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31일, 리초를 입양한 날
지난 2021년 5월 31일은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리초가 우리 집에 온 첫날이었다.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이후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만 여행 다녔기에 충분히 휴가를 즐길 수 없었는데, 그때의 제주도 여행으로 그런 답답했던 마음들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쏘다닐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했기에 여행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강아지가 입양 시점에 질병을 갖고 있을 수 있는데 초보 보호자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뒤늦게 병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입양 전 보호하고 있던 곳과 이슈가 생길 수 있어서 제삼자인 수의사에게 진찰을 맡겨서 문제를 사전에 발견해야 한다. 동물병원 예약 시간, 그리고 김포 공항에서 이동 시간 때문에 제주도 새벽의 첫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공항에 도착한 후 집에 잠시 들렀다가, 동물보호센터로 이동했다. 3주 만에 만난 리초는 그 사이에 조금 더 자란 것처럼 보였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우리를 알아보고 조금 반가워해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많이 긴장한 듯 몸을 낮추고 천천히 움직이고 우리를 경계해, 아쉬운 마음이었다.
리초는 우리에게 입양되기 직전 보호센터에서 중성화를 수술 받았다. 센터에서 수술 후 보내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에는 '어차피 내가 해야 할 텐데, 센터에서 알아서 해주니 좋구나!'라고 속 편히 받아들이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데리고 지내면서 충분히 유대감이 쌓인 이후 수술을 경험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리초가 사회화 시기였기 때문이다. 입양 후 많은 사람과 강아지들을 만나게 해주고 여러 자극에 노출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지만, 수술로 인해 마음의 문의 살짝 좁아지진 않았을까 라는 짐작 때문이다. 리초는 지금 조심성은 많지만, 폐쇄적이거나 소극적인 강아지는 아니다. 하지만 수술을 더 늦게 했다면 더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아지지 않았을까라는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입양을 확정하는 여러 서류들을 다시 체크하고 서명을 마친 후 사후 관리를 위한 커뮤니티 가입까지 마치고 리초를 데리고 나갈 시간이 되었다. 가슴줄을 구입하고 착용하는 방법을 충분히 숙지했는데도 막상 움직이는 대상에게(그 대상은 나를 경계하고 있고) 가슴줄을 착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답답했는지 훈련사님이 직접 착용해주셨다.
리드줄을 부착하고 리초를 데리고 가려했는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무섭고 긴장되니 그랬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안아 들고 훈련사님에게 인사 후 바깥으로 나와 차를 탔다.
낯선 사람에게 안겨 진동과 소음이 심한 차를 처음 타본 리초는 도망치려 했고 너무나 긴장해 멀미 증상을 보였다. 침을 계속해서 흘리고 창 밖으로 나가려 시도했다. 나는 되도록이면 리초를 꼭 안고 진정하기를 바랐는데 심하게 발버둥을 쳐 내 팔과 상체에 자그마한 생채기들이 많이 생겼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경험이 많이 쌓여 스스로 타고 내리는 정도는 쉽게 하지만 여전히 불안해한다. 아직 이렇다는 것은 내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동물 병원에서 수의사님은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체크해주셨다. 귀, 눈을 상세히 보시고 관절을 체크해주셨다. 센터에서는 지금까지 강아지에게 어떤 예방 접종이 이루어졌는데 센터 소속이신 수의사 선생님의 서명이 들어간 서류를 발급해주었는데,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우리 강아지의 남은 접종 스케줄을 설정해주었다. 리초는 여전히 무척 긴장하고 무서워하였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리초는 토하고 말았다.
집에 도착한 직후 리초를 거실에 내려주었고, 리초는 거실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냄새를 맡았다. 리초를 처음 만났을 때 훈련사님이 리초의 엄마 강아지가 소심한 성격이라 얘도 그럴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런데 리초를 데려왔던 첫날을 돌이켜보고 또 요즘 리초가 지내는 것을 볼 때 소심한 성격인 강아지는 아니다. 조심성이 굉장히 많을 뿐이다. 만약 소심한 강아지라면 어디 구석진 곳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있었을 것인데, 리초는 오후 내내 열심히 거실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고, 처음 만나는 사물들을 깨물어 보기도 하면서 호기심을 풀고 있었다.
우리가 낯선 사람인데도 집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많이 보였다. 우리의 냄새를 열심히 맡고, 우리의 신체를 궁금해했다. 또 우리가 움직이면 따라오기도 하였다. 동물보호센터에는 보호 중인 유기견이 너무나 많아 개별 개체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케어만 가능했을 것이고 아이들에게 특별한 개별 훈련을 시키거나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아마도 어미가 소심하기는 해도 사람을 싫어하는 강아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개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법은 타고난 성격을 바탕으로 새끼 강아지일 때 어미가 사람에게 하는 행동을 모방하면서 배운다. 또 센터에 아이들 산책을 위한 자원봉사자 분들의 노력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을 것 같다. 입양 후 센터에 방문했을 때 아이들 산책 봉사 오셨던 분께서 리초를 알아보셨다. 아기 강아지 일 때 리초를 데리고 산책을 하셨었다고 한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센터 관계자 분들, 또 자원봉사자 분들이 아이들을 잘 대해주시기 때문에 사람에게 향하는 관심과 감정이 부정적으로 바뀌지 않고 유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녁을 먹이고 소파에서 쉬면서 TV를 틀었는데, 갑자기 현란한 빛이 쏟아지고 소리가 나기 시작하니 리초가 많이 놀랐다. 다음 날도 리초는 TV 에서 도망갔고, 이후 3~4일쯤 지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이후에는 TV를 틀어도 가만히 있다.
TV를 끄고 강아지가 좋아하는 느린 박자의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자 리초는 차츰 안정을 찾았고, 매트 한편에서 편히 자리를 잡더니 이내 잠들었다.
아파트에서는 한밤에도 갖가지 소리가 난다. 뒤늦게 오가는 사람도 있고, 화장실을 가는 사람도 있다. 새벽 배송을 하시는 배송기사 님들도 들락거리신다.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도 사람보다 귀가 밝은 리초에게는 밤새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리초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잠에서 깨어 '멍' 하고 짖었다. 자기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소리들일 텐데 아직 그걸 모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도 수시로 깰 수밖에 없었고 너무나 피곤한 밤이 며칠 이어졌다.
사람들이 잠든 강아지를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내려보다 이따금 강아지가 마치 깨어있듯 다리를 갑자기 움직이면 '달리는 꿈을 꾸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사람도 그렇지만 강아지들도 '렘수면' 단계가 있어서 이때에는 몸을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리초는 보통 초저녁부터 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리초가 온 지 5일 차쯤 되니 다리를 움찔거리는 렘수면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 집이 푹 자도 될 만큼 편안한 공간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에 짖는 모습이 한동안 더 이어졌고 아내가 경계가 심하다고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우리 집 바로 앞에서 나는 소리만 아니라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리초와 우리의 첫날이 저물어갔다.