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버트리와 보름달
추석이 다가오니 가슴아픈 식구들 생각이 난다.
'퀴버트리와 은하수'라는 작품을 은사님께 선물 받았다.
벽에 걸린 은하수를 보고 있자니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가고 있다.
결혼하고 1년 만에 아들을 출산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아들이 태어나고 1년이 되던 첫 돌잔치를 집에서 했다.
그때가 1995년인데 집에서 잔치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집에서 잔치를 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생각을 했는지 상상이 안된다.
그렇게 해야 정성이 들어가고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도리 (? 말이 안 맞는 것 같지만), 그때의 마음은 암튼 뭐든 다 해 주고 싶었다.
아들을 위한 돌잔치를 3일 동안 했다. 진정 누구를 위한 돌잔치였는지 그 당시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근거가 어디에서 왔는지.
첫날에는 시댁 식구들과 친정 식구들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함께 먹었다. 12명의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함께 먹으며 손자와 조카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부어주셨던 순간이 기억난다.
잡채와 육전과 산적, 동그랑땡, 샐러드와 각종 김치와 나물, 불고기, 낙지, 홍어와 과일, 집에서 만든 시루떡으로 모두 즐거운 식사를 했었다. 이 모든 것을 집에서 만들 생각을 했던 나를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 된다.
이틀 째 되는 날은 남편의 직장 사람들을 초대했다. 10여 명의 남녀 정장 부대들은 술안주가 좀 더 추가되기도 했던 돌잔치였다. 거기에 고스톱까지 더해져서 거의 직장 회식 수준이었던 기억이다. 그래도 그때는 힘든 줄 몰랐는데....
셋째 날은 점심에는 우리 친구들을 초대했다. 6명의 단짝 친구들이 와서 첫 번째로 결혼 한 친구의 첫 번째 조카를 안아 보면서 신기해했었는데 지금은 다들 엄마가 되어있다. 한 친구만 아직 독신이다.
저녁에는 남편 친구들을 초대했다. 7명의 친구들이 초대되어 다시 또 술 상이 벌어지고 고스톱 판이 벌어졌던 돌잔치의 3일 차를 기억한다.
사람 좋아하고 남들 먹이는 거 좋아하는 남편과 사는 아내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친정에서 본 것들이 나의 뇌에 잠재되어 있지 않았을까.
7 형제의 맏며느리인 엄마를 보면서 자란 나는 집에서 이렇게 북적거리는 행사를 치르는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자신도 없다.
기념일이나 명절에 한 번씩 보는 식구도 이제는 손님이라고 느끼려고 노력한다.
돌잔치 3일 했던 아들이 작년에 결혼을 해서 1월에 아빠가 된다고 한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니 잠깐 고민이 된다. 아들 내외랑 딸들 모여 송편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그냥 오지 말라고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나는 그런 시절 못 살아봤으니 내 며느리는 한번 편하게 살아봐라." 하는 심정으로 그냥 집에서 쉬다가 좀 편안해지면 내려오라고 했다. 내가 시집 살이 했다고 며느리한테도 똑같이 할 수는 없는 일 아닐까!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젊은 시어머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ㅎㅎ
잠깐 혼자 웃음을 웃어본다.
9월이 다가오니 곧 추석이다.
퀴버트리 나무에 걸린 은하수를 보고 있으니 석류나무에 걸린 보름달이 생각난다.
올해는 보름달을 보면서 함께 하지 못하는 손님이 되어버린 식구들이 생각날 것 같다. 시댁이나 친정이나 꼭 한 명씩 있다. 지금은 왕래도 없고 냉냉한 사이가 되었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웃으며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려 본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우리 가족들에게도 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