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하게 말하겠습니다. 월요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 악화될 뿐입니다. 그리고 화를 돋우는 일입니다.
전담 교사가 되면 봉급이 확 준다. 코딱지만 한 돈이지만 담임 수당 13만 원, 성과급 최하는 당연한 거고. 대충 계산만 해도 총 300만 원이 연간소득에서 빠져나간다. 늘어난 소비 패턴을 줄이는 건 고통을 수반한다. 원하는 순간 치킨을 시키지 못하는 배고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커피 한 잔을 아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패배감. 그렇다고 담임일 때 흥청망청 쓴 것도 아니었다. 그때도 나는 언제나 아껴 써야 했고 지금은 더 아껴 써야 할 뿐. 다행히 체육 전담이라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일환이 스포츠클럽이었다.
학교가 크니 성별 관계없이 축구부 학생을 충분히 모을 수 있었다. 사실 스포츠클럽만 모은 뒤 대회는 나갈 생각이 아니었으나 체육 업무 담당 부장님이 당연히 나가야 한다는 듯이 얘기했다.
"여자 남자 둘 다 대회 나갈 거예요?"
유선으로 무심하게 묻는 부장님. 직장에서 나는 예쓰맨이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 있게 '노'라고 얘기할 수 없었다.
'아니요. 저는 스포츠클럽 강사 운영 예산에 관심이 있지 대회는 괜찮습니다.'
라는 뻔뻔스러운 속내를 들키고 싶지도 않았지만 스포츠클럽 예산을 받았으면 대회에 출전하는 게 관례 같기도 했다. 무섭기도 했다. 내 뒤에 언제나 따라붙는 물음표는 '못하면 어쩌지?'였고 나도 잘 못하는 축구를 가르쳐 우리 학교를 우승으로 이끄는 감독 일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참가하게 된 대회라도 학생에게 좋은 기회라 정신을 차려야 했다. 축구부와 함께 연습을 거듭할수록 나도 의욕이 더해져 마지막 주엔 거의 매일 함께 연습했다. 나보다도 학생이 더 열정적이었다. 모이는 날이 아닌데도 계속 모이냐고 묻거나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더니 매일매일 대회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대회가 주말 토, 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는 걸 알게 된 건 대진표가 나왔을 때였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지만 막상 인솔 과정 전반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막막했다. 개최 학교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나 걸렸고 환승을 여러 번 해야 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파면당하는 요즘 시대에 안전 문제는 취약한 도화선이라 작은 버스를 빌리려 했지만 행정실이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교감, 교장 선생님의 허락이 있은 후에야 실장님의 껄끄러운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귀찮은 일은 곧 죽어도 안 하는 실장님은 사소한 걸로 꼬투리 잡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 품의를 올릴 때마다 긴장했다. 다행히 버스 외에 간식, 식사비에 대해선 딴지를 걸지 않았고 대회만 앞두고 있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이 왔고 금요일 퇴근 전 대회에 필요한 물품을 이것저것 챙겼다. 최대한 민원이 들어오지 않도록, 책잡히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다. 만나는 시간은 9시. 막상 가는 날이 다가오니 주말 이틀 동안의 본교에 모여 출발, 대기, 간식, 대회, 식사, 도착 그 모든 과정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학생을 교육하는 일이 피곤한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면, 당연히 며칠은 쉬고 싶으니까.
결과는 완패. 단 일 승을 거두지 못했고 아이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나도 그랬다. 승패가 아쉬운 게 아니라 아이들의 감정에 전념되기도 했고 쓰라려하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길게 주저리 할 분위기는 아니라 맛있는 거 먹으며 기분 풀자는 말만 반복했다. 식사 후 힘 빠진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픈 채팅방에 승패와 그때 드는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과 응원을 장문의 카톡으로 보냈다. 다들 '넵'하고 반응했다. 어쨌든 뭔가 배워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알차고 꽉 차고 보람찼던 주말을 보냈음에도 내 기분은 썩 상쾌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상담사나 심리학자가 일요일에 출근하는 걸 치료랍시고 제시했는지. 주 69시간은 아무래도 꿈이고 환상이다. 바라옵기에는 주 4회 근무, 수요일도 쉬었으면 좋겠다는 망상만 더 깊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