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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훈 Jun 26. 2024

타이중행 대한항공 긴급 회항 후기 2편 - 비상상황발생

“나는 이 순간에 100% 죽었다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만 명징해보이는 이 비극적인 결말 외에, 곧 전개될, 그러나 전혀 가늠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라고는 너무도 슬플 것이라는 사실 하나 뿐인, 결말로 향하는 과정들을 상상하니 내 몸 속의 모든 것들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터져나올 것처럼 아팠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륙한 KE189편은 여느 다른 항공편처럼 순조롭게 고도를 올렸다. 여행에 한껏 들뜬 딸아이의 재잘거림에 반응해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식사 시간이었다. 사전주문한 스파게티 키즈밀을 딸아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  ‘역시 불고기를 선택할 걸 그랬나’ 같은 시덥잖은 후회를 하고 있던 찰나, 생소한 불안감이 다가왔다.



 작년에만 비행기를 편도 72번 탔으니, 대충 5일에 한 번꼴이다. 당연히도 많은 종류의 난기류를 겪었지만, 이것이 비행안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에, 스도쿠 따위로 긴장을 풀며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느낀 것은 난기류의 불편함과는 다른, 아주 생경한 내 몸이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내가 이상함을 감지한 그 순간부터 기체가 뭔가에 끌려 급격히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식간이었다. 항공기의 코 부분에 빠루 같은 것을 걸어 밑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급히 주위를 살피니 승무원들의 얼굴에도 긴장이 서려 있었다. ‘이건 평소와 다르다’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기장의 방송이 다급히 흘러나왔다. “승무원 착석하세요!”  이 안내방송이 나에겐 엄청난 공포였는데, 왜냐하면 평소 온화한 목소리와 (약간은 건조하다 할지라도) 나긋한 톤으로, 어찌들으면 의무감에 귀찮은 듯 던지는 그 음성이 아니라, 당황했음이 묻어있는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목소리와 톤도, 말의 속도도 평소와 많이 달랐다. 



 ‘부우우우’ 하는 느낌과 함께 (실제로 저런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기체가 아래로 당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앞뒤 설명 없이 승무원들을 착석시키는 기장의 방송이 더해져 내 불안감은 최고조로 향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의 움직임도 이례적으로 다급해 보였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니어야 해’ 간절히 현실을 부정하며 겨우 참고 있던 그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 위에서 산소 마스크가 내려왔다. 



 산소 마스크가 내려오는 것을 목도하는 건, 그것도 3만5천피트 상공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건 상상 불가능한 차원의 시각적 공포였다. 내 뇌가 산소마스크에 대한 인지와 해석을 다 끝내기도 전에, 다시 한번 기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비행기 비상착륙하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어딘가에 갇힌 듯했다.


<<생전 처음 마주한 기내 산소 마스크, 생애 가장 두려웠던 순간 - KE189>



 나는 이 순간에 100% 죽었다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만 명징해보이는 이 비극적인 결말 외에, 곧 전개될, 그러나 전혀 가늠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라고는 너무도 슬플 것이라는 사실 하나 뿐인, 결말로 향하는 과정들을 상상하니 내 몸 속의 모든 것들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터져나올 것처럼 아팠다. 지금 이 고도에서 비상착륙을, 그것도 바다 한가운데서 시도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즐겨 보았던 항공사고 다큐멘터리들 때문일까, 잠시 후에 벌어질 일들이 선명히 그려졌다. 그리고 그 그림은 너무도 비극적이었다. 아는게 병이라는 흔한 말에 평소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처절히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앞 좌석 틈 사이로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작은 손으로 산소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는 딸. 그 마저도 6살이 쓰기에는 너무 커 머리에 채 고정되지 않는 마스크를 힘들게 붙들고 있는 모습에 내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아내와 함께 아이의 착용을 도우며 생각했다. ‘내가 왜 대만에 오자고 했을까? 평소대로 일본이나 다녀올 걸’, ‘딸을 왜 데리고 왔지? 엄마한테 맡기고 올 걸’ ‘그깟 온천이 뭐라고, 내가 내 아내를, 우리 아이를 사지로 몰아 넣었을까’ 끝없는 자책이 맴돌았다. 내 손은 딸을 어루만지고 있었고, 내 입은 아내를 안심시키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내 긴장과 내 두려움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 머리 속에는 최악의 상황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바삐 뛰는 내 심장은 목젖 근처 어딘가까지 올라붙었다.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 한마디조차 내뱉기 괴로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라리 나만 죽는 걸로 끝낼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만 떠올랐다. 그리고 현실적인 방법도 고민했다. 충돌하는 순간에 내가 공벌레처럼 아이를 감싸 안으면 내 몸이 산산조각 난다 하더라도 아이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을 엎드리게 하고 내가 그들 위에 마치 판자마냥 넓게 엎드려야 할까? 소용이 있을까? 내 두뇌의 모든 세포들이 총동원되어 방법을 짜내고 있었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추락하기도 전에 후회로 먼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들 옆자리에만 앉았다면 최소한 마지막 순간에 손이라도 편히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따위로 자리를 지정했을까. 아니, 그 전에 왜 이 비행기를 탔을까. 왜 여행을 가자고 했을까. 




 설상가상 아내의 오른팔에 문제가 생겼다. 주먹이 쥐어지지 않고 팔이 굽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숨 쉬기가 힘들고, 계속 이러면 정신을 잃을 것 같다고 했다. 애써 침착한 척 그녀의 팔을 만지며 괜찮다고, 일시적인 거라고 안심시켜보았지만 내 호흡 역시 제법 불편해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 없었고, 그저 ‘비상착륙’을 시도하는 중이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순간순간 ‘별 것 아닐거야’라고 아내를 안심시키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 와중에도 딸은 산소마스크를 붙들고 엄마를 따라 열심히 호흡하고 있었다. 작은 얼굴을 거의 덮어버린 노란 마스크 위로 겁에 질려서인지 한껏 커진 두 눈동자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 나 잘 하고 있어?” 산소마스크를 쓰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호흡하던 딸. 올해 초 생일이 지나 만으로 6살을 넘긴 나의 딸.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호기심 많고, 질문을 참는 법을 모르는 아이. 평소 같으면 끊임없이 꼬리를 물며 궁금증을 끝까지 해소하려 질문했겠지만 오늘의 질문은 단 하나였다. “이렇게 계속 숨 쉬면 되는 거지?”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그저 정석대로 호흡하는 딸의 모습. 그 기특하며 가여운 모습을 바라보자니 분노와 서러움이 가슴에서 만나 눈물로 끓어올랐다. 물론 당장 그 눈물을 쏟아낼 여유는 없었다. 


<옆자리 승객의 가방 속 성경 - KE189>

                                  


 잠시 주변을 살폈다. 코피를 흘리는 사람, 귀 통증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 큰 소리로 울어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성경책을 꺼내 읽는 사람도 보였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기도를 하는 것 같았고, 나도 이내 따라 기도했다. 손을 모아, 손가락 관절이 아플 정도로 꼭 모아, 큰 목소리로 마스크 안에 기도를 가득 채웠다. 내용은 모두가 같았겠지. 나는 세 번 기도했다. 처음엔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두번째로는 아이와 아내까지만 무사히 땅에 내려달라고, 마지막 기도에는 우리 가족이 내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장의 방송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고도가 얼마나 낮아졌을까? 확실한 건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상당한 고도를 낮췄다는 것뿐이었다. 창밖을 반복해서 응시했다. 비행기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지는 않았는지, 배면이 들리지는 않았는지, 더 급격한 각도로 곤두박질치려는지. 바깥 하늘은 눈치없이 아름다웠다. 하늘색 배경에 날카롭게 선명한 흰색 구름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구름들을 기준 삼아보니 다행히 수평은 유지되고 있었다. 아내의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일부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호흡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무사히 내릴 수 있겠다’ 드디어 이런 기대가 생겨났다. 



 다른 사람들이 어느정도의 공포를 느꼈는지 완전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내가 특별히 비관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인 이유는 아무래도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25년 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에도 같은 대한항공이었다. 그래서인지 난 항공안전에 극도로 예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사에 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나에게까지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럭저럭 비행기를 잘 탑승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엉성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잘 지탱해주던 믿음이 처절히 깨지려 하니 더욱 절망한 것일테고, 더욱 두려웠던 것일테다. 그러나 사실 마음의 끝쪽 구석 어딘가에서는 그 희미한 믿음을 아직 붙잡고 있었다. 정말 믿고 싶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내 부적 같은 믿음을.


<안전한 여행을 위한 안내서, 그리고 마스크 - KE189>



 이 아비규환의 속에서 우리는 이곳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엔진 고장일까? 날개가 부러졌을까? 기장의 목소리를 듣자하니 항공기 납치나 자살 비행은 아닌 것 같고. 유압? 여압? 도대체 어떤 상황일까. 사실 그런 것이 모두에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저 무사히 착륙하기만을 바랄 뿐. 긍정의, 희망의 안내방송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사무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비행기 현재 이상 상황 해결되었고, 제주도로 착륙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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