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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훈 Jun 02. 2022

내가 탑승한 비행기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기내 엔터테인먼트 속 영화를 즐기던 중, 난기류를 만났습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켜지고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으레 발생하는 난기류겠거니 싶지만, 어? 상하좌우로 요동치는 정도가 평소 같지 않습니다. 맥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캔이 구겨지기 시작합니다. 재빨리 스튜어디스를 살핍니다. ‘지금 그녀가 당황하고 있는가?’, ‘조종실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고 있지는 않는가?’ 불안함으로 바라봅니다. 전문직으로 보이는 건너편 승객도 확인합니다. 말끔한 셔츠 차림으로, 투미 가방에서 IBM 랩탑을 꺼내 업무에 열중하던 저 승객은 이 노선이 익숙한 상용 고객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흔들림 없이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지, 혹은 다른 승객들처럼 초조한 눈망울로 주위를 살피고 있는지, 지금 이 상황이 심각한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구토도 귀엽게 - Yeti Arilines>


 미국 명문 항공학교인 앰브리-리델 항공대(ERAU)를 졸업하고 국적기를 몰고 있는 후배의 말을 떠올립니다. “형! 순항고도에서의 비행기가 난기류로 인해 사고가 날 확률은 거의 없으니 걱정하지 마!”. ‘유학파는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라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믿어봅니다. 그런데 마침 재생 중이던 영화에서 아찔한 장면이 나옵니다. 애당초 비행기가 많이 나올 것만 같은 <덩케르그> 대신에 고른 첩보물 <스파이 브릿지>였는데, 웬걸! 이 영화에서 비행기가 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영화 화면과 실제의 흔들림이 4DX 영화를 보는 것처럼 어우러집니다. 즉시 영화를 종료하고, 비행정보화면인 ‘에어쇼’를 켜서 현 위치와 순항고도를 확인합니다. 순한 맥주 대신 독한 위스키를 먹어 놓을 걸 아쉬워합니다.


 잠깐 스치는 난기류는 그럭저럭 참을 만 하지만, 흔들림이 길어지면 불안감을 다스리기가 퍽 어려워집니다.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따라 울고 싶지만 어른이기에 꾹 참고 있는 승객들도 보입니다. 모두가 초조한 모습입니다.  25,000피트 상공에서는 불안과 공포의 전염 속도가 상당합니다. 저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눈을 살짝 감습니다. 물리적인 흔들림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사실 저는 이런 불안을 능히 이겨내고 편안히 비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의연한 자세로 난기류를 이겨낼 수 있는 승객입니다. 제가 탑승한 비행기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론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Airshow 스크린>


 89년 7월,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추락합니다. 탑승한 200명 중 75명이 사망했는데 그중에 제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이 슬픈 사고를 이야기함에 있어 사실 어려움은 없습니다. 아들을 잃은 할머니나,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꺼내기에는 쉽지 않은 기억이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제게 말 못 할 사정까지는 아닙니다. 얼굴도 기억을 못 하기에 사고 자체가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저는 매번 난기류를 만나면 생각합니다. ‘세상에 남편과 아들을 각기 다른 비행기 사고로 잃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 착한 엄마에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고는, 그렇게 안정을 되찾습니다.


 네, 저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비행과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비행은 서로 독립적인 사건이고, 앞 사건의 결과가 다음 사건의 확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제가 읊조리는 주문은 미신처럼 비과학적이지요. 하지만 제게는 분명한 효과가 있는 까닭으로 저는 난기류를 의연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제 후배의 신신당부처럼 난기류로 인한 사고가 날 확률이 극히 적기에, 사실 우리들 모두는 과하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머리로는 알고 있음에도 내 들썩이는 엉덩이로부터 몰려오는 불안감은 너무 구체적이고 직접적이긴 하죠. 그렇기에 여러분도 저처럼 ‘내게 사고가 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보심이 어떨까요? 꼭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말이죠.




 평소에 아버지 생각을 자주 하지 않습니다. 기억도 없을뿐더러, 다 커버린 지금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결핍도 없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만큼은 그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난기류에서는 더더욱이요. 전염병으로 인해 비행기에 탑승할 기회가 좀처럼 없는 요즈음, 통 아버지 생각을 하지 못했었네요.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문득 89년의 ‘아빠’보다 오늘의 제 나이가 더 많아졌음을 발견했습니다. 계산해보니 그때의 제 나이와 지금 제 딸의 나이가 같다는 것도 알았고요. 너무 속상하기에 거의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지만, 떨어지는 비행기 속 아버지의 심정을 오늘 다시 상상해봅니다. 마지막 순간에 나를 떠올렸을 그 모습을 바라보니, 배꼽 어딘가에서부터 뜨거움이 울컥하지만, 코 끝이 가려운 슬픔을 잠시 추스르고, 아버지가 평안히 쉬고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소설 <역마> 속 “엄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 주우” 하는 주인공 성기의 심정으로, 다음 여행지의 항공권을 또 예매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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