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초보입니다.

13년째 초보입니다만

by 아무

수시로 엑셀과 브레이크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모든 규정속도를 준수합니다.

신호는 여유 있게 지킵니다.

우회전에도 신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차장이 없는 곳은 위험해요.

골목길은 두 발로만 갑니다.

저를 지나치는 모든 차들을 이해합니다.

차선변경에 목숨 걸지 않습니다.

조수석은 비워주세요.

흰 장갑은 끼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초보입니다!


아이들은 엄마를 장군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집 딸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어이 장롱에 고이 넣어둔 면호를 꺼내게 만들었으니 말이죠.

운전만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죠. 겁이 조금 많은 편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니 차가 필요한 순간이 왜 이리 많은지요. 일하는 남편을 매번 불러낼 수도 없고 말입니다.


워낙 겁이 많아서 운전은 평생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동네에서만 살살하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운전이었습니다. 유치원으로 시작된 운전은 마트, 친구네 집, 교회, 동네 소아과만 빙빙 돌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입학한 후로는 학원, 동네를 벗어난 병원과 쇼핑몰, 공연장까지 조금 범위가 넓어졌죠.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하지 않을 때는 못할 줄 알았거든요, 평생.


그런데 시작하고 나니 천천히 가고 있지만 조금씩 늘고 있긴 합니다. 여전히 운전을 시작할 때 긴장은 하지만 두 손은 떨지 않습니다.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갈 때 시속 10km 이상으로 (20km 정도긴 하지만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달릴 수 있습니다. 달리면서 사이드 미러를 확인하고,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보고 정확히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뚜벅이 일 때는 마트에서 항상 집까지 걸어가면서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계산해야 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고려가 사라졌습니다. 장을 보고 카트를 주차장까지 이동해 트렁크에 싣고, 트렁크 문을 쾅! 닫을 때마다 손맛이 아주 좋습니다. 저는 그런 제가 지금도 기특합니다. 아직까지 멀리는 못 가고 초행길은 입이 바짝바짝 마르지만, 마흔 넘은 아줌마에게 이런 뿌듯함을 선사해 준 운전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운전은 단순히 편리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해 볼 만하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

라는 자신감과 도전 의식이 장착되니 말입니다. 남들 다하는 운전을 하면서 저는 이 나이에도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조금씩 가면 어떻습니까? 느리게 가면 어떻습니까? 13년째 초보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건 제가 지금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이 속도로 매일 달리다 보면 제 운전의 마지막 날에는 가장 운전을 잘하는 초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운전을 하면서 느꼈습니다. 무서울 수도 있고,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을요. 저는 도망치지 않았고, 운전대를 놓지도 않았습니다. 가끔 운전을 하다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침 한번 삼키고 헤쳐나갔습니다. 길이 좁을 때는 돌아가고, 내비게이션을 잘못 봤을 때는 조금 늦게 도착합니다. 그래서 항상 여유 있게 일찍 출발합니다. 운전을 잘하지는 않지만, 운전을 합니다. 제 운전의 목적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무사히 도착'하는 것입니다. 목표가 뚜렷하니 다른 건 괜찮습니다.


운전이 준 성취감을 통해서 저를 확장시키는 많은 시도들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떨고 있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보다 세상은 만만할지도 모릅니다. 잘하지 않아도 되고 빨리 가지 않아도 되는 게 인생이라면, 초보 인생으로 평생 천천히 걷다가, 가장 행복한 초보로 인생을 마칠지도 모르죠.


베스트 드라이버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13 년째 초보이지만, 오늘도 달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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