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땐 몰랐다.
대학을 고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저 SKY 면 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주변에서 우와-하는 대학만 가면 성공하는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혹은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다니며 돈을 오지게 학교에 가져다 바치면서 그 곳의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되었고,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학의 값어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생각을 현재 대학을 고르는 친구들에게 공유하고자 한다.
대학은 투자다
대학원 다닐 때 우리 지도 교수님은 대학원생들에게 자네들은 공부를 왜 하느냐고 가끔 물으셨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할때, 교수님의 최애 제자였던 한 선배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대답에 교수님은 매우 흡족해 하셨고, 그런 좋은 답변을 못했던 나를 비롯한 다른 쭈구리들은 그저 삼겹살만 구웠다. 교수님은 그 훌륭한 대답에 첨언을 하셨다. '그렇지. 연구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자연에 대해 궁금하기 때문에 하는 거지. 인간으로서 사물에 대한 궁금증이 그 기본이야.'
내가 진정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대학에 간 것이냐고.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찌저찌해서 대학도 갔고, 게다가 대학원까지 가버렸다. 그리고 논문을 쓰기 위해 내 앞에 놓인 돌멩이를 보면서 스스로 세뇌를 하고 있었다 (난 지구환경학을 전공했다). 난 돌멩이가 궁금하다, 궁금하다, 궁금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모두들 돌멩이에 궁금해 하는 게 아닌가. 돌멩이가 찌그러진 걸 보고 '우와! 이거 정말 신기하네요!'라고 하질 않나, 불판에서 쭈글거리며 구워지는 삼겹살을 먹는데도 Ductile Deformation (연성 변형)이 일어났다고 전공용어를 가져다 쓰며 마치 자신의 모든 24시간이 연구 그 자체인 듯 행동했다. 그들 사이에서 루저(Loser)처럼 보일까봐 한동안 나도 그들처럼 돌멩이가 신기하고 매우 궁금한 '척' 했었다. 아니, 사실 그 땐 내가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스스로 세뇌를 잘 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하루 종일 돌멩이를 보고 내린 결론은 내가 돌멩이에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 학기에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내고 2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쓰고 알아낸 게 고작 그거였지만, 그 깨달음은 나를 그곳에서 걸어나오게 한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매우 잘 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속한 학계에선 나 만큼 평균 이상 이하도 아닌, 자신의 연구에 그닥 미치게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은 수두룩했다. 그들은 그냥 그 길을 밥벌이로 선택한 것인데, 이미 들어온 그 집단에서 자신이 그 일을 아주 좋아 한다고 착각하기도 했고, 논문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다른 사람이 읽기에 시간 낭비인 졸작 논문들을 찍어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질문하거나 반박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고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반면 진짜 궁금해 하는 구루들은 훨씬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고, 자신이 주장한 내용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있으면 행복해서 흥분했고, 그들과 협동 연구를 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진짜 돌멩이에 미친 '찐' 연구자들이었다.
난 아니었다.
그래서 난 대학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진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도 맞지만, 나처럼 학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에겐 투자라는 개념이 더 맞을 것 같다.
사실 학계로 진출한 학생들의 수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감안할때 (주변에 기업에게 샐러리맨으로 직장생활하는 친구보다 '교수'가 더 많은가 생각해 보라), 대학도 이런 다수 집단의 니즈(Needs)를 반영해 서비스를 향상해 주면 좋겠다. 대학은 진리탐구를 하는 곳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은 현대 사회에서는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아직도 그런 생각이 강하다면 그건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철저히 무시한 배짱이라고 하겠다. 애플도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무시할 배짱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대학이 그런 배짱을 가졌다면 얼른 정신 차려야겠다.
대학은 투자라고 하니, "아, 좋은 말이야. 투자니까 무조건 해야 해" 라고 오해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니다!
투자라는 건 투자 대비 이익을 얻을 수도 혹은 투자한 만큼 재미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투자이기 때문에 리스크를 계산해야 하며, 투자이기 때문에 속속들이 잘 들여다 보고 결정하고 저질러야 한다는 의미다.
대학원이야 가방 끈을 좀 더 길게 해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다시 대학 이야기로 돌아가자.
대학을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학의 학위를 가지고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회에서 더 나은 위치에서 더 나은 경제적 대우를 받는 것이리라.
즉, 대학에 가기로 했다면, 대학에 들어간 투자비 (Input) 대비 수익 (Output)이 크다면 대학에 투자한 보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투자비는 시간과 등록금이 되겠다.
수익이란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이나 창업을 해서 대학에서 배운 학문이나 기술로 벌어들인 돈으로 생각해 보자. 그럼 계산을 해보자.
지방이 집인 학생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을 했을때 버는 수입의 관계를.
1년이면 학비 천만원, 그리고 서울에서 한달 생활비 120만원 (1년이면 1,440만원)이 들어간다. 즉, 1년에 2천 4백만원 이상이 4년간 꼬박 들어가는 셈이며, 물가 상승이 없다고 단순 계사하면 4년간 총 9,760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거의 1억에 가까운 돈이 들어가는 셈이다. 그럼 이 1억을 취직을 해서 회수하기 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계산해 보자. 물가상승률은 3%, 사원에서 부장까지 총 18년이 걸린다고 가정했다.
25년간 재직한다고 가정했고 결혼, 출산, 아이의 교육 등으로 들어가는 생활비를 가정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라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아무튼 혼자 애도 안 낳고 그렇게 돈을 모지게 모으면서 직장 생활을 하면, 대기업 취업시엔 9년차에, 중소기업에 취업했을땐 10년차에 대학교육에 들어간 투자비를 회수하게 된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다. 정말 오--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학 보내려고 등골휘게 고생하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든다.
대기업에 취업했다면, 25년 재직했다고 가정했을때 현금 흐름의 순 현재 가치(NPV)는 (5% 이자율 고려) 약 11억 8천만원에 해당한다.
그런데 현재 서울 소재권 대학 졸업자의 실질 취업률은 50%에 그치고 있다.
스펙을 열심히 쌓은 창창한 대학생들이 많은데 취업률이 저조한 이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다시 쓰라린 현실로 돌아와서, 내가 아닌 다른 친구가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치자.
실질 대기업 취업률이 50%라고 하니깐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무시하기엔 내가 내 자신을 잘 아니까.
그럼 금수저가 아닌 이상 밥벌이를 해야 하니까 대기업이 아닌 중소 기업으로 간다고 가정했다. 중소기업의 임금을 대기업의 70%로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면 총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는 7억 2천만원이 된다.
따라서 서울권 4년제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 혹은 중소기업에 취직했을때의 기대가치(EV:Expected Value)를 계산하면,
11억 8천만원 x50% (대기업 취직했을 경우) + 7억 2천만원 x 50% (중소기업에 취직했을 경우) =9억 5천만원.
즉 4년간의 학비와 생활비를 포함 약 1억원을 써서 대학에 진학하려는 이유는 약 10배의 기대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근데 대학을 안 가면 이 정도를 못 버는 걸까?
고졸 임금을 대졸 출신자의 중소기업 연봉의 65%라고 가정하고 계산한 시뮬레이션은 25년을 재직한다고 했을때 현재가치 약 6억원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나와 중소기업에 취직했을때의 수입을 현재 가치로 계산한 7억 2천만원과 비교하면 겨우 1억 3천만원의 현재가치 차이를 보여주어 그 차이가 크다고 하기 어렵다.
이 말인 즉슨, 현재가치 1억 남짓의 차이를 더 얻기 위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수험 공부에 (수험기간에 쓰는 학원비, 과외비는 위의 시뮬레이션에서 아예 포함하지도 않았다) 계속 비싸지는 대학의 등록금을 내며 대학을 정말 가야 하느냐는 질문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현재의 저조한 취업률이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비관론자는 아니지만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대기업 취업률이 더 저조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기업들이 자동화, AI 도입 등으로 인간 노동력이 전보다 훨씬 필요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나와서 취직했을때 대충 10배정도의 기대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래도 할만하다.
새벽잠 줄여가며 수험공부의 경쟁에 뛰어들만 하다고 치자.
그럼 그 많은 대학 중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대학도 있지 않을까? 100배 정도 기대 가치를 주는 대학은 없을까?
아파트도 같은 평형대고 분양가는 비슷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값이 천차만별이 되는 것 처럼 말이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관련 자료:
학력별 임금격자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531
서울 내 졸업자 실질 취직률: https://ielts.gohackers.com/?m=bbs&bid=godebate&type=url&uid=40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