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 아이는 유난히 피부가 하얗다.
통통한 발그레한 볼을 한번 꼬집어 보고 싶게 만든다.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끔뻑이는 큰 눈은 하루종일 무엇을 보는지 참 바쁘다.
중요한 것은 나와 같은 걸 보고 있지는 않다는 거다.
나와 같은 것을 하려고 하면, 참 힘들어한다.
모둠활동을 할 때에는 모둠 친구들의 안타까운 탄성이 속출한다.
그래서인지 자주, 종종 내 곁을 서성인다.
내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그 긴 속눈썹이 내 얼굴에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곤 한다.
수업시간에 들리는 그 아이의 큰 목소리는 수업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냥 순간 하고 싶은 말이 생기나 보다.
그래도 가끔 그 아이가 맥락에 맞는 대답을 하고,
나와 같은 것을 하려고 할 때가 있다.
나는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그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넌 선생님과 생각이 똑같구나.
어쩜 선생님과 마음이 딱 맞지?
내가 놓치지 않는 그 순간만큼
수업시간에 그 아이와 눈 마주치는 시간이 늘어간다.
하루는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뒷문이 잠겨있었다.
문으로 장난치면 안 됩니다. 뒷문 잠근 친구, 얼른 가서 여세요.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가서 그냥 열고 오면 돼. 다음부터 안 그러는 게 중요하지. 자, 지금 열고 오자.
그래도 묵묵부답이다.
선생님, 야단치려는 거 아닌데. 그냥 잠근 사람 열고 와보자.
아무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숨 막히는 정적만 이어지던 그때,
그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내가 안 했지만, 그냥 내가 열면 되지! 그냥 내가 열고 올게요!
이건 내가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바로 그 순간이다.
멋진 행동을 한껏 부추겨 세웠다.
그 아이의 하얀 얼굴에 핑크빛 홍조가 더 진해졌다.
기다란 속눈썹 아래 큰 눈은 웃음 짓고 있었다.
물론 그 아이가 뒷문을 잠갔을 확률이 99%다.
그날 오후 청소구역을 나누었다.
첫날이라 모든 아이들이 나름 열심히 청소에 참여하였다.
그 아이는 자신의 청소구역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물음표 살인마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대답해 주었고,
다음날 아침 출근해 보니 그 아이는 아침부터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너 정말 대단하다. 선생님이 말도 안 했는데 이렇게 선생님 마음을 딱 알고 지저분한 곳 청소를 했을까? 너무 신기하다. 우리 어쩜 이렇게 마음이 딱 통하지?
그 이후로 틈만 나면
너무 청소가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양치를 하고 있어도
다른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친구들의 공부를 봐주고 있어도
귓가에 물음표를 던지고 간다.
어쩔 땐 내 대답을 알아들었는데도 짐짓 모른 척하기도 한다.
한마디라도 더 나누어 보려고 모른척하는 그 표정을 보면,
너무 귀여워서 볼을 꼬집어 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순간을 놓치지 않을 때마다
작년에 같은 반을 했던 다른 친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너 작년이랑 너무 다른데?
작년에는 저런 말 못 들었는데?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 아이는
올해 봄날의 새싹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변호사는 자신을 잘 챙겨봐 주는 친구를
"너는 따뜻한 봄날의 햇살 같아"라고 표현했다.
우영우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챙겨봐 주는 따뜻한 친구의 마음을.
나도 올해 그 아이의 따뜻한 햇살이 되어주고 싶다.
봄날의 새싹처럼 무럭무럭 자라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