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과 효율의 경계에서
ChatGPT의 성장 궤도에 따라 이제는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것보다 제대로 질문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하청 SI가 줄어들고 단순 반복 코딩만 하던 개발자 수요는 급감할 것이다. 나는 쿼리머신인가?라고 스스로 물었던 데이터 분석가들은 고도의 ML, 통계 패키지로 대체될 것이며 웹에서 잘 만들어진 템플릿 가져다가 복붙 하던 디자이너와 퍼블리셔들도 역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질문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질문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명확할 때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가 명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신만의 주력 도메인이 존재해야 한다. 나는 금융, 교육, 모빌리티, 광고, 법률 등 다양한 도메인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AI를 적용해 왔지만 도메인이 넓어질수록 테스크를 깊게 이해하기보다 당장 필요한 기술을 찾아서 적용하기 바빴다. 바로 이런 케이스가 앞으로 금방 대체될 업무들이다.
나는 작년 몇 달간 광고카피를 자동으로 써주는 AI를 개발했었다. 곧 ChatGPT가 나왔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난 몇 년간 GPT 계열의 자연어생성 모델을 트래킹 하면서 모델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것을 체감했으나 현실적으로는 넘기 어려운 threshold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곧 뉴스에 GPT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온갖 유튜버들이 GPT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마 많은 엔지니어들, 특히 자연어를 오래 다뤄왔던 AI 전문가들은 GPT를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특이점'이라고 이야기하는 유튜버들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나 한편으로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나라는 장난 섞인 하소연도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는 걸 보면 내심 다들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ChatGPT 이전에 GPT3부터도 이미 개인은 물론 대다수의 기업 및 연구기관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런 초거대 모델을 직접 구현하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오래전 자체 서버에서 클라우드로 옮겨온 것처럼 AI모델도 API로 빌려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언어모델이 특수한 목적을 두고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범용 모델로 학습되며, 프롬프트 튜닝을 통해 즉각 질의, 사용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GPT2까지만 해도 사전학습된 모델을 파인튜닝했다면 지금의 ChatGPT는 그냥 필요한 질문만 던지면 알아서 답을 낸다. 사실 ChatGPT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Naver Clova, KaKao KoGPT도 같은 GPT3기반 모델이 있었지만 성능 면에서 현저히 차이가 나고, ChatGPT는 '채팅'이라는 너무 편한 요소로 대중에게 다가왔기 때문에 순식간에 확산된 것이다.
앞으로 이런 양상은 더 가파르게 커져갈 것이며, AI는 반드시 대중화되어 우리 일상과 업무 현장에 주저 없이 파고들 것이다. 사실 ChatGPT가 여전히 결함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기업에 빠르게 도입된 지 오래다. 기존에 Notion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Notion AI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고, 국내 비대면 의료 플랫폼 굿닥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AI챗봇을 쓰고 있다. 개발자들도 예외 없이 Github Copilot을 통해 코드 작업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AI의 대중화는 단순반복 업무를 빼앗을 것이며 비기술직 사무직 종사자가 주 타겟이라 하지만 대부분의 일에는 단순반복 업무가 존재하며, 꼭 단순반복 업무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등 창의적인 업무까지도 AI가 잘하게 되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AI의 영역인가를 논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오토바이의 등장으로 자전거가 사라지지 않았다. AI의 등장은 인간의 존재 가치를 흔들 수 없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이것을 활용하는가 활용하지 않는가의 문제다. 모든 데이터 분석에 고성능 AI를 사용하지 않는다. 단순한 시계열 예측에는 기초 통계를 기반한 계량분석 기법이 더 나은 선택이다. 자전거와 마차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걷고 뛰기를 그만둔 것이 아니며, 자동차와 전차가 등장했을 때 자전거와 마차가 버려진 것이 아니다. 다만, 인력거가 사라졌을 뿐이다. 비효율의 효율화. 그것이 도구의 목적이다.
모든 공간, 모든 업무에서 AI가 효율적일 수 없다. AI가 바둑도 두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고 하니 마치 인간을 대체해 버릴 것 같지만 AI는 도구로써 적절히 필요한 곳에 잘 활용하면 된다. 다만, 자동차가 나왔는데 인력거는 계속 존재할 것이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KTX가 있지만 무궁화호도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선로를 없애기보다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기 때문이고, KTX보다 가격이 절반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시간이 급하지 않은 승객에게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 반면, 인력거가 유지되려면 인력거 공급자가 1시간 노동했을 때 최저시급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어야 하나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렵다. 그렇게 비효율만 남은 인력거는 반드시 사라진다.
웹사이트 개발사가 웹개발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노코드 웹개발 툴을 다룰 줄 아는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면 단연코 그렇게 할 것이다. 또한, 수요기업이 웹사이트 개발사에 개발을 맡기는 것보다 직접 그러한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이제 개발사는 문을 닫을 것이다. 수요기업은 개발 외주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중간중간 비효율이 발생한다. 우리가 인테리어를 직접 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풀려진 가격을 알면서도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비효율은 언젠가 효율화되기 마련이며, AI는 이를 가속화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현재의 편익을 위해 비효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반복적이고, 누구나 조금 노력하면 진입할 수 있는 일이지만 소득이 꽤 괜찮기 때문에 주어진 일에 충실히, 열심히, 혹은 적당히 요령껏 하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방법을 찾고, 비교 우위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반드시 속한 도메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따라야 할 것이다.
도메인은 기술 자체가 될 수도 있지만 법률, 의료, 교육, 광고, 제조 등 다양한 산업 현장이 될 수도 있다. 여기저기 어설프게 발을 걸치고 있다면 누군가는 그 도메인에서 나보다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한 도메인을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비효율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튜브 영상으로 주식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보다 직접 통장 하나 개설해서 주식 한 주 사보는 것이 비약적으로 크고 빠르며 직관적인 배움을 얻는다. 따라서 오래 몸담아 온 도메인, 혹은 정말 관심 있는 도메인에 집념을 가지고 파고들어야만 비효율을 찾아내고, 좋은 질문을 통해 자신만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춰갈 수 있다.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 AI와 기술은 최고의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어진 일만 바쁘게 처리하는 데에 몰두해 있는 동안 AI는 내 자리를 어렵지 않게 대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