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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l 20. 2023

하리보는 죄가 없지

 신축 대단지 아파트 내에 있는 학교는 사정이 비슷하겠지만 비어 있는 교실이 잘 없어 전담 선생님 여럿이 한 교실을 쓴다. 내 옆에는 스포츠 강사 선생님이 앉아 있고 나는 체육 전담이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과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기도 많고 점심시간이 조용하지 않을 정도로 여러 학생이 전담 교사 교실을 찾는다. 대게 6학년 여학생 방문이 잦다.

 "선생님, 이거 체육쌤이랑(스포츠 강사 선생님) 나눠 드세요."

 하루는 여학생들이 우르르 와선 소파에 앉아 놀다가 손바닥보다 작은 하리보 젤리 한 봉지를 내게 주고 갔다. 워낙 빠르게 사라진 터라 거절할 새도 없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스포츠 강사 선생님 자리 위에 하리보를 올려놓았다.

 초등학생들이 챙기는 여러 기념일 중 빼빼로데이가 유일하게 학기 중에 일어나는 유명한 기념일이다. 늘 그렇지만 빼빼로 몇 통이 책상에 올려져 있으면 일일이 학생을 찾아가 돌려줘야 하는데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해 안쓰럽다. 하리보는 물론이며 빼빼로는 죄가 없다. 평가 주체인 나는 '마음만 받을 게'외에 할 말이 없다.


 친한 의사 선생님과 수술실 CCTV 설치 관련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한두 명이 전체에 피해를 준다'는 식의 결론에 이르렀고 CCTV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동의했다(나는 찬성이었고 의사 형은 반대였다). 흔히 말하는 법 없이 살 사람들은 대다수고, 뉴스에 등장하는 몇몇 무뢰한들이 법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현실에 통탄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자꾸 물을 흐리려고 드는데 미꾸라지는 잡지 않고 물에게만 깨끗하길 바라는 건 잘못됐다.

 교사 인권 뉴스든, 의사 CCTV 뉴스든, 여성, 장애인, 성 정체성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권리 신장 이슈에 꼭 달리는 댓글들이 있다.

 '꼴좋다. 예전에 나 뒤지게 팼던 선생(혹은 과거 자신의 단편적인 경험), 이제야 죗값 치른다.'

 운 좋게도 나는, 촌지나 교사 본인의 기분에 상관없이 학생을 대하는 평범한 선생님을 만나 청소년기에 단 한 번 매를 맞았다. 교사에 대해 필요 이상의 분노를 안고 사는 사람을 보면 지레 마음이 불편하다. 아마 나는 맞는 쪽이 아니라 지켜보는 쪽이었기 때문이리라. 또 현재 초등 교사로 재직하며 같은 교직에 몸 담았던 선배들의 잘못된 행동이 부끄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분노는 정당하고 그 마음에 공감한다. 결코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표출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해결법도 썩 탐탁지 않지만 다 큰 성인의 일이니 여기까지 하겠다.

 교권 현주소가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는 의미라면 피해를 왜 서리초등학교 신규 교사가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수술실에 CCTV를 달아서 잘 치료하던 의사의 손까지 묶으려고 드는 것처럼(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서리초등학교 신규 교사 자살 사건, 6학년 학생의 담임교사 폭행 등 초등 교사 커뮤니티가 연일 시끄럽다. 선생님 사이에 검은 리본 사진을 올리는 추모식이 진행되고 있는데 불난 집에 기름 붓는 학부모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추모 포스터에는 애도의 표현만 한 줄 짤막하게 적혀 있는데 선생님 프로필 사진이 바뀐 걸 귀신같이 눈치챈 학부모가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선생님, 선생님 프로필 사진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선생님 행동 하나하나가 영향이 크다는 사실 잘 아시지요. 아직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일을 추모하는 건 옳지 않은 거 같아 메시지 보냅니다.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으니 언급 자제 부탁드립니다.'

 다 같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 이렇게도 험하고 지탄받을 일인지 묻고 싶다. 타인의 권리가 상향 조정 된다고 본인의 권리가 떨어지는 건 아닐 터. 이렇게 쌍수 들고 반대하는 걸 보면 어디가 꼬여도 여간 꼬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JTBC에서 방송되는 '사건 반장' 프로그램의 유튜브 클립에 분노한 학부모들, 그러니까 다수의 학부모들이 교권 신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교권 신장이 교실을 살리는 길이고 교실이 살아야 여타 학생도 피해받지 않는다는 걸 피부로 느낀 듯하다. 교권 신장이라 하는 게 달리 교사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매나 촌지가 아니다. 교육 활동 중 벌어질 수 있는 지도에 가해지는 지나친 규제가 사라졌으면 한다. 지금 법대로 했을 경우 학생 기분이 나빴으면 모든 경우 아동학대에 속한다.

 현재 20-30대 교사 태반은 어릴 때부터 교사를 꿈꿨다.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일을 참고 견디겠다고 다짐한 청년이다. 길게는 몇십 년, 교단에 서는 날을 수도 없이 그렸던 피 끓는 젊은이다. 그런 청년들이, 한 학생 때문에 나머지 23명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교사가 되는 기분은 정말 본인 외에 아무도 공감할 수 없다. 이제 공은 던져졌다. 정부가 어떻게 받아치고 대중은 어떻게 호응할까.


 스포츠 강사 선생님은 책상 위에 놓인 하리보의 출처를 묻곤 맛있게 먹으며,

 "이게 뭐라고, 쌤 그냥 하나 드세요."

 다시금 말하지만 하리보는 죄가 없다. 자칫 심사가 뒤틀린 보호자에게 걸려 교육청이나 경찰서에 신고당하는 위험에  빠뜨리는  사양하겠다. 어찌 됐든 물은 청정 지하수보다 깨끗해야 하니까.

 따지고 보면 하리보를 못 받게 된 것도, 학부모가 아니라 변호사가 교실에 들락날락하는 것도 처음엔 국회의원, 가정폭력 때문이었다. 법 개정의 원인이 그러했으니. 진실로 청정해야 할 곳이 어딘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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