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들과 함께 등교하는 게 겸연쩍기도 하고 어색해서 일찍 출근하는 걸 선호한다. 텅 빈 교실, 그 고즈넉함이 좋기도 하고. 교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다음에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확인한다. 공문이 없으면 준비물 빠진 건 없는지 한번 더 확인하지만 대게 18 학급짜리 보통 크기의 학교에선 사치다.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면 학생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한다. 시끌벅적 왁자지껄. 나는 다른 반에 피해만 가지 않으면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는 편이다. 그 모습을 관찰하며 누가 누구랑 친하고 학생들 기분은 어떤지 관계는 어떤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다. 6학년 정도 되면 자기들끼리 노는 게 좋지 담임 선생님이랑 말을 잘 섞지 않아서 그렇다(다가오기 편한 선생님은 아니라 더욱 그렇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내게 오는 용무는 몇 가지로 제한되어 있는 듯하다.
하나, 친구와 싸웠을 때. 얘기를 듣다 보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파다하다. 언제는 누가 유치원 이야기를 꺼내며 '나도 억울해요'를 따지려 드는 걸,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네 기분이 상한 건 알겠어. 그런데 우리 오늘 얘기를 해볼까?"
하며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문제는 누구 하나가 지독하게 말이 안 통하는 경우다(그 이유가 기질이든 분노든). 그럴 땐 조금 언성을 높이며,
"그래, 억울하고 속상한 건 알겠는데 지금 너 말할 차례 아니고 친구 말하는 차례잖아."
하나, 시답지 않은 허락을 받으러 올 때. 학기 초야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학년이 끝나가는데도 '화장실 가도 돼요?' 혹은 '도서관 가도 돼요(아침 자습 시간)?' 같은 걸 묻는다. 당연히 된다는 걸 알면서 오는 심리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수업 시간에는 곤란하다. 그 외에도 수업 중 사절하고 싶은 질문으로는, '몇 페이지예요(이미 서너 번 말함)?',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이미 두세 번 설명했고 질문 있냐고 물었고 앞 화면에 모든 정보가 다 적혀 있음).'
학생들은 수업, 쉬는 시간 가리지 않고 온갖 질문과 말을 쏟아내고 괴성을 지르는데 7년 차 정도 되면 익숙해져야 하지 않나 싶지만 괴성과 고음은 언제나 새롭고 항상 귀가 아프다. 수업 좀 재밌게 하려고 게임을 준비했다가 싸우고 토라지고 공감해 주고 싸움을 중재하고.
그렇게 4교시가 끝나고 밥 먹을 땐 어찌나 말들이 많은지. 맛있는 음식을 놓고 벌어지는 전쟁을 보고 있으면 밥 먹기가 미안할 정도다(교실 급식).
"선생님, 고기 얼마나 줘요?"
"선생님, 급식 당번이 닭강정 이거밖에 안 줬어요!"
그러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비명!
"야! 내가 여기에다가 달라고 했잖아!"
"그럼 네가 식판을 제대로 들고 있던지!"
5-6교시도 마찬가지. 똑같은 하루는 결코 있을 수 없고 사건 사고 없는 날이 없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끝나길 빌고 빌 수밖에. 그렇게 6교시 수업이 끝나는 종이 쳤을 때, 몇 마디 좀 더 하려고 하면 다들 엉덩이를 들썩이며 일어선다. 그건 양반이다. 내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가방까지 싸서 뒷문으로 달려가는 학생도 파다하다.
"선생님, 저 학원 가야 하는데요."
그렇게 교실은 몇 초만에 초토화된 상태로 덩그러니 남겨진다. 학생들이 떠난 자리, 기름걸레를 들고 훑으며 청소를 하고 줄도 맞추면 세 시다. 그렇다. 요즘 학생은 청소하지 않는다. 책임감을 가르치기 위해 1인 1역을 정해 청소 좀 시켰더니 '우리 애는 책임감 같은 거 안 길러도 돼요' 했던 학부모가 있었다나 뭐라나.
드디어 한숨 좀 돌리고 업무를 한번 확인한다. 그새 또 몇 개의 잡무가 쌓였는데 제발 무지렁이 같은 그놈의 보고는 교육청에서 알아서 했으면 싶다. 일 처리 좀 하고 나면 퇴근. 수업 준비는 당연히 퇴근 후에 해야 한다. 학교에 남는다고 돈을 더 주는 거도 아니라 칼퇴는 필수다. 업무로는 야근해도 수업 준비로 야근하지 않는다. 사실 같은 학년을 연달아하는 경우라면, 또 고경력이라면 수업 준비에 힘을 빼도 된다. 이미 사용했던 자료가 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료는 항상 업데이트되고 더 재밌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촘촘히, 치밀하게 준비한다. 약 10-11개 과목 수업을 준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부으면 하루로는 택도 없다. 주말에 일주일 치 계획을 세우고 짬이 날 때마다, 집이나 카페에서 자료를 찾고 만들어야 한다.
학부모 민원이 있을 때도 있지만 나는 학생들이 좋다. 우리 반이 소중하다. '더 차분하게 대처할 걸', '아, 오늘 00이에게 상냥한 눈길 한번 주지 못했네', '칭찬 잊지 말자'처럼 자기 검열과 반성도 끊임없다.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들이고 누군가의 자녀이기에.
솔직히 미울 때도 있다. 그런데 그 미움이라는 게 어디 부모-자식 간이라고 없으랴. 게다가 밉다는 마음이 줏대가 없는 게 시무룩해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새 증발한다. 딱 그 정도의 하찮은 마음이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안쓰럽든 사랑스럽든 나는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 하고 칭찬도 해 보고 타일러도 보고 무섭게도 해 본다.
최근 교실 회복 뉴스 외에 논점을 흐리는 글이 많아 속상하다. 오 박사 비판글의 등장도 어이가 없지만 교육 공무직이나 그 외 공무원이 자신에게 일을 전가하지 말라며 열을 올린다. 여기서 일일이 해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하나는 꼭 말하고 싶다. 민원 처리 안 하는 공무원 없다는 거 안다. 모두 존경한다. 그러나 우린 똑같은 피해자다. 함께 대책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서로의 사정을 잘 모르니 엉뚱한 방향으로 해결 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 그땐 서로를 깎아내리려고 하지 말고 모르는 부분은 알리고 함께 더 나은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다.
우선 교사가 받는 민원에 대해 얘기를 좀 하자면 이렇다. 학교 특성상 민원인 및 그 자녀를 1년 동안 마주해야 한다. 욕설을 듣고 하대 당하는 자리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학부모의 자녀를 볼 때마다 반복 재생된다. 어떤 눈빛으로 학생을 봐야 할지 망설여진다. 한없이 무능해 보일 거 같아 자존감이 떨어진다.
'쟤도 나를 만만하게 보려나?'
1년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어렵지 않은 일은 없다. 군대도 자기가 나온 부대가 제일 힘들다 한다. 하다못해 군대 무용담 하나 둘 없는 사람 없다.
권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교사가 바라는 건 교실이 행복할 권리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녀가 행복하다는 말에 공감할 것이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 그리고 내 경험 상 선생님이 가장 행복한 때는 행복한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다. 교실 안에선 그 나름의 선순환 고리가 있다. 그 고리가 일부 성인에 의해 깨질까 조마조마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