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학년들과 신체 활동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 밸런스 안 맞아요."
아무리 봐도 저학년이 던지는 공은 밸런스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공들이 많은데 그들만의 리그라 나도 덩달아 심각해진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나은 방법이 없어 그대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치열한 경기를 진행하다 밸런스 이슈를 재기한 학생 팀이 패배할 경우 원성이 자자하다. 심지어 우는 학생도 있다. 그 정도면 양호하다. 친구 안 때린 게 어딘가.
1-2학년과 피구를 하면 하나의 재롱 잔치를 보는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일종의 '쇼' 안에도 불꽃 튀는 경쟁의식이 꿈틀거리는데 승패보다 중요한 건 '내가' 공을 공평하게 가졌는지 아닌지다. 3-4학년은 아무래도 1-2학년보다야 '던진다'는 행위에 더 맞긴 하지만 여전히 아담하다. 그중에서 날카롭고 재빠른 공을 던지는 몇 안 되는 학생이 있는데 그들이 여타 학생과 다른 점은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감이다.
나는 학생 때 스포츠를 사랑하지 않았다. 단체 활동에서 중요한 요소는 협동이고 나는 협동의 과정에서 듣게 되는 친구들의 볼멘소리가 싫었다. 못할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너그러이 내 실수를 감싸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욕심이다. 스포츠맨십도 여느 생활 태도와 마찬가지로 배워야 하거니와 나의 유년 시절 속 어른은 무작스러웠다. 행여 친구와 주먹다짐을 할 때면 으레 묻는 질문이 '그래서, 이겼어?'였으니 코트에서 쭈뼛거리는 학생들 대부분은 어른에 의해 신체 활동의 기회를 잃었다.
공개 수업의 계절이 다가왔다.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영역형 경쟁'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건 과학 시수가 더 많더라도 명색이 체육/과학 전담 교사라 그렇다. 일 년에 두 번 진행하는 공개 수업에서 공평하게 과학 한 번 체육 한 번 하는 게 보기에도 좋을 거 같았다. 맛없는 걸 먼저 먹는 편이라 체육을 먼저 선택하기도 했는데 메신저에도 과학보다 체육이 앞서 있기도 했다.
4학년 체육 교과서에 럭비형 게임이 실려 있었다. 어떤 게임을 준비할까 하다 내가 좋아하는 체육 활동 중 기백쌤의 '공으로 하는 얼티밋 프리즈비'를 참고해 단원을 재구성하기로 했다. 공개 수업 시기를 고려해 '게임 중심 이해 모형'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면 게임을 미리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결과는 암울했다. 여태까지의 수업을 바탕으로 본교 4학년 학생의 체육 기능이나 정서가 타교 학생들보다 우수하다 평가했는데 오판이었다. 3월에는 체육 수업 전반을 위한 시간이었고 4월부터 5월까진 2단원인 도전 영역을 수업했던 바람에 경쟁 영역도 잘할 것이라 짐작했다. 이런 부분에서 교사의 경력차가 드러난다. 노련함이 부족한 탓이다. 도전, 경쟁. 느낌부터가 확 다르다. 대개 도전 차시에는 체조가, 경쟁 차시에는 공놀이가 나온다.
"3월 초에 분명 게임은 게임이라고 말했는데.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드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 또한 스포츠에서 중요한 능력 중에 하납니다."
팀을 나누는 순간부터 게임이 끝나는 순간까지, 다소 소극적인 한 반을 제외하고 나머지 여섯 반에선 한 두 명이 꼭 글썽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에 어찌할 바를 몰라 되려 성질이 났다. 담임일 경우 3월부터 각종 게임을 진행하며 '재밌게 참여하기'를 강조하는 터라 6월쯤에는 이런 일이 잘 없다. 전담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시점이었다. 한마디로 4학년은 경쟁형 게임을 제대로 참여하는 방법을 아직도 배우는 중이었다.
공을 주고받는 기능이 다소 떨어지는 학생은 멀찍이 서서 게임을 관람하고 있었고 남학생은 그런 학생을 비난하기 바빴으며 또 그런 비난에 그 학생은 주눅이 들었다. 한 점 한 점 뒤처질 때마다 의욕이 넘치는 남학생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팀원의 사기를 북돋아 주라는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공을 놓칠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마지막, 원망의 화살은 내게로 돌아왔다. 애초에 실력 균형이 맞지 않은 탓이라는데 내가 봤을 땐 기능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었다. 패배를 어떻게 맞이하는지 배우지 못한 탓에 사기가 꺾일 대로 꺾인 탓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 3-4학년 교실에선 한 반에서 2-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학생은 실력이 도토리 키 재기다. 게임의 승패를 결정하는 건 결국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종 치기 몇 분 전 학생들을 앉혀 잔소리를 쏟아냈다. 4개월 만에 하는 잔소리라 그런지 마음이 불편했지만 배워야 할 건 배워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과업을 수행하는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기질과 상관없이 말을 바르게 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오해하지 않고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기능 모두 삶에 있어 필수 요소다. 그런 걸 배울 수 있는 게 교실이고 그중에서도 게임이나 신체 활동이 제일이다.
당장 수업이 다음 주인데 어쩌나 싶지만 학생을 믿기로 했다. 공개 수업이라고 하면 감춰둔 집중력과 능력을 끌어모으는, 잠재력이 충분한 게 초등학생 아니겠는가. 거짓말처럼 하루하루 다르기도 하고 이악스럽게 변하지 않는 게 아이다. 우선 믿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