼는다.
우리 엄마는 나와 우리 언니가 청소년기를 겪으면서부터 그렇게 우리 집 감정 하수구가 되어왔다.
이유가 없이도 짜증이 났던 중학생 땐 무작정 엄마에게 덤벼들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하지도 않는 공부를 핑계로 예민하고 까칠하게 대꾸했다.
대학생이 되곤 내 자유를 방해 말라며 엄마의 조언과 충고를 잔소리라며 튕겨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사회가 너무 불공평하다며 힘든 하루 하루를 엄마에게 쏟아냈다.
작년부터 엄마에게 몇 가지 나쁜 일이 있었다.
힘들고 괴로운 일과 맞서 버티고 싸우는 모습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난 내 자식 키우느라 연락조차 잘 못 하고 있다.
간혹 연락이 닿아도 엄마의 감정을 공감해 주거나 받아주기 보단 내 얘기, 아들 얘기만 하다가 끊어버리는 게 태반이다.
지금 엄마에게 필요한 건 감정 하수구 일 텐데.
누가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
엄마,
얼마 전 부산에서 마지막 인사할 때도 쏟아지려는 눈물 참느라 얼굴도 잘 못 봤네.
사실 난 집으로 올라 오는 길에 많이 울었어.
요즘 엄마가 스트레스로 건강이 많이 상해 보여서. 또 그런 엄마를 멀리 두고 와야 하는 게 마음이 많이 아프고 걱정돼서.
끈이 낳고 끈이 돌보고 사느라 엄마를 늘 마음에 두고도 돌아보기가 힘드네.
나 어렸을 때,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만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 궁금해서 내가 물어봤잖아.
엄만 엄마없이 어떻게 사냐고.
그때 엄마가 했던 말이 난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
자식을 보며 살게 된다고..
그 말, 예전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는데 나도 자식을 키우다 보니 이제 이해가 돼.
근데 엄마,
이해는 되지만 난 그래도 . . 아직도 엄마가 없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행여 엄마가 병이라도 날까봐, 세상을 떠나진 않을까 너무 무섭고 두렵고 걱정 돼.
엄마, 난 요즘 글을 쓰는 게 정말 재밌어요.
내 글은 우리 아기랑 엄마 얘기들로 가득해요.
앞으로도 엄마 이야기 또, 아기 이야기를 글로 예쁘게 써 나가고 싶어.
하지만 아픈 엄마를 걱정하는 글이나, 내가 못 했던 효도를 후회하는 글, 또 행여 이미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그런 글은 결코 쓰기 싫어.
그러니깐 건강 챙기면서 행복하게 살아요.
엄마 감정의 찌꺼기 버릴 곳 필요하면 내가 해 줄게.
언제든 전화해.
대신 나한테 쏟아내고 엄마 마음에선 제발 비웠으면 좋겠어.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잖아.
끈이가 나와 탯줄로 연결된 한 몸 이었듯,
나랑 엄마도 우리 한 몸이었잖아.
그러니 나랑 오래 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같이 살자.
엄마도 잘 알 잖아.
내가 엄말 얼마나 사랑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