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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Sep 02. 2023

검은 파도

 9피트가 넘는 롱보드에 앉아 파도를 기다린다. 피리어드가 긴 날에는 한참을 기다려도 타고 싶은 파도가 안 올 때도 있다. 그럴 땐 적당히 작은 파도 몇 개를 골라 타고 죽을 둥 살 둥 패들링 해 다시 라인업할 수밖에 없다. 피크가 잘 서지 않는 파도는 잡기가 힘들다. 한참 패들링해도 놓칠 때가 많다. 그래서 힘만 빼고 못 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또 하나의 파도를 놓쳤다. 한숨 한번 푹 쉬고 보드를 수평선을 향해 돌렸다.

 "더 들어갑시다!"

 큰 파도가 오고 있다는 신호다. 본래 있던 라인에선 위험하니 안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나는 내 키만 한 파도를 놓치는 게 아까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뭍으로 보드를 다시 돌렸다. 보드 레일을 잡고 바다 안으로 쏙 집어넣은 다음에 손을 놓았다. 부력으로 튀어 오르는 보드를 붙잡고 추진력을 얻은 뒤 미친 듯이 패들링했지만 파도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아니, 내 실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어떻게 푸쉬까진 했지만 보드 노즈가 이미 물에 잠겨 있었다. 허리를 더 꺾어봐도 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파도에 휩쓸려 모래사장까지 떠밀렸다.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온 터라 머리도 엉망에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연이어 오는 큰 파도가 그렇게 허망할 수 없었다. 허탈함과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는 광경은 먹먹한 귀때문에 더욱 드라마틱했다. 파도는 항상 그렇게 왔다. 올 듯 안 올 듯 작은 물결들 끝에는 커다란 파도가 서너 개 친다. 조바심 내거나 욕심 내는 순간 파도는 인정사정없이 나를 휩쓸어 간다. 운이 좋으면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이지만 파도 내부의 힘은 골절이나 탈골 정도는 거뜬하다.

 9월 2일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유튜브로 참석해 달라는 글을 보고 검은 복장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검은 파도라는 비유는 진실로 그 장면을 기가 막히게 묘사한 말이었다.

 수업 일수는 정해져 있다.

 재량휴업일은 학교가 정하기 나름이다.

 태풍이나 천재지변 등 긴급 재량휴업일이 학기 중에 발생하면 방학이 하루 준다.

 놀랍게도 교사는 아프면 병가를 쓸 수 있다.

 나는 여태 손목이 부러지고 무릎인대가 붓고 치주염으로 인해 밤잠을 설치는 치통이 있는 날이거나 공황으로 숨을 못 쉬는 날에도 출근해 우리 반을 지켰다.

 분명 몇 주 전 내가 참여했던 집회는 탈 만한 파도가 아니었다. 여섯 번의 작은 파도 끝에 마침내 30만이라는 대형 파도가 만들어졌고 누가 욕심을 냈는지, 누가 인내했는지 판갈음이 날 것이다. 서핑할 때 유의해야 할 것. 작은 물결들 끝에는 커다란 파도가 서너 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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