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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Aug 19. 2024

군중심리와 나카모리의 춤

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어리석은 짓을 하는가?

군중심리(진영논리)에 빠지면 지식인도 무식해진다



『군중심리』를 쓴 귀스타브 르 봉에 따르면, 군중은 엘리트 집단일지라도 예외 없이 정신적으로 무척 열등하지만, 그들의 조직에 간섭하는 건 위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군중은 이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다. 파리에서 몇 주 만에 5,000명의 사망자를 낳은 유행성 독감도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했다. 이미지가 아닌 통계정보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만약 에펠탑이 쓰러져 500명이 죽는 눈에 잘 띄는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사고는 군중의 상상력을 강렬하게 자극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통찰한다. 


여기서 "군중"은 단순히 한 장소에 모인 다수의 사람을 의미하기보다는 심리적으로 뭔가 공유하는 사람들이란 의미에 더 가깝다.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대중"이나 특정 지역에 속하는 "시민"과는 다른 개념으로 읽힌다. 팬덤에 더 가깝다. 르 봉은 "심리적 군중"이라고 표현한다. (아이유 팬클럽 유애나에 가입하면 긍정적인 의미에서 심리적 군중의 일원이 되는 것이고, 나처럼 그저 아이유 앨범만 소장하는 경우는 외롭고 고립된 고독한 팬의 한 명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군중 속의 개인은 불가능이란 개념 자체를 상실한다. 독립된 개인은 자기 혼자 왕궁에 불을 지르거나 상점을 약탈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유혹을 받더라도 쉽게 이겨낸다. 그러나 군중의 일원이 되면 개인은 수(數)가 부여하는 힘을 의식하게 된다. 이때 그에게 살인이나 약탈이란 암시를 걸면 그는 지체 없이 유혹에 넘어갈 것이다. 예기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도 미친 듯이 때려 부술 것이다.     


르 봉의 문장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흐음, 일단은,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을 길이 거의 없다는 건, 아쉽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인 것 같다고 수긍하면서, 그건 그러네 하는 독백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이 밤의 상황은 뭔가. (비몽사몽 글쓰기 비법은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재차 강조하고 이래저래 중언부언하는 것이다.) 


다음의 문장 역시 이 밤의 암울한 기분을 더 어둡게 한다.      


오늘날 군중의 요구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현재 사회를 철저히 무너뜨려 문명의 여명 이전에 모든 인간 집단이 누리던 생활방식, 즉 원시 공산사회로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군중은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광산과 철도 및 공장과 토지를 국유화하고, 모든 재화를 공평하게 분배하며, 민중 계급의 이익을 위해 모든 상위계급을 타도하라고 요구한다. 군중은 이성적 추론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지만 행동하는 데는 빠르다. 그들은 지금처럼 조직화되면서 힘이 막강해졌다. 현재 잉태되고 있는 군중의 이념을 보면 조만간 과거의 이념들이 지녔던 힘을 갖게 될 듯하다. 어떤 논쟁도 허용하지 않고 전제적이며 절대적인 힘 말이다. 요컨대 군중의 신성한 권리가 군주의 신성한 권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21세기 강력한 SNS 시대(유튜브 포함)가 도래하여 르 봉의 예언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통렬하게 심금을 울린다. 팬덤 정치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이유를 오늘에서야 이해하다니! 나도 참 한심하다. 르 봉에 따르면, 군중심리를 이기는 방법은 군중심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첨단 기술의 발전이 군중심리의 위력을 무력화하게 될 것이다. 가상현실 메타버스 사이버 오락 시대가 하루빨리 도래해야 한다. 그 시대가 오면, 군중은 흩어져 제각기 자기만의 방에서 가상현실 기계에 접속하여 욕구의 각자도생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가상현실 세상 속에서 원시 공산사회를 구축하고 그 안에 날뛰며 놀면 무척 속이 편할 것이다. 각자 군중 속의 군주가 되어 건전한 민주주의를 도살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가상현실인데 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시대가 오면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환상의 세계로 갈 것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20대로 돌아간 나는 20대로 돌아간 나카모리 아키나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노래 <십계(十戒)>의 도입부에서 그녀가 펼친 그 희귀하고 희한하고 기이하고 웃기는 춤을 기꺼이 배울 것이다. 이따금 진짜 현실로 돌아와 그 무렵에 태어나 있을 나의 손녀 앞에서 나카모리의 춤을 출 것이다. 과보호가 지나친 남자는 경계하라! 그런 격려의 뜻을 담아 손녀에게 나카모리의 도도한 자태를 전수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카모리 아키나보다 민해경을 훨씬 더 좋아했다. 나카모리와 비슷한 컨셉으로 동시대를 풍미했던 민해경의 노래와 안무가 더 자연스럽고 듣기 편하고 즐거웠고 여전히 즐겁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흔히 볼 수 없는 기이한 자태의 나카모리의 춤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그 시절 나카모리의 노래 <십계>는 상당히 진보적이고 저항적으로 느껴졌다. 여자가 그런 가사의 노래를 부르니까 말이다. 21세기의 오늘날 그녀의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이보다 더 맹렬한 보수가 따로 없다. 극심한 보수주의 노래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가사의 노래를 이 시대에 들으니까 말이다.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세월의 장난에 놀아나다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https://youtu.be/6yMxYhurKLI

나카모리 아키나의 <십계> - 과거엔 전향적이었으나 지금은 보수적으로 느껴진다. 기이한 춤은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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