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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Apr 10. 2024

3월은 시작하고

 24년의 막이 오르고 2학기 막바지가 시작됐을 때, 교장 교감 선생님이 내게 은밀히 손짓했다. 나는 눈치껏 어떤 얘기를 꺼낼지는 알고 있었고 남은 건 연기를 잘 마치는 것이었다. 마치 6학년 부장을 원하지 않는 듯한 태도, 완강하진 않으나 적당히 발을 빼는 기술. '할 사람을 구해 보시고 정말 없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어영부영 말했다. 당연히 인사 희망서에도 6학년은 3순위에, 부장은 희망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어차피 6학년 부장은 나였기에.

 정말 원하지 않았다면 기를 쓰고 계원으로 남았겠지만 나는 6학년 부장이 되길 원했다. 1인 가장으로써 가스비와 관리비를 감당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전담이 아무렴 편하긴 하지만 사무실을 다른 선생님과 나눠쓰는 것도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전담은(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심심하다. 그래서 내심 6학년 부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지 싶었다.

 2월 말 경, 업무 분장이 발표되고 예상했던 결과에 안심했다. 6학년 부장, 아무런 업무 없이 오롯이 6학년 업무만 보면 되는 자리라 걱정하지는 않았다. 수학여행도 비숙박형으로 결정이 된 터라 재수가 좋았다. 아무렴 첫 발령부터 6학년을 가르쳤으며 교과서가 좀 바뀌긴 했으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에 수업 준비도 크게 힘쓰지 않겠지.

 그러나 3월은 언제나 그런 달이다. 모든 예상이 빗나가고 시름시름 아프기까지 한다. 반을 뽑을 때부터 기운이 좋지 않았다. 겪어본 건 아니나 지켜본 바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아가 우리 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겁났다. 잔뜩 긴장한 채 수아를 맞이했던 첫날, 우리 반은 수아의 존재가 꽤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수다스러웠고 귀여웠다. 동시에 표현에 거침이 없으나 순박했다. 문제는 개학하는 날이 월요일이었다는 점이다. 수요일 쯤 동학년 선생님들을 모아 전달할 내용이 있었는데 다들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올해는 3월이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알 거 같은데요?"

 기실 본교 3월 카오스의 숨은 공신은 학생이 아니었다. 3월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음에 안 드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는지 교장 선생님은 학교 구서구석, 업무 하나하나 입을 대지 않는 곳이 없었다. 2월에 이미 결재가 떨어진 업무에도 손을 대는 바람에 모두가 정신없이 회장을 뽑고, 반장 부반장을 뽑았는데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3월은 공문 없는 달로 지정할 만큼 업무를 줄이자는 게 교육청의 목표인데 교장의 말을 빌리자면, 3월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보이는 문제들이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게 되니 쇠뿔을 단 김에 빼버렸단다. 별 문제 같지도 않은 걸 문제로 삼는 걸 보면 교장 선생님의 성격도 알 듯하다.

 수학여행도 마찬가지다. 내게 대뜸 날짜를 확정하라고 보챘다. 3월 첫 주,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시점에 날짜를 정하라니. 뭔 놈의 업무 지시가 이리도 꾀죄죄하고 구체적인지. 2학기에 갈 예정이었고 업무 특성상 예약하다 보면 날짜가 변경될 수도 있는 건데 업체 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날짜를 확정하라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부장님들의 곡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마주한 적도 없는 교장 선생님에게 괜히 적대감이 들었다.

 드디어 합의점을 찾아야 할 시간, 나는 교장실에 들어섰다. 일전에 함께 일한 적 있는 동료 교사의 말을 빌리자면,

 '비합리적인 분은 아니니까 가서 잘 말해봐.'

 다행히 권위적일 것 같았던 첫인상과 달리 몇 가지 말씀만 덧붙이셨을 뿐 지금 당장 확정하라며 고집을 피우시진 않으셨다. 대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저 내 느낌이긴 하나 나를 제법 마음에 들어하시는 거 같았다. 그렇게 영원히 끝날 거 같지 않던 3월이 끝났다.

 담임이 됐으니 다시 글쓰기를 시작해야겠지 싶었는데 이제야 한 줄 적어본다. 2024학년도, 드디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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