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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림 Apr 25. 2024

너의 세상에
기꺼이 뛰어들 용기

“공감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 끝까지 같이 내려가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친구들 사이 고민상담소이자 자존감 충전소를 담당하고 있다. 멋지고 용감하고 동시에 여린 나의 친구들은 고맙게도 자신의 힘듦을 나에게 꺼내어 보여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사랑, 그리고 눈물로 답한다. 하지만 눈물은 공감이 아니다. 낸시 슬로님 애러니의 책에서 소개된 ’깊이 듣기’ 개념 덕분에 전보다 타인과 면밀히 연결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깊이 듣기란 통제하거나 판단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그 순간, 그 자리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귀담아듣는 것이다. 나는 이 깊이 듣기가 좋은 대화법이자 공감이라 생각했다. 이후 누군가 힘듦을 꺼내보일 때마다 깊이 듣기를 실천한다. 나의 그 어떤 판단과 생각을 배제하고 난 지금 너에게 집중하고 있다고. 너의 힘듦으로 몸소 내려가 보겠다고 시선으로 대답하기를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제시하는 다른 공감으로는 기꺼이 뛰어들어-면밀히 들여다 보는 방법이다.

너의 세상에 공감하기 위해 기꺼이 뛰어들 용기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아토피 피부염을 가지고 태어나 할머니 댁은 내게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어떠한 가공식품이던간에 할머니와 함께하는 식탁에는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 영향을 받아 환경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브리타 정수기를 사용하고, 천연 수세미로 바꾸고 텀블러를 자주 사용했다. 2주마다 2L 식수 12개를 시키는데 적어도 한달에 24개의 플라스틱 병이 원룸에서 나온다는 건 상당한 부피와 부지런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로웨이스트 다음, 드디어 24년부터 비건 지향을 선언했다.


내 피부는 육류>밀가루>유제품 순으로 취약했다. 항상 배가 출출할 때면 선식을 마셔 배를 채우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천하장사-소세지-도 벌벌 떨면서 먹지 않았다. 자연스레 채식 위주의 삶이 이때부터 이미 형성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잠시 아토피 피부염이 놀랍게도 사라진 적이 있는데, 호르몬의 영향인지 월경이 시작되면서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물론 잠깐의 기간동안 사라져봤자 뒤늦게 육류 위주의 식습관이 잘 적응될리 없다. 소화를 못해서 친구랑 외식하고 집에 오면 그날부터 다음날까지는 화장실에 가기 바빴다.


코로나로 한창 오프라인 모임이 어려울 때, 지인으로만 꾸려진 온라인 기상모임에 들어갔다. 거기서 만난 친구, B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B는 비건을 지향 중이었다. 주변에 그러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실수할까 싶어 꽤나 긴장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부산의 한 비건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비건과 동물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게 되었고 B의 많은 자기소개 중 ‘비건’이 신기했을 뿐이지 그 외에 우리는 처음부터 이틀을 꼬박 붙어있을 정도로 마음이 통했다는 부분이 중요했다. 지금 이 글을 듣고 읽고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궁금하지 않을 주제라는 것을 안다. 평소에도 익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나의 글감은 비건이 아닌 ‘기꺼이 뛰어들어 면밀히 들여다 보는것’임을 강조해본다.


자연스럽게 B와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는만큼 대화를 하면서 아차 싶은 부분이 많았다. 최고 단계인 비건은 유제품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B에게 붕어빵 슈크림이 좋냐, 팥이 좋냐고 묻다니.’ ‘우유를 넣은 라떼를 맛보라고 권하다니.’

‘와인과 곁들일 안주로 크림치즈를 권하다니.’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식은 땀이 났다. 하지만 B는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실망하고 설명하기보다 다정히 대답했다. 팥이 좋다고. 이 두부케이크가 단 편이라 아메리카노가 좋은 조합이라고. 치즈 말고 다른 게 땡기는 날이라고. 어쩌면 이 친구를 만나 비건을 접했기 때문에 더욱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거라 확신한다. 이미 B가 가진 삶의 태도, 인간관계를 부러워해왔는데 명확한 가치관을 가지고 절제하는 부분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웠기 때문이다.


그 당시 에세이와 시, 산문집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 중 비건을 실천하고 있는 이슬아 작가님의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봤던 문장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달라지게 했다. 인간관계 중 아무리 ‘친구’라는 위치에 있어도 개인의 선택을 내가 바꿀 권리도 없을 뿐더러, 바꿀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세상을 꺼내어 보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작가님은 그런 대담한 용기를 작가님의 친구들에게 ‘비건 책’으로 전달했다. 친구들은 그 책을 받고 다음날부터 비건을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해당 에피소드가 끝났다. 나도 B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친구의 세상이 어떤지, 내 친구가 앞으로 걷게될 길이 궁금해졌고 마땅히 친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더 큰 대의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다음날 나는 블로그에 썼다. “오늘부터 비건을 지향하겠습니다.”


B가 말하지 않은 그의 세상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 많은 불편함이 따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불편함보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생활. 예로 들면, 얼마전까지 대부분의 카페는 두유와 오트 옵션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 서울은 그나마 비건이 살기 좋은 도시 같은데 부산은 전혀 아니다. 비건 옵션을 제공하는 가게가 표시된 어플을 켜서 부산광역시를 축소해서 보면, 그 표시가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듬성듬성하다. 서울에 왔는데도, 비건 옵션을 제공하는 식당이 많지 않다. 또는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메뉴판에 적혀진 식당이 적고, 회식이나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는 당연히 치킨, 삼겹살 집으로 장소가 확정되었다. ‘너는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걸어가고 있는지 단 한번도 내게 설명해준 적이 없었는데, 더 큰 용기로 살아가고 있었구나.’

뛰어든 다음에서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B가 내게 알려준 새로운 세상과 마음가짐, 그리고 다정히 자신의 세계로 인도하는 부드러움.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의 방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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