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1주년에 생긴 일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 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최은영. 밝은 밤 p14)
마음을 꺼내서 물로 씻을 수 있다면 지금 씻어내고 싶다. 남편과 불편한 시간이 길지 않기를 바라지만 먼저 이야기하기는 싫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남편과 나의 관계에 마음 세척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의 관계도 가끔은 이런 마음의 정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서로의 마음을 꺼내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토끼 간도 아니니 넣었다 뺏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부부가 함께 있는 지금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흔하고 상투적인 말로 스스로에게 던져 보지만,
그런데 그것은 혼자는 할 수 없는 일인데....
8시 30분 출근을 하고 6시 퇴근해서 11시까지 계속 줌 수업이 있었다.
내가 남편의 입장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미울까.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를 돌아본다.
그냥 매일의 일상이 중요하고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을 해내는 것이 나의 일상인 것의 반복이다.
거기에 가족은 이벤트다.
어찌 보면 보통의 중년 여성들에게는 반대의 상황일 수도 있다. 가족이 일상이고 일이 이벤트가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회피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편하자고!
막내가 케이크이라도 배달한다는 것을 말렸다. 몸에 좋지도 않은 케이크 먹은 거나 다름없다고 거절했다.
기념일 따위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숫자로 기억하고 그냥 보통의 날로 흘려보내자.
이런 불편한 관계의 시간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