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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Apr 10. 2024

겨울 새벽엔

 봄기운이 완연하다. 기온이야 떨어지건 올라가건 꽃은 폈고 해가 빨리 뜨는 탓에 세상이 한결 밝아졌다. 겨울에 새벽 산책을 나가려면 그리도 무겁던 몸이 이젠 한결 가볍다. 분위기도 제법 산뜻하다. 아버지의 기호로 털을 빡빡 민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는 게 미안하지 않은 날씨다.

 새벽 어스름이 지기도 전, 겨울의 다섯 시 반은 어둡다. 호젓한 거리에는 해가 뜨기도 전에 출근하는 사람이 몇몇 지나간다. 빳빳한 전선과 전봇대, 밝은 LED 가로등을 지나친다. 강아지는 여기저기 냄새를 맡느라 무아지경이다. 나는 뻑뻑한 눈을 지그시 누르며 종종걸음으로 따라간다.

 우리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가 먼저 마킹했거나 솟아 있는 곳에 소변을 눈다. 좀처럼 눈이 내리거나 얼지 않는 부산에서 나는 강아지 소변이 땅을 얼게 하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차된 차나 버려진 쓰레기에 소변을 눌 때면 소변이 땅에만 닿기를 바란다. 자동차 바퀴야 땅을 구르는 용도이니 더럽혀진다고 한들 별 상관이 없겠지만 쓰레기는 치우는 사람이 있을 테니 행여나 옷에 묻을까 미리 송구스럽다.

 오늘도 강아지는 바퀴에 소변을 눴다. 차량에 맺힌 이슬을 본다.

 '아, 따뜻했던 것에는 이슬이 맺히는구나.'

 걸어가는 강아지를 머쓱하게 불러본다. 강아지는 들은 채 만 채 제 갈 길을 가다 귀나 한 번 쫑긋한다. 그러면서,

 "따뜻했던 것에는 이슬이 맺혀."


 이사 온 후로는 도보로 출퇴근하는 게 익숙했는데 바쁘고 피곤한 탓에 몸 이곳저곳이 아팠다. 며칠 편하게 갔다고 자연스럽게 차 키를 챙기는 모습을 보며 아직은 회복 중이라는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차 후드 위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세차를 하지 않아 먼지가 쌓였는데 그 먼지가 고루 잘 덮이는 바람에 먼지가 있는지도 몰랐다. 먼지 위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을 본다. 살벌한 기온 탓에 시동을 걸기 전에는 몇 번 노크를 해야 아기 고양이들이 도망간다던데.

 '아, 따뜻한 사람은 노크를 하는구나.'

 누가 볼까 민망해서 괜히 차 문을 쾅 닫아 본다. 도망치는 고양이는 없었고 나는 조용히 시동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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